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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삭발

  • 글: 서영은 소설가

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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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지낸 뒤 서둘러 조반을 끝내고 우리는 성묘길에 올랐다. 한 시간 남짓 걸어서 도착한 묘지에는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셔져 있었다. 아버지가 낫으로 풀을 베고 있는 동안 어머니와 금패엄마는 준비해온 음식들을 상석에 차려놓았다.

묘지와 묘지 사이를 S자로 뛰어다니다 문득 바라보면, 저 멀리 두 개의 삿갓처럼 맞붙어 있는 산 능선 사이에 바다가 푸른 쐐기처럼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또다시 뛰어다니다 문득 바라보면 어머니와 금패엄마가 나란히 앉아 자매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벌초를 끝내고 나서도 두 여인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아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분이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이었다니…

산에서 내려와 금패엄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엔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한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엄마, 금패엄마가 우리하고 뭐가 돼요?”



나의 질문에 어머니가 난처한 기색으로 망설이다 “먼 친척”이라고 대답한 적은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네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는 까닭을 알지 못한 채로 정초에는 세뱃돈을 두둑히 받아 챙겼고, 학교에 오가는 길에 우리가 먼 발치로만 보여도 불러서 그녀가 일부러 손에 쥐어주는 돈이나 사탕봉지를 당연한 듯이 받아넣었다. 오빠는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고 집을 나가면 금패엄마를 찾아갔다.

내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사춘기가 훨씬 지난 뒤였다. 금패엄마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었고 금패는 입양한 딸인데, 금패마저도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고백에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으나 그토록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먼 친척이 아니라 진짜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이 기쁘고 후련했다. 사실 우리 쪽에서도 금패엄마한테 가는 정이 깊어지는데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스스로 당혹스러웠던 까닭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엔 부쩍 의견충돌이 많아졌다. 그 충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낫을 갈아 보자기에 싸놓고 조반상 앞에서 말했다.

“자네 오늘 산소에 갈라는가.”

“아닌 밤에 홍두깨격으로 산소에는 왜 가요?”

“날씨가 좋으니 아이들 데리고 산보삼아 가자는 거지.”

“죽은 사람들한테서 떡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이 사람아, 지금 우리가 밥을 굶나 옷을 벗었나, 뭐가 그리 불만인가.”

“세상물정을 저렇게 모르니 늘 이 모양 이 꼴이지.”

면박을 주는 어머니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실 그것은 부모님 사이에 진작부터 내연(內燃)하고 있었던 갈등의 불씨였다. 12년의 나이 차이, 아버지는 온화한 성품에 이지적 내성적 성격이었고 목회를 직접 하지 않는다뿐이지 신학으로 다져진 가치관이 확고했고, 어머니는 활달하고 급한 성품에 감성적 성격이었고 현세적 욕구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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