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포드 호(S.S ILFORD) 사진. 1905년 4월 초 우리 이민 1033명을 싣고 인천항을 출항, 멕시코로 향한 이민선. 위 사진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촬영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뱃머리에 ILFORD라는 배 이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소장자 : The World Ship Society, Carlisle, U.K. 이 사진을 사용하려면 소장자로부터 사전 허락을 구해야 함)
이미 멕시코 현지에선 서동수 회장, 조남환 목사, 율리세스 박 회장 등을 중심으로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활동을 개시했고, 국내외 관련학계 연구자들도 몇 년 전부터 멕시코 이민과 관련한 자료들을 발굴해 멕시코 이민사를 최대한 복원해보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보임으로써, 여러 해 전에 ‘애니깽’이란 영화로 국내 일반에 알려진 100년 전의 멕시코 이민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의 일부로 편입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구한말의 멕시코 이민은 멕시코 유카탄 농장주협회 대리인 마이어스(John G. Meyers)가 일본의 이민회사 중 하나인 대륙식민합자회사(大陸殖民合資會社)를 움직여 서울에 그 회사의 총대리점을 차려놓고 전국에 걸쳐 모집해서 송출한 이민이었다. 당시는 하와이 이민이 근 2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오류로 점철된 멕시코 이민 연구
하와이 이민은 1902년 11월 미국인 데쉴러(David W. Deshler: 大是羅)가 당시 미국 공사 알렌(Horace Allen: 安連)의 주선으로 고종황제로부터 ‘大韓國役夫 國外雇傭事는 米國人 大是羅로 掌理케 할 事’라는 칙령을 받아내서 합법적으로 추진됐다. 반면 멕시코 이민은 우리 정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은 기록이 없다. 또한 우리의 이민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계약노동이민’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로부터 불법이민으로 간주되고 있다.
멕시코 이민은 법적으론 불법이었지만 신문광고까지 내며 공개리에 추진됐으며, 종국에는 여권까지 발급해줬던 점 등으로 미뤄보아 우리 정부의 관계기관에서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주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
멕시코 이민은 이민자들을 떠나보낸 직후 그들이 노예나 다름없는 심히 고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전해져서 고종황제를 비롯해 정부 관계기관에서 몇 차례 관심을 보였을 뿐 곧 잊혀진 존재가 돼버렸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우리나라가 독립한 이후에도 구한말 이민 1세대와 그 후손들에게 모국 정부와 국민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멕시코 이민에 관한 기초적 자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1998)는 기존 자료들을 총체적으로 취합하고 멕시코 현지에서 발굴한 새로운 자료들을 통합 정리했을 뿐 아니라 이민 1세대와 그 후예들의 증언을 채취함으로써 멕시코 이민에 관한 총체적인 그림을 제시해준다. 이자경은 이 과정에서 자료의 망실과 부족, 기존 자료간의 상충 등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성철은 ‘멕시코 한인 이민사 현황과 문제점: 초기 한인 이민에 국한하여’(1995)란 논문에서 기존 자료가 많지도 않은데 이들마저 ‘잘못된 기록, 오류들로 점철되어’ 있으며 멕시코 이민 연구자들이 이 잘못된 자료들을 비판 없이 ‘재인용하고 참조하는 바람에 계속 오류가 오류를 낳게 되는 결과’를 빚어왔다고 지적했다.
서성철은 이제부터라도 학계에서 멕시코 이민에 관련된 ‘원사료(原史料)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서 이를 취합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아울러 취합된 ‘사료들의 진위 여부를 가리고 모든 부정확, 잘못을 정정해 학술적 자료로서 그것들을 재구성해보는 일’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필자들은 멕시코 이민에 관한 원사료가 크게 부족한 현 상황에서 멕시코 이민과 관련한 문헌에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몇몇 자료들을 새로 찾았다. 따라서 이들 자료를 제시하면서 그에 관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멕시코 이민 연구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