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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교회냐 골프냐, 일요일 새벽의 고민

이인호 LG애드 대표이사 사장

  • 글: 이인호 LG애드 대표이사 사장

교회냐 골프냐, 일요일 새벽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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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사리 배운 골프는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다들 스코어에만 정신이 팔려 매너는 영 뒷전이던 분위기도 이제는 많이 달라져서, 필드는 어느새 사람과 사람이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되었다. 사실 같은 돈을 들여 술집에서 폭탄주 마시고 노래 불러제끼는 것보다야 건강에도 좋고 대화도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렇지만 주말마다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골프장을 찾은 이를 분노하게 만드는 구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사람들을 약 올리듯 중간에 끼어드는 팀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슨 재주를 어떻게 피웠는지 예약이 꽉 차 있던 라운딩 스케줄 사이로 불쑥 다른 팀이 새치기를 하면 뒷사람의 기분이 상쾌할 리 없다. 또 그렇게 예정에 없이 나타난 팀을 가만히 살펴보면 꼭 알 만한 얼굴, 힘깨나 쓴다는 이름이 섞여 있으니 혀끝이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욱 묘한 것은 그렇게 ‘힘으로 만들어낸 부킹’이 흡사 자랑거리가 되는 분위기다. “내가 말이지, 지난 주말에 모모한 분과 급히 골프 스케줄을 만들었는데…”로 시작되는 어이없는 무용담은 자신이 얼마나 목에 힘을 주고 다닐 만한 인물인지를 과시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급한 김에 잘 알고 지내는 CC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나라고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러고 나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 라운딩 내내 편치 않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자랑삼아 떠드는 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난 연말 세계 최대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회사인 WPP가 새로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버릴 것과 남길 것, 남길 것 중에서도 고쳐야 할 것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작업이 요즘 내 업무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동안 우리가 유지해온 시스템과 문화는 국제적 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부킹 문화 또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와 필드를 두고 고민에 빠지는 이 ‘길 잃은 양’이 염치불고하고 감히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한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대, 톤이 좀 강하다 해도 아무도 흉보는 이 없으리라.



“회개하시오, 힘으로 부킹하는 이들이여! 반성하시오, 새치기 부킹을 권세로 착각하는 이들이여!”

신동아 200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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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호 LG애드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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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냐 골프냐, 일요일 새벽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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