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월드컵을 준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행보가 숨가쁘다. 1, 2월 세계를 돌며 치러진 평가전과 전지훈련을 통해 아드보카트가 한국 축구에서 구현하려는 비전이 조금씩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포백 시스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히딩크 감독과는 어떻게 다른가.그의 비전은 어디서 유래했으며, 어떻게 진행되고, 어디로 향하는가. 미리 보는 독일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전략·전술 A to Z.
전술훈련이란 선수 개개인에게 특정 상황, 특정 장소에서의 동선(動線) 패턴을 숙지시켜 사전약속에 따라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창조적 반복훈련이다. 각각의 선수를 경기장의 어느 장소에 어느 대형으로 배치하느냐는 문제가 바로 포메이션(formation)인데, 이 포메이션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각 부분을 어떤 식으로 조합해 전체적인 운영틀을 만들 것인지를 두고 각국의 감독들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아드보카트 호의 포백(four-back) 실험’이라는 말로 이번 전지훈련의 지향점을 집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기사마다 등장하는 스리백(three-back)과 포백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두고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두 시스템엔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단지 상대방 공격수의 숫자에 따라 수비수를 한 명 더 늘리고 줄이는 것 아닌가. 표면적으로 보자면 맞는 말이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스리백과 포백은 내각제와 대통령제만큼이나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대인방어와 지역방어
월드컵 4강신화에 빛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애용한 포메이션은 스리백을 바탕으로 하는 3-4-3이었다.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추구하는 포메이션은 포백을 근간으로 하는 4-3-2-1이나 변형 4-3-3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리백으로 크게 성공한 히딩크 감독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물론 스리백이 포백에 비해 근본적으로 열등한 전술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월드컵 16강 이상을 꿈꾸는 팀이라면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서는 포백 전술이 스리백 전술에 비해 구조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농구로 비유하자면 스리백은 대인방어(man to man)이고 포백은 지역방어(zone defense)다. 실점 상황을 보면 스리백은 상대적으로 상대팀에 단독 슛찬스를 많이 내주고 포백은 2대 1 돌파나 공간배후침투 등에 허점을 보인다. 스리백은 수비진 전원이 탁월한 체력 혹은 스피드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반면 포백은 수비진 각 포지션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즉 전술적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이 사전 약속에 따라 정교하게 구성하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포백이 체력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포백은 골키퍼를 포함한 다섯 명의 수비요원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으면 어이없는 실점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예컨대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화면 안의 수비수 숫자는 많아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결정적인 장소에는 상대 공격수 여럿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나, 수비진 사이의 밸런스가 깨져 선수들이 왠지 모르게 우왕좌왕하며 허둥대는 듯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이를 넘어서려면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듯 선수들이 차근차근 호흡을 맞춰가야 한다.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스리백에 비해 포백은 협력 플레이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데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 축구가 떠안고 가야 하는 모든 고민의 출발점이다. 스리백으로 가면 초반 한두 경기는 상대적으로 잘 치를 수 있겠지만, 이후로는 힘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지금 한국 축구의 수준에 비춰보아 포백은 ‘모 아니면 도’라는 도박적 속성이 다분하다. 성공하면 무엇보다도 값진 도구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한 경기, 한 경기에 쏟아붓는 에너지의 총량은 여타 리그 경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막대하다. 월드컵 참가팀들은 모든 경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배치하며 총력전으로 격돌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의 전력이 급상승한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쉬어가는 경기’로 간주할 만한 카드는 한 장도 없다. 16강 이상을 염두에 둔 팀들에 이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고질적 딜레마다.
월드컵에서 각 팀은 비교적 단기간에 여러 번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4강에 진출할 경우 한 달에 일곱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다. 더구나 각국의 프로리그 경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에너지 소모량이 많다. 스리백만으로는 이런 험한 일정을 버티기가 어렵다.
스리백으로 일관한 2002년 히딩크 호(號)의 경우 체력에 문제가 없었던 경기는 단 한 게임, 첫 경기인 대(對) 폴란드전뿐이었다. 두 번째 경기부터는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져 상시적인 부상위험에 시달렸고, 코칭 스태프들은 이에 마음 졸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객석의 관객에게 이러한 ‘무대 뒤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팀 닥터 최주영씨(재활의학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미국전부터는 ‘부상병동’이었다.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하는 심정이 이럴까 싶더라. 이탈리아전을 마치고 나선 정말 암담했다. 김태영은 코뼈 부상, 최진철은 탈진으로 링거를 맞으며 우드드득 몸을 떨었고, 김남일은 발목, 홍명보는 인대가 정상이 아니었다. 수비진뿐이 아니다. 황선홍은 오른쪽 엉덩이뼈 연결부에, 이영표는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에 이상이 왔다. 한마디로 몸 상태가 좋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페인전에 출전할 11명 엔트리를 짤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체력 소모는 스리백 시스템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세계 축구인들이 2002년 한국의 4강 진출을 기적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4-3은 선수 개개인에게 엄청난 체력소모를, 어쩌면 무리일 수밖에 없는 투혼을 요구하는 포메이션이다.
히딩크의 포백 실험
히딩크의 목표는 애초부터 ‘8강+α’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포백 시스템을 통해 체력을 비축해가며 항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딩크는 6개월의 실험기간이 끝나자 포백을 과감히 용도폐기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완만한 능선을 버리고 화끈하게 절벽을 기어오르며 정상을 향하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도전이었다.
강한 체력훈련에 전념해 대표팀 선수 23명 전원의 체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테크닉의 부족을 인해전술로 보완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술이었다. 경기장 어느 지점에서건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으면 세 명이 에워싸는 ‘삼각압박(triangle pressure)’ 전략으로 공을 처리할 시간과 공간을 봉쇄한다. 이 1차 저지선이 뚫리면 인근의 우군이 재빨리 또 다른 삼각편대를 만들어 계속 압박하고, 모든 병력이 후퇴하며 연속해서 삼각압박 그물을 직조하는 식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직후만 해도 ‘황태자’로 불리며 팀을 리드하던 선수가 고종수다. 그런 그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체력이었다. 분명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선수지만,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그의 약점을 메우려면 나머지 선수들이 90분 내내 도와야 했고 이렇게 쌓인 미세한 피로 탓에 75분이 지날 무렵에는 팀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상황이 여러 번 나타났다. 그래서 감독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고종수를 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비상구급약은 꼭 필요한 법이다. 팀이 절대적인 위기에 몰렸을 때 단 한 방의 섬광 같은 킬 패스로 골을 창조하는 테크니션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를 염두에 두고 히딩크가 택한 카드는 고종수보다 수비가담 능력이 뛰어난 윤정환이었다.
박항서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기간에 윤정환의 투입을 두 차례 고려했다고 한다. 첫 번째 상황은 0-1로 뒤진 이탈리아전 후반 종반이었고, 두 번째는 준준결승전인 스페인전 후반이었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홍명보와 김태영을 빼고 차두리, 이천수를 투입하며 체력적으로 흔들리던 이탈리아를 더욱 거세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넘어갔다. 소모적 공방전이 거듭되던 스페인전에서는 윤정환에게 몸풀기를 지시했지만, 예기치 않게 김남일이 발목을 접질려 교체되면서 수비진을 급히 보강해야 했기에 실전투입 직전에 윤정환에게 벤치복귀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2002년의 뒷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스리백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지 의구심이 생길 법하다. 먼저 살펴볼 것은 히딩크에게는 ‘주최국 프리미엄’이라는 엄청난 특혜가 있었다는 점이다. 18개월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각 선수의 소속 구단, 심지어는 일본 구단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선수들을 담금질하고 합숙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전세계 어디든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상대와 마음껏 연습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특권도 함께 누렸다.
2002년 4월 중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막바지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거스 히딩크 당시 감독과 한국 축구대표팀.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고 개최국 프리미엄도 사라져 감독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상대적으로 작다. 선수 전원의 체력을 압도적인 수준으로 조련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드보카트 호에 스리백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2002년을 거치며 선수들 사이에 표준형으로 정착된, 이제는 완전히 몸에 익어 완숙미가 느껴지는 스리백 시스템을 포기하는 일도 간단치는 않다. 나름대로 상당한 가치가 있는 자산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논의가 여기에 이르면, 1990년대 세계 축구를 제패한 3-5-2나 3-4-1-2, 3-6-1 포메이션이 모두 스리백 아니었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전술들은 분명 기본적으로 스리백이다. 3-4-3이 무리가 따르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 있다. 3-5-2를 기본형으로 삼는 이 시스템들은 팀 전체가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스리백의 장점을 접목한 훌륭한 포메이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은 공격가담 능력과 수비전환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1966년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의 램지 감독은 4-4-2 전술을 들고 나와 우승까지 내달렸다. 당시 유행하던 포메이션은 4-2-4나 공격수를 다섯 명 배치하는 2-3-5 유형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축구 비평가들은 “4-4-2는 사실상 수비를 여덟 명이나 배치하는 극단적인 수비전술이며, 이기는 것보다는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배어 있는 소극적 전법”이라고 혹평한다. 극단적으로는 ‘이상주의적 스포츠맨십이 현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승리지상주의에 자리를 내준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다.
램지의 현실주의, 4-4-2
램지가 현실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램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추구한 현실주의자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어진 자원을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해 효율적으로 활용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가를 고려한 전략가였다. 1966년 당시 램지의 고민은 팀 내에 세계적인 윙 플레이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스피드를 이용한 호쾌한 플레이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었다. 미드필드에 병력을 집중배치하고 상대의 공격을 중원에서 저지하며 우수한 미드필더 요원을 모두 가동해 상대의 중앙부를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양 팀의 문전 근처가 아니라 미드필드를 주요 전장으로 삼는 4-4-2라는 전술로 귀결되었다. 원하는 전장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건 잉글랜드는 1966년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각각의 전술은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전술을 채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자기 팀에 가장 어울리는 전술을 찾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램지는 이러한 교훈을 남겼다.
2006년 현재, 윙백은 세계적으로 드물고 희귀한 자원이다. 대한민국 선수 가운데 월드컵 수준에 올라 있는 윙백 요원은 이영표가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2006년 대한민국 월드컵 호가 스리백 포메이션을 채택하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다.
이 지점에서 제기될 만한 의문이 또 하나 있다. 2월8일 3-0으로 쾌승을 거둔 LA갤럭시전을 마치고 난 뒤, 베테랑 수비수 최진철은 “포백 시스템을 소화하느라 스리백보다 훨씬 더 체력소모가 많다”고 말했다. 이것은 앞서의 설명과 모순되지 않는가.
기존의 포백은 스리백을 배치하고 그 뒤에 최종수비수 한 명을 더 둔다. 수비수 네 명을 마름모꼴로 배치하는 것이다. 앞의 중앙수비수는 상대를 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스토퍼(stopper), 최종수비수는 모든 걸 쓸어버린다는 뜻으로 스위퍼(sweeper)라고 한다. 그러나 마름모꼴 수비는 1990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사라졌고, 1994년부터는 스리백이든 포백이든 일자수비로 전환하는 흐름이 대세를 이뤘다. 작전의 전개방향이 더욱 공격적인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때 미드필더나 공격수와 종합협력체계를 구축하면 수비진의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 결국 최진철이 과도한 체력소모를 호소한 것은 수비진 사이의 연결고리가 아니라 각 부분의 연결고리가 아직까지는 다소 미흡하다는 체험담이다. 이 끈을 잇는 일은 지금의 대표팀 수준으로는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상황을 이렇게 놓고 보면 대안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23명의 엔트리 안에 수비자원을 8~9명 배치하는 안정성장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드보카트가 공들여 진행하고 있는 거대한 실험이다. 안정을 지향해 수비수를 많이 뽑아놓으면 비기는 축구는 할 수 있겠지만 이기는 축구는 구사하기 어렵다. 말할 것도 없이 비기는 축구로는 16강을 넘어 이어지는 장기 항해도 기약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표팀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바로 이 프로젝트의 전모다.
아드보카트가 한국에 온 까닭은
아드보카트 신드롬이 퍼지면서 많은 이가 왜 진작 이런 명장(名將)을 감독으로 불러 앉히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답하자면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냉정히 말해 아드보카트는 한국 축구가 쉽사리 영입할 만한 수준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최강 네덜란드 대표팀의 수석코치와 감독을 각각 두 차례 역임하고, 그 사이 필립스 아인트호벤(네덜란드)과 글래스고 레인저스(스코틀랜드), 보루시아 MG(독일) 같은 유럽 명문구단의 사령탑으로 쉬지 않고 활동했다. 이러한 그의 경력과 연령을 감안하면 언제나 세계 축구의 중심에 위치했던 사람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다. 수년 동안 세계 축구계의 주요 시장인 유럽과 떨어져 지내야 할뿐더러 월드컵 이후 그곳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연봉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 이후 파격적으로 오르긴 했지만 성과급을 제외한 연봉은 여전히 70만~100만달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 구단의 모레뉴 감독이 2005-06 시즌에 받는 연봉은 본봉만 800만달러가 넘는다. 한국팀보다 몇 배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곳은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중동 전역에 널려 있다.
말하자면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는 세계 축구계의 변방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한국 대표팀이 아드보카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법의 입장권, 즉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아드보카트와 접촉할 당시, 세계적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개국뿐이었다. 또한 본선 진출국 혹은 진출 예상국 가운데 감독 자리가 비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갑과 을의 관계가 잠시 역전된 덕분에 대한축구협회는 일종의 특수(特需)를 누리며 세계적인 거장들을 감독 후보 명단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단지 월드컵 입장권만으로 아드보카트가 한국행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평생을 두고 추구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그는 한국팀에서 이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를 완성하는 것이다. 한국팀 감독 제의가 오가던 무렵 그가 지인들과 상의한 내용을 조각처럼 이어붙이면, ‘아드보카트의 한국팀 구상’은 좀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축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토털사커’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선수 각자가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과 수비 구분 없이 전원이 공격하고 전원이 수비하는 획기적인 전술이다. 네덜란드는 이 혁명공약을 들고 1974년 월드컵에 입성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를 초토화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홈팀 서독에 1-2로 물러서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4년 후 네덜란드는 좀더 세련된 버전의 토털사커로 정상정복에 도전했으나 역시 결승전에서 홈팀 아르헨티나에게 연장전 끝에 1-3으로 패한다. 후반 종료 직전 스코어는 1-1. 네덜란드의 마지막 슛이 아르헨티나 골문 오른쪽을 맞고 원바운드로 튕겨져 나온다. 이 공이 각도를 조금만 달리했다면 이후 세계 축구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토털사커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나 우승컵 획득에는 실패한 미완의 혁명이었다. 이 토털사커의 창시자가 리누스 미셀이라는 명장이다. 아드보카트는 미셀 밑에서 두 차례 네덜란드 대표팀 수석코치로 일했다. 옛말에 제자를 받는 일을 달리 일러 ‘취우(取友)’라고 했다. 세계적인 거장이 ‘대권’을 잡을 때마다 아드보카트라는 젊은 지도자를 수석 코치로 영입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흡사 무예의 고수들이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고 수련기간을 거쳐 의발(衣鉢)을 전수하는 의식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세대를 넘어 ‘혁명의 꿈’을 이어가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고 할까.
‘혁명의 꿈’, 토털사커
‘축구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획기적인 전술’이라는 토털사커를 좀더 깊이 살펴보기로 하자.
2001년 초 히딩크 감독이 포백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대표팀의 4-4-2 포메이션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3-5-2 포메이션과 비교한 그래픽.
문제는 이러한 구도하에서는 경기 중간중간 특정 선수에게 과도한 부담이 지워지고 몇몇 선수는 개점휴업 상태로 10여 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자원(선수들의 에너지) 배분의 왜곡은 분명 중요한 문제였지만, 부분적인 모순이 있더라도 90분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실(失)보다 득(得)이 많다는 것이 세계 축구계의 결론이었다. 따라서 기본 뼈대는 그대로 두고 선수들의 포진을 바꾸는 미세조정을 통해 개혁과 개선을 추구하자는 것이 세계 축구전술의 기본적인 진화 방향이었다.
토털사커는 선수 개개인에게 고유의 포지션을 부여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정면에서 부정한다. 매 순간 모든 공간에서 돌발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축구의 속성이므로, 포지션에 구애하지 않고 그때그때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경영방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상대 병력이 한쪽으로 쏠려 우리편 수비수에게 공격기회가 생기면 후방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최전방까지 전진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 이전의 축구철학이 ‘직선의 미학’을 추구했다면, 토털사커는 ‘유선(流線)과 흐름의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바둑에서는 흔히 중앙보다는 변이, 변보다는 네 귀가 집을 짓는 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의 ‘우주류 바둑’이다. 바둑 관계자들이 우주류를 처음 접했을 때와 세계 축구 관계자들이 네덜란드의 토털사커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엔 황당한 이야기라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겠지만, 번번이 상대를 무릎 꿇리는 데야 외면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토털사커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축구에는 판정승 제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토털사커는 순간적으로 특정 장소에 병력을 집중해 상대팀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공이 ‘위수(衛戍)지역’을 벗어나는 경우에 대비해 선수 개개인의 이동능력을 극대화하고, 상대보다 먼저 공의 예상 진행공간을 차지해 공격기회를 이어가거나 위기상황을 타파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이를 구현하려면 후보를 포함한 팀 구성원 전원의 체력을 상당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장기간 반복훈련을 통해 팀 전체가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팀워크를 다져야 한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축구의 승부는 얼마나 우수한 경기를 펼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골을 많이 넣었느냐에 따라 갈린다는 사실이다. 토털사커는 순간적인 방심이나 잠깐의 실수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매우 크다. 고정 포지션제가 비록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실수에 대한 2차, 3차 보정장치를 갖추고 있는데 반해, 토털사커는 효율성은 극대화되지만 사소한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네덜란드가 1974, 78년 월드컵에서 연속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 것이나, 전세계적으로 토털사커의 ‘열혈 신도’가 양산되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혁명’은 미완의 상태로 남았고, 이를 가슴에 품었던 젊은 수석코치의 꿈은 지상으로 용솟음치지 못한 채 뜨거운 용암이 되고 그 용암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묵묵히 흘러왔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십년 동안 마음 속의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직 토털사커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토털사커를 표방하며 세상에 나온 숱한 이종(異種)이 있지만 이들이 토털사커의 철학을 구현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꿈인 ‘개량형 토털사커’를 완성하기 위한 중간기착지로 한국 대표팀이라는 실험실을 택한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한 직후 대표팀이 세 경기 연속 10분 내 득점에 성공한 사실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아드보카트가 한국에서 구현하려는 모델은 ‘시차제’ 토털사커다. 경기시작 15분 내에 화력을 집중해서 1차 승부를 걸고, 70분을 고정식 혼합축구로 경기하며 보합으로 버틴다. 그러다가 마지막 10분에 다시 토털사커 모드를 가동해 마무리하는 것이다.
‘시차제 올코트 프레싱’
1983년 7월24일부터 8월6일까지 브라질에서는 제9회 세계여자 농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한국대표팀은 경기시작 후 15분 동안 올코트 프레싱으로 상대의 혼을 뺀 뒤, 벌어놓은 점수를 관리하며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마지막 남은 5분에 다시 올코트 프레싱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농구에서 신장의 열세란 다른 방도가 없는 핸디캡이다. 당시 대표팀은 이 난관을 뚫고 소련,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4강에 진입했다.
아드보카트의 ‘시차제 토털사커’는 이 ‘시차제 올코트 프레싱’의 축구용 버전인 셈이다. 시차제 토털사커나 시차제 올코트 프레싱의 관건은 경기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수들의 집중력을 100%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모든 축구감독의 꿈이지만 아직 성공한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지 상태의 자동차가 최고속도에 이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팀 선수들의 집중력을 경기시작 10초 만에 최상으로 끌어올릴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감독과 선수들만의 비방(秘方)일 터이므로, 고도의 전문성을 구현한 이들 사이에서만 통할 수 있는, 일반인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특수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정도로 궁금증을 달래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선수들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적이 있다. 선수 대부분이 양발을 모두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양쪽 발을 골고루 사용하는 훈련을 유소년 축구선수가 닦아야 할 중요한 기본기라고 생각한다.
포지션의 고도 분업화가 이뤄진 유럽에서는 일류 선수라도 한쪽 발만을 주무기로 사용한다. 시간을 한정 없이 사용하며 훈련할 수 있는 선수는 없으므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어느 발을 개발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막대한 시간을 투자해 양쪽 발의 기능을 골고루 개발하느니, 차라리 한쪽 발의 기능을 특출하게 키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 개념이 유럽 축구의 대세이지만, 멀티 플레이어 시스템은 미드필더 내부에서 전후좌우 이동, 최전방과 처진 스트라이커 사이의 이동을 주요정책으로 채택할 뿐 최전방과 최후방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토털사커의 이상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양쪽 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선수들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토털사커의 초보적인 실험조차 시도하기 어렵다. 여기에 히딩크 감독 당시 몇 단계 향상된 한국 선수들의 체력수준과 팀에 대한 놀라운 헌신성까지 고려하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실험실로 한국보다 더 적합한 나라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10초 안에 모든 걸 바꿔라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1, 2월 전지훈련을 통해 보완하려는 포인트가 무엇인지에 관한 부분이다. 필자는 아마도 ‘전략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반과 종반에만 토털사커 모드를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면 단 10초 이내에 전술모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히 레이싱카를 타다가 장갑차로 바꿔 타고 다시 스포츠카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레이싱카를 타고 달리는 도중에 차체를 개조해서 트럭으로 바꾸고 다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4륜 구동에서 승용차로 구동방식을 바꾸는 것에 견줄 만한 야심찬 시도다.
작전이 맞아떨어져 초반 득점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먼저 점수를 잃으면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회할 것인가. 경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것이 그라운드의 진리다. 순간적인 모드 변환을 통해 상대팀을 교란한다는 기본전략 외에도, 핵심 선수의 부상에 대비해 백업 요원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이 두 지향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흐름에 따라 경기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다면, 즉 우리의 리듬에 맞춰 90분을 운영할 수 있다면 선수의 부상 확률도 그만큼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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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면 3월 이후에는 아드보카트 호의 마지막 담금질이 시작될 것이다. ‘월드컵 16강전, 남은 시간은 7분, 스코어는 1-3으로 두 골 뒤져 있는 상황’ 같은 극단의 위기를 타파하고 벼랑을 기어오르게 만드는 족집게 훈련, 비상벨이 울리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출동해 불길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소방관 같은 체력과 마음가짐을 팀 전체가 갖출 수 있도록 담금질 하는 훈련 등이 그것이다. 뜨거운 불이 단단한 쇠를 낳는다는 건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다. 연금술사 아드보카트가 한국의 축구 팬들에게 건네줄 보석은 과연 어떤 모양일지,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