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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달콤한 인생’ 만든 김지운 감독

“난 ‘피맛’을 안 보면 영화 찍은 것 같지가 않아요”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사진: 홍중식 기자

영화 ‘달콤한 인생’ 만든 김지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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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 개봉한 영화 ‘달콤한 인생’은 폭력조직 보스(김영철 분)의 젊은 정부(신민아 분)에게 한순간 ‘흔들린’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 남자(이병헌 분)의 이야기다. 음모, 어두운 열정, 비정함, 파멸 등을 ‘피범벅 액션’으로 참담하게 그려낸 전형적 누아르로 끔찍하지만 아름답고, 진지하지만 장난스럽고, 사소하지만 중요하며, 긴장의 극단에서 유머가 튀어나오는 ‘김지운식’ 부조리가 돋보인다. 또 극적인 명암 대비와 소품이나 배경, 인테리어가 주는 색감, 그리고 강렬한 선홍빛 피가 만들어낸 세련된 영상미도 강점이다. 하지만 평단의 호평에도 영화는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전국 관객 100만명을 조금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선에서 종영됐다.

-관객이 기대보다 많지 않았던 이유는?

“처음엔 의외였어요.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흥행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정도도 상당한 성과라고 봐요. 비수기였고, 흥행에 치명적이라는 ‘18세 이상’ 판정이 나왔어요. 또 ‘누아르’라는 생소한 장르였고, ‘주먹이 운다’는 센 작품과 동시에 개봉했고요. 그냥 이 영화를 두세 번씩 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죠. 사실 ‘달콤한 인생’은 되게 섹시하고 매력적인 영화거든요(웃음). 계속 잔상이 떠오르는 중독성이 있는 영화, 일부 관객에게 그렇게 각인됐다는 것만으로 영화를 만든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자체의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범벅 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보스의 애인 ‘희수’가 너무 평범하다는 거예요. 주인공 ‘선우’에게 가장 ‘달콤한 인생’을 선사한 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여자인데, 실감이 안 난다는 거죠.

“희수가 팜 파탈(요부)이 아니네, 모든 이를 죽일 만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네, 말들이 많지만 그건 제 영화를 완벽하게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선우는 희수한테 매혹당한 게 아니라 매혹의 순간 자체에 매혹당한 거니까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한 남자의 파멸을 그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나르시즘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섀도복싱을 하는 게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때 가장 달콤했던 순간, 가장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김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도 나르시즘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죽어 있던 내 시간을, 멈춰 있던 내 오감을 깨운 것에 대한 감사라고 봐요. 그 사람에 대한 대상화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해준, 그래서 즐겁게 살아가도록 해준 자신에 대한 감동이자 감사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꾼’ 포기한 적 없어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파멸로 치닫는 한 남자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잘 표현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하게 한 영화를 찍어서 이병헌은 원이 없겠다”고 말했을 정도. 보스 역의 김영철 등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김영철씨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중년 남성의 심리를 멋지게 표현했다고요.

“중후하고 냉철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멋진 아저씨를 연기할 만한 배우가 국내에서는 참 없더라고요. 워낙 영화나 방송이 젊은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중년 배우들은 시트콤에서 코믹한 연기만 선보이고 있죠. 다행히 김영철씨는 그 나이대 남자의 멋을 유지하고 있고 영화에서도 보스 특유의 카리스마와 비정함, 더불어 조잔함과 질투를 잘 표현해줬어요. 리처드 기어나 숀 코너리같이, 우리 영화계에도 중년 연기자들이 자신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해요.”

-‘달콤한 인생’도 그렇고, 김 감독의 영화는 무척 공들여 찍은 흔적이 보입니다. 영상이 매우 세련되고 색감이 참 뛰어난데요. 특히 선홍빛 피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피맛을 봐야 영화를 찍은 것 같아요(웃음). ‘장화 홍련’ 때는 정말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공포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계속 뭔가 차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피로 복도 한 바퀴를 돌렸죠. 색채가 주는 강렬한 느낌…. 저 역시 피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감정이 고조되고 흥분되거든요. 지금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들게 되면 피가 없이도 피를 본 듯한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겠죠.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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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사진: 홍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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