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대박’과 ‘쪽박’ 사이, 대학 이색·실용학과 玉石 현주소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6-03-06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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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완동물미용과, 웰빙테라피과, 푸드디자인학과…. 전문대 위주로 개설된 이색·실용학과의 인기가 대단하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 흐름에 따라 취업시장의 구미에 딱 맞춘 학과가 한 해에 수십개씩 쏟아진다. 그러나 실용학과를 맹신하지 말지어다! 톡톡 튀는 학과와 높은 취업률뒤에는 함정이 있다.
    ‘대박’과 ‘쪽박’ 사이, 대학 이색·실용학과 玉石 현주소

    방송기기 실습에 나선 한양여대 실용음악과 학생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애견숍을 운영하는 장은희(04학번)씨는 김천대 애완동물뷰티패션과를 졸업했다. “강아지에 미쳐”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 의상디자인과를 자퇴하고 전문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차 안에서 우연히 신입생 모집광고를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했는데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생긴 거예요. 인기학과라 비전도 있겠다 싶었어요.”

    장씨는 졸업을 앞둔 2004년 11월 서울로 올라와 3000만원을 들여 10평 규모의 숍을 열고 미용사와 용품판매, 배달 등 1인3역을 하고 있다. 월수입은 500만∼600만원. 경력이 오랜 A급 애견미용사가 받는 월급이 15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몇 배 소득을 올리고 있다. 덕분에 남자친구에게 빌린 초기비용 3000만원은 일찌감치 다 갚았다.

    장씨가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과감하게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대학시절부터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개도 여러 종(種)이 있고 저마다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교 수업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김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각 견종(犬種) 전문가에게 따로 수업을 받았어요. 또 인터넷을 뒤져 우리보다 애견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최신 정보를 스크랩하고 새로운 미용 스타일을 연구하는 등 대학생활 내내 오로지 개에 대한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경북 영주에 있는 경북전문대 뷰티케어과를 졸업한 권혜민(03학번)씨는 서울 강남차병원 피부과 피부관리실에서 환자들의 피부재생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뷰티케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직업 전망이 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부관리사의 위상이 예전보다 높아진데다, 학교에서 현장 실기 중심으로 수업을 하니까 따로 기술을 습득할 필요 없이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나가 배운 걸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병원에 입사하기 전 권씨는 개인이 운영하는 피부관리실에 다닌 적이 있다. 그곳에선 4대 보험 가입이 불가능했고 보수도 적었다. 옮긴 직장에선 예전보다 월급도 25%쯤 많아졌고 퇴근시간도 이를 뿐 아니라 맡은 업무 이외의 잡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권씨는 “적성을 살려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고, 색소 침착이나 여드름 등 여러 문제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나만의 노하우로 자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이 평생 가져도 후회하지 않을 직업”이라고 했다.

    권씨의 대학동기생들은 현재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피부미용 분야에 진출해 있다. 그 가운데 김오복씨는 해외 유명 헤어디자이너 아래서 연수하며 10년 넘게 미용사로 일하다 4년 전 고향인 영주로 내려와 헤어숍을 열고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방송통신대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꿈은 강단에 서는 것.

    “예전에는 헤어 관련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르치는 대학이 없었는데, 요즘은 4년제 대학에도 학과가 생길 만큼 발전했습니다. 헤어 아티스트가 배출되는 등 시장이 성숙하고 비전이 밝아 이론 공부를 좀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미용 기능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김씨는 “숍 직원이 5명뿐이라 회사로 치면 아주 작은 규모지만, 꾸준히 배우지 않으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졸업 후 성공적으로 진로를 개척한 세 사람은 “당장 이색적이고 인기를 끄는 학과라 해서 모두 제대로 취업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적성에 맞는 학과인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설 이색학과, 인기 급상승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취업문이 좁아지고 대학에 진학할 고교생 수가 줄어들면서 전문대를 중심으로 ‘실용학문’을 표방한 이색학과들이 줄지어 개설됐다. 김치식품과학과, 생활교양과, 헬스매니지먼트과, 애완동물과, 다이어트정보관리과, 뷰티코디네이션과, 카지노경영과 등 학문 중심의 기존 대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학과들이다. 3~4년 전부터는 이색학과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고 ‘취업률 100%’를 기록하는 학과가 줄을 이으면서 해마다 수십 개의 이색학과가 새로 생겨나고 있다.

    그런 중에 지난해 5월 전국 158개 전문대학 보직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부를 집중 성토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정부가 대학(4년제) 편들기로 전문대를 홀대하고 있다는 것. 당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국내 대학의 85%를 취업률 100%를 목표로 하는 교육 중심 대학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전문대학측은 “취업을 위한 교육 중심 대학은 전문대의 영역”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이승근 부장은 “최근 대학들이 취업이 잘되는 전문대의 전통 인기학과를 잇따라 개설하는 등 영역침범이 위험수위에 달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현실에서 대학에 학생들을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최근 4년제 대학에서 개설한 학과 가운데 취업률이 높은 전문대 인기학과를 본뜬 것은 안경광학과, 방사선과, 치위생과, 재활공학과, 물리치료과, 임상병리과, 치기공과, 외식조리학과, 푸드디자인학과, 귀금속세공과, 화장품과학과, 애완동물과, 건강관리과, 피부미용과, 메이크업과 등이다. 전문대에 개설된 이들 학과는 취업률이 높아 인기가 높고 입시경쟁도 치열하다. 가령 서울보건대·김천대·대구보건대의 안경광학과, 진주보건대·대전보건대의 치위생과, 청양대·동우대·구미1대학의 피부미용과, 광양보건대 치기공과, 남도대·성도대·대동대의 호텔조리제빵과와 호텔조리계열, 호텔외식조리과, 신성대·대원과학대·순천청암대·서울보건대의 물리치료과, 김천대 애완동물뷰티패션과, 서해대 애완동물과 등은 지난해 취업률 100%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면서 전문대를 중심으로 이색학과가 속속 등장한 데 대해 이승근 부장은 “시장수요에 따라 새로운 직무나 직종군(群)이 생기고 사라지는 순환 사이클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따라서 기술 중심의 전문대는 사회 트렌드나 사이클에 맞춰 유기적으로 신속하게 새로운 학과를 개설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정원 자율화로 학과 개설과 폐지가 비교적 쉬워진 데도 원인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DB에 따르면 2005년(2004년 8월과 2005년 2월 졸업생 포함) 전체 취업률은 대학이 65%, 전문대가 83.7%였다. 그 가운데 서울보건대 관광영어통역과, 남해전문대 인터넷비즈니스정보과, 김천대·서울보건대·전북과학대 안경광학과와 미용예술계열, 대구과학대 간호과, 경북전문대 뷰티케어과, 동우대 피부미용과, 혜전대 외식산업과, 군장대 체육무도계열 등은 취업률 100%를 기록했다. 이들 학과는 졸업생 10명 중 9명이 전공분야 직종으로 진출했다.

    취업률 100%의 허실

    이색·인기학과가 전반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동일 학과라도 학교에 따라 취업률 편차는 매우 큰 편이다. 또 취업률이 100%라 해도 ‘취업의 질(質)’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지난해 각각 100% 취업률을 기록한 대경대와 혜전대 모델과의 경우 전자는 졸업생 절반 가까이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취업했다. 반면 혜전대의 경우 졸업생 전원이 전공분야로 진출했다. 상명대와 우송대의 건강관리전공, 스포츠건강관리학과는 둘 다 취업률이 100%였지만 상명대는 10명 중 5명꼴로, 우송대는 10명 중 7.5명꼴로 전공분야에 진출했다.

    지난해 취업률 100%를 기록한 경북전문대 뷰티케어과는 졸업생의 95%가 방송국, 화장품 업체, 병원, 피부관리실, 유명 헤어숍에서 일하는 등 전공분야로 진출했다. 이 학과 김귀정 교수에 따르면 다양한 산업협력 체결, 교수가 졸업부터 취업까지 1대 1로 학생을 책임지는 시스템, 현장방문을 통한 취업자 사후관리 등이 전공분야에서 높은 취업률을 기록한 비결이다. 5명의 교수 대부분이 산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기업으로부터 기자재, 실습품, 장학금 등을 끌어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현장을 잘 알기에 학생들에게 현장 중심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고 한다.

    지난해 취업률 100%를 기록한 학과 중엔 전공분야 진출이 0%인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에 나와서 전혀 쓸 수 없게 됐고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방의 전문대 애완동물과를 졸업한 김모(22)씨의 말.

    “우리 과 졸업생이 100% 취업했지만 졸업생 60여 명 중 전공을 살려 취업한 경우는 두세 명뿐입니다. 취업이 가능한 곳은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애견숍이나 동물병원인데, 이런 곳에선 전문대 졸업자보다 학원에서 배운 사람을 선호해요. 어차피 애견미용은 기술직이라, 집중적으로 기술을 연마한 학원 출신이 더 낫다는 거죠. 그래서 전공과 무관한 사무직이나 영업직으로 간 졸업생이 많아요. 취업률과 실속은 별개입니다.”

    피부미용과 졸업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강남의 한 피부미용실에 취업한 정모(23)씨는 진로를 고민 중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60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하려니 막막하기 때문이다.

    “학과를 선택할 때만 해도 전국적으로 피부미용실 체인점 붐이 일어 취업이 쉬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취업하려니 근무여건이나 환경이 너무 열악해요. 취업문이 가장 넓은 곳이 피부미용실인데, 대규모 사업체를 제외하면 4대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월급이 너무 적어 비전이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과를 가는 건데….”

    오늘은 인기학과, 내일은 비인기학과

    애완동물 관련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1)씨는 요즘 학과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함께 입학한 과 동기 120명 중 3분의 1가량이 자퇴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졸업 후 진로가 밝지 않아 자퇴합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애견숍에서 남자 미용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요. 그나마 학원 강사로는 남자를 많이 쓰는데, 경력이 있어야 하니까 학원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아요.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처음에는 미용사 보조로 일해야 하는데, 견습생 월급이 30만원 정도예요. 마음 같아선 수능시험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색 유망학과로 인기를 끌다 해가 갈수록 취업률이 떨어지는 학과가 적지 않다. 애완동물관리과는 1999년 87.7%의 취업률을 보이다 이듬해 76.7%, 2003년에는 61.7%로 떨어졌다. 2001년 100%의 취업률을 기록한 장례지도과도 이듬해 91.7%, 2003년에는 66.7%로 낮아졌다. 경기불황으로 산업 전반이 침체된 이유도 있지만 인기학과로 소문나면 대학들이 앞 다퉈 유사 학과를 개설, 그만큼 졸업 후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

    김천대는 2003년 국내 처음으로 애완동물뷰티패션과를 개설했는데 이후 전국 30개 대학에 유사한 과가 생겼다. 최화식 학과장은 “초창기엔 우리 학교 27개 학과 중 우리 과가 입학 경쟁률 5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좋았는데, 올해는 입학정원을 절반으로 줄여 60명만 선발했다”고 말한다. 여러 학교에서 유사 학과를 개설해 정원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새로운 학과를 개설하려면 산업 전반을 살피고 향후 비전을 따져보는 등 몇 년 동안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과를 만들어 인기를 얻으면 다른 대학이 바로 모방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니까 공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생이 분산되니 입학정원이 다 차지 않고 졸업생 취업 경쟁이 심해지는 거죠. 어느 학교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새로운 과를 만들면 그 과가 자리잡을 때까지 교육부에서 인센티브를 준다든가 하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필자는 ‘신동아’ 2001년 11월호 ‘21세기 이색·유망학과’ 기사 관련 취재를 위해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이승근 부장을 만났다. 당시 그는 “취업이 잘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기학과로만 학생이 몰리면 오히려 현장에서 인력 공급초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취업이 잘된다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학과를 여러 학교가 신설할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우려했다. 그의 우려가 4년여가 지난 지금 일부 이색학과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기술과 산업, 문화를 포괄하는 사회 트렌드가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른바 ‘뜨는 학과’와 ‘지는 학과’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04 학과정보’에 따르면 2004년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높은 학과는 초등교육과, 의예과, 간호학과로 취업률이 90%를 넘었다. 대학 전체 취업률이 56.4%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편. 체육계열, 관광학과, 음악학과, 디자인학과, 여행·관광·예체능계열도 전체 취업률을 웃돌았다. 반면 전통적인 인기학과로 경쟁이 치열하던 법학과와 정치외교학과는 최근 몇년 동안 평균을 훨씬 밑도는 낮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여대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던 어문계열도 비인기학과로 추락했다.

    거꾸로 가는 학과 통폐합

    ‘대박’과 ‘쪽박’ 사이, 대학 이색·실용학과 玉石 현주소

    전문대 공동으로 마련한 입학설명회 및 원서접수 행사.

    한편 교육인적자원부가 2004년부터 지방대학 혁신 역량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누리사업(Nuri·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은 대학 구조조정과 특성화로 이어지면서 대학간 통폐합 또는 단과대, 학과 통폐합 등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불거진 입시생이 대입정원보다 적은 역전 현상으로 해마다 입학정원 미달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방대와 전문대의 입학정원 미달 사태는 심각하다. 여기에 의·약대, 한의대, 법대, 교육대를 제외한 학과의 정원 자율화가 실시되면서 학교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설치하는 대학도 생겨났다. 이렇듯 정원을 과다책정하거나 백화점식으로 여러 학과를 설치했다가 신입생 미충원 사태가 발생하면 학과 또는 학부 설치 1~3년 만에 통폐합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은 “학과 개설과 폐지가 빈번한 것은 대학교육의 환경변화에 따른 생존전략 측면이 크다”면서도 “학생 유치를 위해 학과 프로그램은 똑같은데 이색 명칭으로 바꿔 붙이거나 눈길 끌 만한 학과를 급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부는 학생 수가 모자라 야간학과 운영이 어려우니까 편법으로 주간학과와 통합해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학은 평생교육기관으로 가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사회 변화를 따라가려면 야간학과가 활성화돼서 직장인들이 기술을 재습득하는 장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야간학과가 폐지되는 등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최근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4년제 대학의 신설 및 폐지학과(부)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122개 대학(국·공·사립대와 산업대) 가운데 학과 개설 1~3년 만에 사라진 과가 수두룩하다. 정확한 숫자를 집계하기 어려운 것은 학과명칭만 바뀌는 경우, 학과에서 학부 또는 학부에서 학과로 변경된 경우, 야간에서 주간으로 변경되면서 타 과와 통합되는 경우, 아예 없어진 경우 등 폐과(廢科)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폐지된 학과는 안전공학, 농산업교육, 행정학, 건축공학, 경제학, 정치외교학, 영어영문학, 회계학, 경영학, 출판미디어학, 언론정보학, 연극영화학, 한국음악, 문화재관리학, 컴퓨터학, 전산학, 전자공학, 가정교육, 한국학, 식품영양학, 건축학, 역사문화학, 철학, 아동학, 수학, 문헌정보학, 경제학, 무역학, 국사학 등이다.

    반면 같은 시기 새로 개설된 학과로는 사회복지, 해양심층수학, 경호비서학, 뷰티디자인, 경찰학, 군사학, 스포츠레저학, 노인복지학, 이동통신공학, 토털코디예술학, 자동차관리학, 작업치료학, 스포츠건강관리학, 게임멀티미디어학, 주거학, 예술경영학, 플라워디자인학, 해양경찰학, 여론조사학, 게임애니메이션학, 문화콘텐츠학, 조명인테리어학 등이 있다.

    학과 통폐합과 신설학과 흐름을 보면 기존 학과의 세분화, 전문화가 이뤄지면서 학문 중심에서 기술 중심, 취업 중심으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뜨는 학과와 지는 학과,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 대학에 비해 전문대는 기술 중심, 취업 중심의 학과 통폐합과 신설이 더욱 빠르다. 2000년 이후 전문대의 학과 통폐합 또는 폐과 사례를 보면 명지대는 공업경영과를 산업시스템경영과로, 공업디자인과를 산업정보디자인과로, 시각디자인과를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로, 전자과를 정보미디어과로 변경했다. 진주산업대는 축산학과와 낙농자원학과를 폐지하고 동물생명학과를 신설했다. 또 생활관리학과는 아동가정복지학과로, 경영학과는 벤처경영학과로 각각 변경했다. 부천대학은 사무자동화과를 e-비즈니스과로 바꿨다. 오산대학은 여성교양과를 생활보육과로 변경했다. 이런 추이를 지켜보면 향후 취업전망이 밝은 유망학과나 취업률이 높은 인기학과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들, “황당해요”

    대학들이 사회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학과 통폐합을 단행하고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재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서울 J대 독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조모(27)씨는 독어학과가 독문학과에 흡수통폐합된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학교측이 학생들에게 사전 설명 없이 통폐합을 발표했다. 어학과 문학은 수업내용에 차이가 있는데, 통폐합되면서 원래 선택한 전공과목 수업이 부실해졌다. 독어과를 졸업한 선배들도 학과의 맥이 끊긴다고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 대학 프랑스어문학과 4학년 김모(23)씨는 “올해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학교측이 제시한 폐과 이유는 학생 수 미달과 학과의 비전이 없다는 것, 취업에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40명 정원에 두세 명 모자란 것이 폐과 이유라니 납득하기 힘들다. 나야 곧 졸업하지만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했다.

    식품영양학과를 신설했다 2년 만에 폐지한 상지대 학사관리 관계자는 “야간학과 주간으로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학과 변경 없이 주간으로 시간만 옮기는 경우가 있고, 아예 폐과되는 경우 타과로 전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폐과를 전제로 신입생을 받지 않는 과도 있다. 이 경우 재학생은 졸업 때까지 자신이 원하는 학과 공부를 할 수 있다. 학생 한 명이라도 끝까지 자신의 학과를 지키겠다면 수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생들로서는 취업 등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어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다. 폐과에 반대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학생도 있다. 혼자 끝까지 남아 학과를 지키며 수업을 계속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이 자퇴를 선택하거나 마지못해 전과한다.

    지방의 모 대학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윤모씨는 졸업 후 영화계로 진출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과가 폐지되면서 남은 4학기 동안 혼자 수업을 받게 됐다. 그나마 학교와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겨우 전공과목 개설을 약속받았다. 그는 “동기생 30여 명이 자퇴하거나 전과하는 등 뿔뿔이 흩어지고 나 혼자 남았다. 그런데 영화 전담 교수도 없는 실정이라 부실 수업이 될 게 뻔하다. 학교의 눈총을 받으며 동기나 후배도 없이 혼자 수업 받을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학업이나 취업 문제를 상담할 교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과 폐지에 누구보다 당혹스럽고 난감한 경우는 휴학계를 내고 군복무 중인 남학생들이다. 전문대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 중인 한 남학생은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얼마 전 동기가 면회를 왔는데, 황당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과가 폐지된다니요. 그럼 제대하고 어디로 복학하란 말입니까.”

    그러나 한 대학 관계자는 “만약 어떤 학과가 2~3년 후 도태될 것 같고 실용성이 없다 싶으면 학교로서는 추세에 따라 폐과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긴 안목으로 학과 골라야

    전문가들은 재학 중의 학과 통폐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색학과, ‘튀는 학과’의 100% 취업률에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과거에 없던 학과일수록 전공교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첫째 이유다. 100명이 넘는 재학생에 정교수 한 명만 두고 나머지는 시간강사로 채운 채 학과를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취업 전문가들은 사회복지, 보건의료, 레저·건강 관련 산업, 실버산업, 국가 성장 동력 부분인 자동차 관련 분야의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대는 1~2년 전부터 관련 학과를 속속 신설하고 있다. 세경대 아트케어과, 송호대 골프관리전공과 스포츠예술전공, 강원관광대 관광상품개발과, 상지대 관광조리음료과, 영서대 의료시스템정보과가 지난해 신설됐다. 이외에 작업치료학과, 화장품과학과, 병원경영학과, 실버복지학과, 우주과학과 등이 새로 생겼다.

    올해 신설된 전문대 이색학과로는 순천제일대 병원코디네이터과, 선린대 웰빙건강관리과, 서라벌대 웰빙테라피과, 아주자동차대 자동차텔레매틱스전공과 모터스포츠전공, 전남과학대 공항면세전공, 송호대 축제이벤트전공, 동아인제대 승마조련전공과 로봇제어전공, 동부산대 의료서비스매니저과, 경남정보대 신발패션산업과, 김천대 요양관리과 등이 있다. 몇 년 후 이 가운데 몇 개 학과가 ‘뜨는 학과’로 살아남고 ‘지는 학과’로 도태될지 모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은 “아무리 유망학과라 해도 사회가 워낙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몇 년 후의 전망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학과 선택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사회 수요를 고려하기에 앞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학과, 대학 간판보다 전공 영역, 현재의 인기학과에 쏠리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우선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해마다 신설학과가 쏟아지고 한두 해 지나면 폐지되는 학과가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소신 지원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학과가 뜬다!

    디자인, 여행, 레저, 미용분야 수요 늘 듯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미래의 직업세계 2005’ 자료에서 향후 5년간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학과를 아래와 같이 선별해 발표했다.

    ▲애완동물미용학과 : 당장은 취업률이 다소 떨어졌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애완동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여지가 많고 핵가족화와 고령화로 애견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어 애완동물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그 쇼 등 애견문화의 발달과 대중화로 애견미용과 훈련사 등을 중심으로 인력 수요가 다소 증가할 것이다.

    ▲응급구조학과 :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산업재해, 교통사고 등의 사건·사고가 다양해지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응급 환자의 증가로 현장 응급처치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또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스포츠 및 레저, 위락 시설 분야에 응급구조 처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수상안전요원, 산악안전요원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분야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대박’과 ‘쪽박’ 사이, 대학 이색·실용학과 玉石 현주소
    ▲제품디자인·산업디자인학과 : 디자인은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자리잡아 가격과 품질보다 디자인을 우선으로 고려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공학·정보통신공학·컴퓨터공학과 :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새로운 놀이문화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청소년층뿐만 아니라 성인 중에도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 게임산업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또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게임 플랫폼이 생겨 나면서 양적 팽창도 기대되고, 대만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수출도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컴퓨터 게임 개발인력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뷰티아트·피부미용학과 : 문화·예술 산업의 양적·질적 확대와 일반인의 미에 대한 관심 증가로 메이크업아티스트 및 분장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식품영양학·생명공학·미생물학·식품가공·식품공학·식품과학과 :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먹을 거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건강을 생각한 다양한 기능성식품 시장이 확대되어 향후 식품공학 기술자의 고용증가가 예상된다. 또 맞벌이 및 독신자, 그리고 주 5일제로 야외에서 레저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공식품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도 향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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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학·호텔경영학과 : 여행과 레저산업이 크게 부각됨에 따라 관련 업계의 동반 성장이 예상된다. 또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유치 관광산업도 본격화했다. 따라서 앞으로 여행상품기획가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볼 수 있다.

    ▲도시교통공학·지상교통공학·도시환경학·도시계획공학·도시계획설계학과 : 과거 개발 위주로 급격하고 무분별하게 도시개발을 했던 것과는 달리 앞으로는 이미 조성된 도시의 유지 및 관리 측면에서 도시계획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또 신도시개발, 택지개발 등의 대규모 도시개발과 기업도시 건설, 경제자유구역 추진, 지역 혁신산업 클러스터 건설, 종합관광단지 건설 등의 추진이 예상되면서 도시계획과의 고용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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