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호

‘나만의 경쟁력’ 키우기

  • 김광웅 중앙인사위원회 초대위원장

    입력2006-11-30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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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람들은 파란 불이 들어오면 건널목을 건넌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파란 바다를 기대하며 휴가를 떠나고, 파랑새에 대한 환상을 간직하고 있다. 똑같이 ‘파란’이라는 형용사를 쓰기는 했어도 파란 불,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랑새가 가진 빛깔은 모두 다르고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 역시 그 차이를 알고 있다. 만일 ‘파랗다’고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상자에 담긴 파란 물감처럼 모두 같은 빛깔과 성격이라면 세상은 정말 무미건조하게 항상 늘 그대로일 것이다.

    생각해볼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은 얼마나 다양한 빛깔과 특색을 갖추었냐는 점이다.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가 강조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보화’되고 ‘디지털화’되어야 한다는 강한 시대적 요구를 느끼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워드프로세서를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신호등과 하늘, 그리고 바다가 가진 특색 있는 빛깔처럼 다양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이라고 자신 있게 밝힐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언어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는 가설을 주장한 벤자민 리 울프(Benjamin Lee Whorf)는 빈 휘발유통을 쌓아둔 곳에 화재가 빈번히 발생하는 경우를 예로 든 적이 있다. 휘발유를 다 쓰고난 후 통 표면에 ‘empty’라고 써서 한 쪽 구석에 쌓아두면 지나던 사람들은 그저 빈 통인 줄만 알고 피우던 담배꽁초를 무심코 던져 버린다. 물론 그 통 안에 휘발유는 없지만 가스가 남아있을 경우 화재가 나게 되며, 이는 사람들이 ‘empty’라는 단어만을 보고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선입견으로 담뱃불을 버린 행동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우려되는 것은 자칫 ‘empty’라는 글씨만 보고 담배꽁초를 마구 던져버리는 경우이다. ‘정보화시대라니까…’ 하면서 활용할 계획도 없는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거나, 목적도 없이 정보검색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것이 ‘정보화’ ‘디지털화’로 가는 길은 아니다. 화재를 예방하려면 빈 통이 정말 빈 통인지 그 안에 또 다른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개발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자기 점검이 없다면 오히려 ‘정보화’ ‘디지털화’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도 ‘정보화’ ‘디지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공무원의 정보화 능력을 통해 정부의 수준이 향상될 것인 만큼 앞으로 국민을 위한 능동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보기술 활용능력과 정보화마인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 컴퓨터를 제공하고, 컴퓨터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정부 부처 내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고 해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적 변화뿐만 아니라 부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인터넷을 통해 실무자의 수준에서 수시로 토론과 의논을 거쳐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변화도 이뤄져야 한다.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대충 이 정도면…’ 하는 식의 낡은 아날로그 시대의 선입관을 버리고 보다 다양하고 정확한 사고체계를 구축할 때다. 정확성 정직성 정당성을 기본 덕목으로 갖추고 자기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지적유연성 상상력 창조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전문성을 넘어 다양한 관심과 시각을 가져야 하며 다른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힘과 자세를 가진 공무원만이 열린 정부, 지식 정부, 세계 정부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인사위원회에서는 일주일 내내 보충수업(?)을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에 영어회화 공부반, 월·수·금요일에는 오후에 일본어 공부반, 목요일에는 컴퓨터 관련 수업이 있고, 금요일에는 외부인사를 초청하여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미나를 진행한다. 마침 각 분야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직원들이 있어 그들이 수업을 이끌고 다른 직원들은 각자의 수준과 흥미 그리고 필요성에 맞추어 참여한다. 모든 수업이 근무시간 이전이나 이후에 진행되므로 그야말로 ‘보충’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춘 직원들만 참여하는 까닭인지 수업 분위기나 학습 능률도 높은 편이다. 그 외에도 ‘1인 1개 지역 전문가 되기’ 계획에 따라 관심 있는 지역과 국가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각자 진행하고 있다.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하면서 짬을 내어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모두들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기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 그런 작은 실천을 시작으로 디지털 시대에 공직사회가 보다 세분화된 전문적 경쟁력을 갖추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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