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고정희 식의 ‘바닷물 한 컵’에 해당하는 사물을 대하고 혼자 놀랄 때가 있다. 공산국가 중국이 나라를 개방한 직후 옌볜지방을 여행하다가 만난, 과거 공산당 간부를 오래 지낸 사람에게서 “맑스를 보러 갈 때”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은 경우다.
“나도 이젠 맑스를 보러 갈 때가 된 모양이오.”
이 말을 한 분은 조선족인 공산당 간부였는데, 그는 약속시각을 깜빡 잊는 바람에 약속 장소에 늦게 와서 사과하던 중 무심코 그런 소리를 꺼냈다. 상황이나 문장의 앞뒤 문맥으로 보아서 듣는 즉시 그 뜻을 충분히 짐작했다. 맑스는 죽은 자, 그러니까 “맑스를 보러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미 알아듣긴 했지만 굳이 확인해보니 역시 짐작대로였다. 그 사회에서는 전부터 “나도 이젠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을 “나도 이젠 맑스를 보러 갈 때가 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종의 관용어법처럼 굳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그 말은 문자 그대로 ‘전체 바닷물의 맛을 알게 하는 한 컵’에 해당했다.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유물론자인 공산주의자들이 죽은 뒤의 세상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기야 내세에 대한 확신에서가 아니라 그저 관용적인 군말로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런 말이 일반화된 사회라는 것은 확실히 증명된 셈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터라 더욱 큰 충격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노인들이 간혹 “나도 이젠 조상님들을 보러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어법이다.
‘아, 여기는 참으로 정치적인 사회이구나!’
그런 탄식이 절로 떠올랐다. 중국은 사람들이 내세에서 보고 싶은 인물로 하필 정치사상적 지도자를 꼽는 사회임이 그 한마디 군말에서 선연하게 드러났다.
‘맑스’는 우리식 표기법에 따르면 ‘마르크스’인 공산주의의 창시자다. 지난 세기 독일에서 부유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헤겔 좌파 학문을 시작해 평생을 공산주의 이론을 세우는 데 바친 사상가로 말년에는 혹독한 빈궁 속에 살다 65세 때인 1883년에 죽은 인물이다. 내가 그의 사망연도까지 기억하는 것은 ‘망명지인 영국에서 살 때 입던 옷을 저당 잡혀 외출을 못하는 일이 흔했고, 때로는 종이가 떨어져 저술을 중단했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다 65세에 책상에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는 그의 기이한 최후 때문이다. 어떻게 책상에 앉은 채 숨을 거둘 수 있을까. 그의 최후는 저술가의 한 사람인 내 마음 깊은 곳을 후비는 아픔을 느끼게 한 정경이었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는 저승 또는 내세에 만날 사람으로 ‘조상님’을 떠올릴 때, 그들은 마르크스를 떠올리며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은?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레닌’은? 돌연 궁금증이 일어 물어본 결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 아니오. 그런 경우에 ‘레닌’은 전혀 거론하지 않습네다. 그저 ‘맑스를 보러 갈 때가 되었다’고만 말하지요.”
“중국의 지도자들은 전혀 말하지 않고 오로지 ‘맑스’만 거론합니까?”
“아, 예. 중국 지도자도 거론합네다. ‘맑스’ 대신 대개 ‘호요방(胡耀邦)’을 말하지오. ‘호요방을 보러 갈 때가 되었다’고 하는 겁네다. 또 더러 ‘주은래’를 거론하기도 하지요. ‘주은래를 보러 갈 때가 되었다’고 말이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