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바이러스와 싸움은 속도전 ‘빨리빨리’ 한국이 유리하다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인문을 과학하다’ ⑤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5-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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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사태는 한국이 존경받는 나라 될 기회

    • 신속성에 지속성 얹으면 ‘백신 강국’ 될 수 있다

    • 코로나 백신 개발이 시장에서 매력적인 이유

    • 한국 특유 속도전의 승리, 콜레라 백신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인문을 과학하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우리가 당면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을 과학하다’는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언뜻 멀어 보이지만,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섞여 있는 두 세계의 깊이 있는 소통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편집자 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2공학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 연구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성 교수는 4월 2일 2151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 단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범부처 감염병 대응 연구개발추진위원회(질병관리본부)에서 활동했으며 보건복지부 지정 백신개발센터인 면역백신기반기술개발센터장 등을 역임한 국산 백신 실용화 현장의 산증인이다. 인터뷰를 한 날은 막 범정부 회의를 마치고 나온 길이었다.

    신속성에 지속성 얹으면 ‘백신 강국’ 될 수 있다

    씨젠의 코로나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씨젠 제공]

    씨젠의 코로나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씨젠 제공]

    -오늘 회의 안건은 뭐였나.

    “얼마나 빨리, 안전한 백신을 개발할 것이냐가 주제였다. 큰 단위의 범정부대책위원회는 장관들이 주도하지만 오늘 열린 백신분과 회의에는 좀 더 실무적으로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들이 참석했다. 특히 오늘 회의에는 특허청까지 합류했다.”



    -특허청은 왜?

    “지적재산권이나 특허 분석이 특허청의 일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백신 개발에 뛰어든 상황에서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야, 이건 우리 기술이야, 특허 침해하면 안 돼’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니 사전에 대비하는 거다.”

    -지금 세간의 제일 관심사는 백신과 치료제가 언제 나오느냐다. 

    “우선 치료제는 후보가 수십여 개에 달한다. 주로 ‘약물재창출’ 방법이 대세다. 기존에 다른 바이러스 치료에 썼던 약물에서 치료제를 찾는다. 오랫동안 사용해 안전하다고 판명된 것들이기에 독성시험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훨씬 빠른 속도로 신약 개발로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우리도 파스퇴르연구소,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하고 있다. 이 밖에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가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오늘 범정부 대책회의에서는 예산을 지원할 치료제 개발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말이 나왔다. 백신은 플랫폼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는 상태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이런 범정부 지원단이 있었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 들어 코로나 진단키트를 굉장히 빨리 활용해 전 세계 귀감이 됐는데 이참에 백신, 치료제까지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우리 민족성이 ‘빨리빨리’ 아닌가. 진단키트도 그런 속성이 먹혀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 한 단계 도약하려면 지속성이 관건이다. 회의에 모인 사람들도 반신반의하지만 신속성에 지속성을 얹으면 백신 강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는 것, 그리고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한국을 도약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장점이자 단점이 ‘빨리빨리’다. 그래서 이노베이터(혁신가)가 되기보다는 패스트 팔로어, 즉 빠른 추격자로서 선진국을 따라가는 데만 익숙했다. 바이오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지속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신약 개발은 국민성에 맞지 않았다. 기약도 없이 오래 걸리니 연구 단계에서 버려졌던 거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신속성에 지속성까지 가미하면 진짜 우리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란 자신감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가능해진 거다. 한 건 히트로 끝날 게 아니라 우리가 국제적으로 선도국가가 되려면 지속적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기다려줄 줄 아는 문화가 확산되면 코로나 사태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다.”

    바이러스와 전쟁은 속도전, 한국이 유리

    -백신을 개발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보는 이유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백신은 인간과 동물이 걸리는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대해 후천적인 면역 기능을 주는 의약품이다. 쉽게 말해 예방주사인데, 요즘엔 경구용 백신, 즉 먹는 약도 있다. 백신 개발엔 안전성이 제일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인허가가 굉장히 까다롭다. 치료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신속하게 개발한다 해도 인허가라는 산을 넘으려면 안전성이 담보돼야 한다. 백신을 개발할 때는 여러 플랫폼 중 장기간 안전하다고 검증된 것들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임상허가에서 독성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고 어느 정도 효능만 나오면 신속하게 기술개발로 나아갈 수 있다. 그동안 회사들이 각자도생했다면 범정부 지원이라는 테이블을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회사끼리 겹치는 것은 없는지 특장점을 추리고 정부는 뭘 도와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방역 선진국 평가를 받고 있다. 과대평가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스마트폰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진단키트가 대성공하면서 신속한 기술개발과 보급에 자신감이 생겼다. 코로나와의 속도전에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다. 진단키트는 기술 자체는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신속하게 발굴해 제공했다는 게 중요하다. 진단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정확도와 민감도(작은 숫자의 바이러스까지 검출하는 것)가 가장 중요한데 민감도를 높이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가 있다. 우리 진단 키트가 제공될 때만 해도 정확성을 충분히 담보할 데이터가 별로 없었다. 선진국은 민감도를 너무 높게 하려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졌다. 

    우리 진단키트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1년 후, 2년 후엔 한국이 개발한 키트의 에러율이 얼마였더라 하는 통계가 나오겠지만 아직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스피드 게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속도와 인간이 그걸 얼마나 따라잡느냐 하는 캐치 업(catch up), 즉 속도 싸움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면 늦다. 여기서 한국이 대성공했다.” 

    -정부가 잘한 일은 뭐가 있나. 

    “5년 전 메르스 학습 효과에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 안전이 흔들리면 정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정부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진단키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병원에서 추적이 늦어 확산을 막을 수 없기에 신속한 감염 여부 파악이 중요했다. 그래서 신속하게 진단키트 회사들을 모아 빨리 만들어라, 승인해 주겠다고 한 거다. 기존에는 정확도와 민감도를 높이려면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는데 정부가 요구하니까 수요가 창출됐고, 회사들도 재빨리 생산에 나설 수 있었다. 어떻든 시간 싸움에서 이겼다.” 

    그는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게 뭔가. 

    “메르스 사태 때 사전에 진단키트를 만들어놓아 고비를 잘 넘겼다는 사실이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2015년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은 메르스가 중동에서 퍼지자마자 혹시 우리에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판단하에 자발적으로 진단키트를 만들어 준비해 놓았다. 따로 연구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연구원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조기 진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의 피땀 덕분에 메르스 사태가 커졌을 때 지출할 국고 4조 원을 줄일 수 있었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짜 애국자들이다. 드러내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찾아내 훈장을 줘야 한다.”

    메르스 진단키트 만든 연구원들 훈장 줘야

    -미국 중국 유럽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우리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코로나라는 병원체 성질에 대해 우리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이제 겨우 이해하는 상황이다. 어떤 면역 체계가 감염을 막을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효능 평가를 항체로 할 거냐? 세포면역으로 할 거냐? 다양한 잣대가 있는데 무엇이 중요한 잣대인지 기준이 없다. 전문가 집단이 모여 갈래를 잡아주기만 해도 매우 진일보하는 것이다. 100점이 아니라 70점짜리만 나와도 큰 성과다. 시작 자체가 의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개발에 나선 백신 플랫폼이 70여 개 되는데 우리는 다섯 개 정도로 스타트했다. 이 중 한두 개라도 확실하면 대성공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한두 개 빼고는 다 버려진다. 리스크가 많은 게임인데도 다들 덤벼들고 있다.” 

    -에이즈 백신도 아직 개발이 안 됐는데 코로나 백신이 쉽게 나올까. 

    “이번엔 다들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 우리 인간을 괴롭힐 것이라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 12년, 4년 터울로 퍼졌는데 유행성 독감처럼 매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다. 지금 당장은 백신 개발에 실패해도 일단 시작해 놓으면 굉장히 중요한 플랫폼이 될 가능성 높다. 코로나 백신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다.” 

    그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백신 개발 회사 처지에서는 좋은 백신 만드는 게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돈이 많이 들어서?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백신이 필요 없어져서다. 바이러스와 백신도 공생관계다. 이 균형이 잘 이뤄지는 게 인플루엔자 백신이다. 매년 바이러스가 돌기 때문에 해마다 수요가 발생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만큼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가 만든 완벽한 백신은 천연두 백신이다. 1977년 세계보건기구가 이 바이러스의 종식을 공식 선언하면서 천연두 백신 회사들이 다 망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매년 변종을 거듭하면서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회사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전 세계 시장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스의 경우 2003년 찾아왔다가 백신 개발 시점에 종식돼 지금은 풍토병화됐다. 백신 회사 처지에서는 시장이 없어져 더는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부로서도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가 덮쳤는데 백신과 관련해 지구촌이 당면한 큰 문제가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검증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사스 발생 이후 지속적으로 백신을 개발했다면 이번에 어떠어떠한 사안은 효능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을 것이고 백신 개발 속도도 빨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승부를 내야 한다. 성공할지, 못 할지는 미지수지만 끝까지 달라붙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들이 현재 다 똑같은 상황이다. 다들 무(無)에서 시작하는 거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가 처한 환경이 백신 개발에 매우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백신 개발에 유리한 국제 환경이 있다

    서울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 [국제백신연구소 제공]

    서울 관악구 국제백신연구소. [국제백신연구소 제공]

    -그게 뭔가. 

    “먼저 하나 물어보고 싶다. 메르스가 발생한 2015년 삼성서울병원이 관리 소홀로 비난에 휩싸였다. 당시 삼성전자가 국제백신연구소(IVI·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서울 관악구)에 400억 원가량의 연구비를 출연키로 했다는 거 혹시 기억하나.” 

    -그런 일이 있었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 국제백신연구소의 존재다. 우리나라에 공공 백신과 관련한 국제기구 본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IVI는 세계 공중보건을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곳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산하 비영리 국제기구로, 한국·미국·인도·프랑스 등 15개국에서 온 143명의 연구원이 일한다. 

    IVI는 1997년 설립 이래 23년 동안 콜레라·장티푸스 등 전염병 백신을 개발하고 개발도상국에 이를 저렴하게 공급해 저개발국 유아사망률을 낮추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우리는 1990년대 초반 IVI 설립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본부를 대한민국에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을 볼 때 선견지명이었고 IVI가 서울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생명공학(바이오)산업 강국이 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IVI 올해 총예산은 3980만 달러(약 480억 원)로 한국 정부 외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아내와 만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스웨덴·인도 정부 등이 분담한다. 핀란드도 곧 참여할 예정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방역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정부들이 그때그때 징검다리 하나씩을 놔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정부들도 징검다리를 놓았다

    -IVI 존재가 그렇게 중요한가. 

    “백신과 관련한 유일한 국제기구여서 국제적인 공신력과 명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연구소랑 공동으로 개발했다고 하면 국제적 검증을 받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실제로 IVI는 우리 백신 산업의 주춧돌 구실을 하고 있다. 콜레라 백신을 만든 곳도 이곳이다. 콜레라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수인성 질병이다. 물이 깨끗하지 않은 동남아에서는 아직도 1년에 100만 명까지 죽는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희생된다. 그런데 제3세계에 창궐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개발해봐야 이득이 별로 없어 글로벌 제약사들은 덤벼들지 않는다. IVI 같은 공공 기구만이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도 중요하다. WHO가 중심이 돼 백신 허가를 내주는 제도가 있는데 PQ(pre qualification)라고 하는 사전인증제도가 그것이다. 앞서 말했듯 백신 허가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데 일단 PQ 인증을 받으면 제3세계로 나갈 수가 있다. 콜레라 백신의 경우 방글라데시·태국·인도가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WHO 역사상 최단 기간인 1주일 만에 인증을 받았다. 이것도 한국 특유 속도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백신 개발은 IVI가 했지만 생산은 유바이오로직스라는 벤처회사가 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도 국제적 공공성이 중요하다. 공공성 있는 백신 개발의 주체인 IVI가 서울에 있다는 건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이 연구소를 잘 활용하면 우리 정부 자금만 쓰는 게 아니라 감염성 질환 예방 및 치료에 돈을 많이 내는 국제 펀드도 유치할 수 있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한국이 세계 속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도 했다. 

    “백신이 정말 필요한 곳이 제3세계다. 말라리아로 1년에 100만 명, 200만 명이 죽는데 아직 백신이 없다. 돈이 안 되니 개발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말라리아 모기 서식지가 북상하고 있다. 미국 남쪽에서도 발생한다. 일단 백신을 만들어놓으면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이 내세우는 돈의 논리가 아니라 제3세계 국민을 구할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국제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전후 70년 만에 이렇게 고속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6·25전쟁 때 세계가 우리를 도왔기 때문이다. 빚진 마음을 갖고 다른 나라를 도와준다면 그야말로 존경받는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세계 최초 백신 관련 학부가 한국에

    유바이오로직스가 개발한 경구용 콜레라 백신 ‘유비콜’. [국제백신연구소 제공]

    유바이오로직스가 개발한 경구용 콜레라 백신 ‘유비콜’. [국제백신연구소 제공]

    -듣고 보니 힘이 나는 것 같다. 연구 인력도 많은가. 

    “지금 가장 부족한 게 사람이다. 산업은 커지는데 사람이 없다. 제대로 된 연구 인력이 극소수다. 산업부가 백신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올해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고려대가 바이오의약품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유치해 수년 동안 가동한 적이 있는데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나선 거다. 민간에서는 안동대에 백신공학과가 있는데 백신 전문 학부로는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안다. 만들어진 지 2년이 됐는데 작년에 첫 교수 채용을 했다.” 

    -백신 관련 대학 학부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난 정부에서 산업부가 굉장히 많이 기여했다. 백신은 백신 자체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시설 확보도 매우 중요하다. 쉽게 비유하자면 백신은 대포알이고 생산시설은 대포다. 약 개발은 복지부와 과기부가 중심이 돼 이뤄질 것이지만 생산은 어디서 할 것인가. 국제 규격에 맞는 까다로운 인증을 거친 시설에서 생산해야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다. 

    산업부가 박근혜 정부 때인 5년 전부터 준비에 나섰다. 이 분야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을 많이 해놓고도 조명을 못 받았다. 생산시설 기획을 내가 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2013년 기획해 정부가 투자 결정을 내린 거다. 1900억 국고를 들여 경북 안동과 전남 화순에 각각 만들었다.” 

    -왜 두 곳인가. 

    “화순은 녹십자라는 우리나라 중견 백신회사가 있는 곳이고, 안동은 SK케미컬이라는 또 다른 백신회사가 있는 곳이다. 이런 강점을 살렸다. 두 곳을 정한 것은 국가 시설이므로 전쟁 시 폭발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둘 다 똑같은 백신 생산 시설이지만 화순에 내건 간판은 ‘미생물 실증지원센터’, 안동은 ‘세포배양 실증지원센터’다.” 

    -백신도 없는데 시설부터 만들었다는 건가. 

    “2005년 산업부 중심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착수했다. 그때만 해도 ‘신종플루’가 유행하기 전이었다. 매년 발생하는 유행성 독감 백신을 생산하려고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2009년 신종플루가 터졌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당시 복지부가 조명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은 산업부도 함께 칭찬받아야 한다. 어느 한 부처의 공이 아니라 부처를 넘어선 위기 대응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안동과 화순 생산시설은 백신만 개발되면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시설을 갖고 있다. 우리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만들었다는 게 차별점이다.”

    정권 바뀌어도 끝까지 간다는 일관성 중요

    -지금껏 몰랐던 좋은 얘기를 들어 반갑지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과연 우리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까. 

    “범정부 대책반에 가보면 사람들은 애써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워낙 시급한 상황이다 보니 한가한 질문이라는 거다. 아까 우리가 다섯 개 플랫폼으로 시작한다고 했는데 이 중 하나만 성공해도 대박이다. 될지 안 될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도 무조건 개발에 착수해야 선진 각국이 내놓은 백신들이 효과가 없을 때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신속성 지속성을 강조했는데 추가할 사안은 없는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끝장을 보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 연구한다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미국이 9·11 테러 때 만든 국가위기대응법령 중에 ‘바이오 실드 액트’라는 게 있다. 생물학 테러에 대비해 백신치료제를 비축하자는 건데 그 법령에는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도 이 조치는 시행된다고 아예 명시돼 있다. 나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바이오산업에 ‘뻥’이 많다고 들었다. 

    “주가 상승을 목표로 한 그룹이 분명히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부가 정말 제대로 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 연구팀이 코로나19의 RNA 전사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해 공개했다.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치료제나 백신 개발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향후 고도화된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본 정보로는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목할 것은 이 논문이 나오자마자 이른바 CNS페이퍼, 즉 ‘셀’ ‘네이처’ ‘사이언스’가 게재를 결정하는 데 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곳에 논문이 실리려면 몇 달은 기본이고 해를 넘기기 일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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