‘올 스톱’ 된 ‘김정은 비즈니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속도전’ 강조하더니 3차례 준공 연기
원산에 투입할 인력·자본 삼지연·평양종합병원으로 돌려
외자유치 액수까지 정해놓고 ‘동방의 진주’ 꿈꿨으나…
완공 여부는 김정은 통치자금 사정 판단하는 잣대
지난해 12월 7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해 테이프 커팅을 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안남도 양덕군 양덕온천문화휴양지는 지난해 12월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됐다. 166만㎡ 부지에 실내·야외온천장, 스키장, 승마공원, 호텔을 갖췄다. 2018년 11월 공사를 시작해 13개월 만에 준공했다.
‘조선’ 1월호는 ‘특색 있는 인민봉사기지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이라는 제목의 8쪽 분량 기사에 사진 25장을 실었다. 김정은이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커팅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도 담았다. ‘조선’은 2월호에도 10쪽 분량으로 이 휴양지를 다뤘다. ‘온천문화휴양이 시작됐다’ 제하에 사진 21장을 게재했다. 3월호에도 ‘양덕온천문화휴양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공유일, 안철룡, 홍광남 기자가 찍은 사진 11장을 실었다.
‘올 스톱’ 된 ‘김정은 비즈니스’
북한 매체 ‘조선’은 양덕온천문화휴양지를 특집기사로 다뤘다.
북한 당국이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다음으로 자랑하고자 한 곳은 양강도 삼지연시 개건(改建)이다. ‘조선’은 1월호와 4월호에서 각각 ‘현대문명이 응축된 사회주의산간문화도시 준공’ ‘천지개벽된 삼지연시’ 제하 화보를 실었다. 양강도 동북부 삼지연시는 백두산을 품은 곳이다.
양덕온천문화휴양지와 삼지연시 개건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함께 김정은이 추진한 역점 사업이다. 그중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 비즈니스’라고 불릴 만큼 북한이 총력을 기울여온 프로젝트다.
‘조선’ 1월호~4월호에서 특이한 점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관련 소식이 한 꼭지도 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군, 성·중앙기관, 속도전청년돌격대가 총동원됐는데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 내부 자본으로 건설하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호텔 등은 외부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유엔 제재 탓에 내부 공사를 못 하고 있다. 북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마무리했다. 결국은 미국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 북한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와 합을 맞출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북한에 ‘가뭄에 단비’ 노릇을 해왔는데 코로나로 관광산업이 모두 중단됐다. 대북 제재로 외화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원산에 투입될 인력과 자본을 3월 착공한 평양종합병원 건설로 돌렸다. 양덕온천문화휴양지가 13개월 만에 완공된 것도 원산으로 갈 인력과 자본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원산에 짓는 건물들의 껍데기가 다 올라간 건 오래전이다. 마무리하지 못하니 김정은의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중국이 올해 대규모 관광객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코로나19 탓에 다 틀어졌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준공 목표일은 4월 15일이었다.
‘속도전’ 강조하더니 3차례 준공 연기
노동신문은 5월 12일 “대동강변 명당자리에 평양종합병원이 기운차게 일떠서고 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적대 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과 같은 방대한 창조대전에서 연속적인 성과를 확대해나가는 것은 적대 세력에게 들씌우는 명중포화다.”
북한은 2014년 6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8호를 통해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선포했다.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서 “대외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나가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듯 원산-금강산 개발은 ‘김정은 비즈니스’다. 북한은 원산 일대를 1호 경제 개방 대상으로 삼았으며 투자 유치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원산-금강산을 잇는 관광지대뿐 아니라 원산항을 중심으로 한 산업단지 조성 계획도 세웠다. “원산을 싱가포르처럼 만들겠다”는 게 김정은의 구상이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은 지금껏 세 차례 연기됐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올해 군민이 힘을 합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최단 기간 내 완공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후 2019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북한의 태양절)까지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2018년 8월 김정은은 2019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 10일)로 준공 시점을 6개월 미뤘다.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온 지 두 달 뒤 일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직후인 그해 4월 김정은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 시점을 2020년 태양절로 6개월 더 미뤘다.
대북 소식통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제재 완화를 낙관했다”면서 “트럼프가 평양의 예상과 달리 회담을 깨뜨리면서 원산 개발에 ‘올인’하던 김정은의 스텝이 꼬였다”고 말했다.
김정은 통치자금 사정 판단하는 잣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6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시찰하고 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은 평양의 초고층 아파트와 다르게 나랏돈을 투입해야 한다. 평양의 아파트 건설은 ‘돈주’(신흥 자본가)들이 ‘돈을 넣고 돈을 먹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호텔 등은 돈주가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나랏돈은 김정은의 주머닛돈이나 다름없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 여부는 김정은의 통치자금 사정을 판단하는 잣대일 수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 강화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로 인해 외화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북한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는 미흡했다. 미국과의 담판이 노딜로 일단락되면서 한국으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제재 완화를 언급했으나 미국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원산-금강산 일대를 국제 관광지구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는 400㎢ 면적으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마식령스키장지구 △울림폭포지구 △석왕사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로 이뤄졌다. 연간 100만 명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게 북한의 목표다. 북한은 원산 및 금강산 개발에 78억 달러(8조8000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원산-금강산철도, 송도원호텔, 시중호 골프장 투자제안서.
‘투자제안서 : 원산-금강산철도(개건대상)’ 문건에 따르면 ‘원산-금강산 철도’ 사업은 강원 원산시에서 고성군 온정리까지 118㎞ 철도를 개보수하는 것이다. 투자 기업에 토지사용료를 면제해 주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철길 개건 비용으로 2억6193만8023달러, 운영설비 구입비용으로 6150만 달러를 책정했다. 영업 개시 후 3년간은 하루 3000명, 4년째부터는 하루 7000명이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추산한 내부수익률(IRR)은 7.3%다. IRR은 투자에 소요되는 지출액의 현재가치가 그 투자로부터 기대되는 현금수입 금액의 현재가치와 동일하게 되는 할인율을 말한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원산-금강산 철도와 관련해 북한은 남측의 투자를 바라고 있다. 남북이 2018년 12월 경의선, 동해선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남측 공동조사단이 당시 금강산역과 원산역을 조사하기도 했다.
원산호텔은 북한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랜드마크로 삼으려는 곳이다. 5성급 초고층 호텔로 건설 기간 48개월, 운영기간 40년을 제안한다. 연매출 1억1775만2000달러, 연 순이윤액 2176만1000달러를 예상했다. IRR은 13.9%. 총 투자비 5억8188만 달러 중 4억8968만 달러를 외자로 충당하는 게 북한 당국의 계획이다.
호텔·골프장·백화점 외자유치 액수까지 정해놓고 ‘동방의 진주’ 꿈꿔
원산백화점, 해안호텔 투자제안서.
강원 원산시 해안호텔은 12층 건물을 18층의 4성급 호텔로 증축하는 사업이다. 투자유치 규모는 2400만 달러, IRR은 22.7%를 제시한다. ‘투자제안서 : 해안호텔(개건대상)’은 “관광 계절에는 송도원해수욕장과 명사십리해수욕장, 마식령스키장 등 명승지들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밝히면서 연간 순이윤액을 336만 달러로 예상했다.
강원 통천군 시중호 북서쪽에는 외자를 유치해 골프장을 지으려고 한다. ‘투자제안서 : 시중호골프장(신설대상)’ 문건은 “시중호관광지구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창설이 선포되면서 세계적인 휴양 및 치료 관광지구로 발전할 수 있는 전망을 가지게 됐다”면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드는 것은 우리 당과 정부의 확고한 의지다. 머지않은 장래에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는 ‘동방의 진주’로 뿌리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중호골프장 부지면적은 125만㎡이다. 문건은 골프장지구에 “회원구락부와 종합봉사구, 2동의 중간휴게소, 5성급 호텔을 건설한다”고 적었다. 총투자비용은 1억2320만 달러로 그중 49%를 외자로 조달하려고 한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의 각종 요금, 수수료’ 제하 북한 문건에는 토지임대료, 최저임금 등이 달러, 유로 기준으로 명시돼 있다.
“공들여 만든 투자제안서 휴지조각 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북한 내부 자본으로 짓는 호텔 등은 골조 공사가 마무리된 지 오래다. 북·미 회담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거나 남북관계를 통해 해법을 찾지 않으면 준공이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공들여 만든 외자유치 투자제안서가 휴지조각이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물론 구원투수로 중국이 등장할 수 있다. 중국은 대북 제재 국면에서 관광 협력을 절충적 해법으로 여긴다. 북·중관계 전문가인 박종철 경상대 교수에 따르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과의 관광, 농업, 교육, 보건, 체육, 언론, 지방, 청년 8대 분야 교류 지침을 하달했다. 관광 협력은 수도꼭지처럼 잠글 수 있어 압박 수단으로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은 -4.1%로 전년도 -3.5%에 이어 2년 연속 하락세다.
2017년 상반기까지의 유엔 제재는 실효가 적었으나 2017년 9월 핵실험과 8월,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계기로 채택한 8차, 9차, 10차 제재 결의부터 북한에 큰 타격을 줬다. 광산물, 섬유제품, 수산물 수출이 전면 금지됐으며 중국, 러시아 등의 북한 노동자 고용도 막았다. 연간 유류 공급량도 제한했다. 그 결과 북한의 대외 수출은 90% 넘게 감소했으며 무역외 외화 수입도 급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이제는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내서 해나가야 한다”면서 “기존의 유엔 안보리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사업도 있으며, 일부 저촉된다 해도 예외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사업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