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리의 섹시함과 이수영의 청순함을 합쳐놓은 매력적인 이미지로 강렬하게 어필한 가수 아이비. 지난 연말, 모든 가요제의 신인 여자가수상을 휩쓸며 새로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를 만났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8월 데뷔한 후 불과 몇 달 만에 10대뿐 아니라 20∼30대 남성들로부터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혈기방장한 군 장병들이 절대적 지지층. 아이비는 지난 1월 국군방송이 한 ‘가장 자주 만나고 싶은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64%라는 몰표를 얻어 국군방송 홍보대사로 뽑혔다. 아이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매일 2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들고 수천명이 그와 ‘일촌 맺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가(株價)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광고계에선 식음료 광고말고는 가수를 모델로 쓰는 경우가 드물다. 여자 솔로 가수로는 이효리가 인기 모델로 손꼽히는 정도. 그런데 아이비는 데뷔하기 전부터 화장품, 의류, MP3플레이어 광고모델로 발탁됐다. 매니저에 따르면 현재 추가로 2∼3개 광고모델 계약을 협의 중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부른 발라드 곡 ‘바본가봐’가 휴대전화 컬러링, 다운로드 등으로 벌어들인 돈만 10억원에 이른다. 음반 판매, 광고모델, 방송활동 등을 포함하면 지난 1월까지 아이비가 올린 매출액은 30억원이 넘는다. ‘효리폰’ ‘권상우폰’을 내놓은 휴대전화 회사는 그의 이름을 딴 ‘아이비폰’을 기획 중인데, 200억∼3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웬만큼 탄탄한 중소기업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셈이다.
‘고급스러운 섹시함’
서울 청담동 트라이베카에 있는 고급 와인바 벨뷰(Belle Vue)에서 만난 아이비는 1집 앨범 활동을 끝낸 뒤라서인지 약간 살이 올라 있었다. 표정은 밝고, 생기가 느껴졌다.
“방송활동은 안 하지만 매일 연습실에 출근해 자정까지 춤과 노래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방송을 쉬니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몸이 쬐금 불었어요.”
“오랜만의 휴식일 텐데 여행이라도 가지 그랬냐”고 하자 야무지게 “쉬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잖아요. 더 열심히 연습해서 컴백할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한다. 대신 설 연휴에 대전에 있는 부모님이 올라와 모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늘씬한 S자 라인 몸매 때문인지 TV 화면으로 볼 땐 키가 커보였는데 직접 보니 생각보다는 작다. 164cm에 45kg이라고 한다.
-요즘 최고의 섹시 가수로 불리는데요.
“섹시하다는 표현은 여자에게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섹시함을 내세운 가수가 여럿 있는데, 그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또 하나 벗고 나오네’ 할 정도의 과도한 노출 의상이나 선정적인 춤으로 억지로 섹시하게 보이려 하진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섹시함을 풍기는, 고급스러운 섹시함이랄까…, 그런 게 호응을 얻은 것 같아요. 천박하지 않우면서 섹시하게 보이려고 나름대로 고민했죠. 또한 이미지가 섹시함으로만 굳어지지 않게끔 발라드 곡도 불렀고요.”
-군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더군요. 군 복무 중인 탤런트 박광현이 “군 위문공연을 온 아이비가 손짓하면 그 줄에 있던 장병들이 다 쓰러질 정도”라고 했어요.
“저도 놀랐어요. 위문공연을 가면 다들 좋아해서 인기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국군방송 홍보대사로 위촉될 정도인지는 몰랐어요.”
-섹시한 춤을 출 때 장병들이 끈적한 시선을 보낼 것 같은데, 싫지 않아요?
“나쁜 생각이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싫지는 않아요. 그런 눈길조차 저를 좋아하는 하나의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노래 부를 때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는 군인도 있냐”고 묻자 “그럼 영창 갈 걸요” 하며 자연스럽게 군대 용어를 쓴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었다고 한다.
“해군 군악대에 계셨어요. 준위로 제대하셨죠.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대전 계룡대에서 살았어요.”
고교 록밴드 ‘청산가리’ 보컬 출신
-아버지가 직업군인 출신이면 보수적일 텐데 방송을 보고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제 의상이 야하고 춤이 퇴폐적이었다면 놀라셨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별 말씀 안하셨어요. 더구나 아버지께서 음악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가수 활동 하는 걸 좋아하세요.”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그는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내내 코디네이터들과 수다를 떨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털털하고 뒤끝이 없다고 한다.
“제가 살던 군부대 아파트 앞에 개울이 있어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지요. 개울에서 고기 잡고 도롱뇽 쫓고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사내아이처럼 자랐죠. 어려서부터 남자아이들이랑 놀아서인지, 남자가 이성이 아니라 동성친구보다 더 편한 친구처럼 느껴져요. 지금도 남자친구가 더 많아요.”
아버지는 군악대 드럼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성악가 출신이다. 부모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셈. 하지만 어릴 때는 피아노가 치기 싫어 걸핏하면 도망치던 개구쟁이였단다.
-언제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록밴드를 만들었어요. 전 보컬을 맡았죠. 교내 축제 때 공연을 했는데, 노래를 부르면 희열이 느껴지고,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아, 이게 내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밴드 이름이 뭐였는지 아세요? ‘청산가리’였어요(웃음). 록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반항아 기질이 있어 그렇게 지은 것 같아요.”
-가수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2001년 동덕여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자마자 지금 소속사를 찾아가 오디션을 봤어요. 보기 좋게 떨어졌죠. 사장님이 노래를 듣더니 ‘연습을 더 해서 스스로 됐다 싶을 때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저 예의상 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음악학원에서 6개월 동안 연습하고 다시 찾아갔더니 놀라시더군요. 제가 노래를 잘했다기보다 노력해서 다시 찾아온 그 용기에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대개 오디션에 합격해 전속계약을 하면 곧바로 데뷔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언제 데뷔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열심히 연습하지만 점점 지쳐 스스로 포기하는 가수지망생이 부지기수다. 5년 전, 한 유명 연예기획자가 가수 영재 콘테스트를 통해 선발한 가수지망생들도 아직 데뷔하지 못하고 여전히 ‘준비 중’이다.
아이비도 데뷔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헬스클럽에서 1시간씩 운동하고 학교 수업시간을 빼고는 새벽 1시까지 춤과 노래 연습을 반복했다.
“처음 1년은 멋모르고 지났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했어요. 제가 예민하고 쉽게 상처 받는 성격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의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좌절하진 않았어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부모님은 반대로 괜히 저를 고생시키는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고요. 그런 게 마음 아팠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겠네요.
“왜 안 그랬겠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연습실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연습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혼자라는 생각에 서러운 기분이 들어 많이 울었죠. 또 방송연예과라 동기나 후배 중에 먼저 데뷔한 애들 보면 부럽고…. 그래도 저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인내의 시간 없이 쉽게 가수가 됐다면 이렇게 즐겁지도 않았을 거예요.”
요즘은 립싱크 가수가 거의 사라진 대신 가수가 아닌 연예인들이 1주일 만에 뚝딱 앨범을 만들어 가수 활동을 하는 게 유행이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앨범을 준비한 그로서는 씁쓸한 현실일 터.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아무나 가수 하네’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요즘은 가요 팬들의 수준이 높아져 노래를 못하면 아예 가수 취급을 안 하잖아요. 노래 실력이 없으면 금방 도태된다는 걸 아니까 크게 마음 상하진 않아요.”
하루 10시간 연습해 ‘몸치’ 극복
현란한 춤으로 팬들을 유혹하는 그가 처음엔 ‘몸치’였다고 한다. 처음 춤 배울 때 모습을 찍어놓은 비디오가 있는데 지금 보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 정도라고.
“처음 제게 춤을 가르쳤던 홍영주 선생이 ‘너처럼 뻣뻣한 사람은 보다보다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몸을 찢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다 골반을 다쳐 지금도 비가 오면 할머니처럼 몸이 쑤셔요(웃음).”
-몸치가 어떻게 댄스 가수가 될 생각을 했죠?
“원래는 발라드로 데뷔할 계획이었어요. 그래도 방송활동을 하려면 춤을 배우는 게 좋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너무 못 추니까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때 선생님이 ‘자꾸 댄스음악을 듣고 흥얼거려라’고 충고했어요. 그러다 보면 몸이 리듬을 느끼게 되고, 그게 춤이 되는 거라고. 한 6개월 그렇게 하니까 정말 춤이 되더라고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당시 아이비는 연습실에서 먹고 자며 하루 10시간 이상 춤 연습을 했다.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댄스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 소속사에서는 가수 박진영에게 프로듀서를, 마이클 잭슨의 춤 선생 파티마 로빈슨에게 안무를 맡기는 등 과감한 투자를 했다.
-로커에서 발라드 가수로, 다시 댄스 가수로 바뀐 셈인데, 처음에 댄스 가수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어요?
“전 노래엔 장르 차별이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가만히 서서 부르는 것보다 춤추며 노래하는 게 더 대단하다고 봐요. 흔히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음악성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대중가수는 장르에 상관없이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 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뛰어난 가수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음악 색깔을 갖기보다는 대중에게 인기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아요. 전 ‘반짝 가수’가 아니라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인순이 선배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록이든 발라드든 댄스 음악이든 뭐든지 다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말이다.
“김치도 담가 먹어요”
슬쩍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자 “남자친구는 많은데 애인은 없다”며 웃었다. 데뷔 전까지 사귀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졌다고 한다.
“남자 만날 시간이 없어요. 정신없이 바쁘니까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요.”
-연예인 중엔 누구와 친한가요.
“대학 선배인 박경림 언니와 지금 한집에 살고 있는 탤런트 한효주 정도예요. 다른 연예인들과는 만날 기회가 없어요. 가요 프로그램 외에는 방송출연을 안 한데다, 가요 프로에 출연해도 대기실에 있지 않고 차 안에서 연습하느라 다른 연예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적었거든요. 원래 음주가무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술은 거의 못 마셔요. 댄스 가수지만 원래 춤추는 것도 안 좋아하고요.”
-그럼 혼자 있는 시간엔 뭘 하나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데, 요즘 소피 킨셀라의 ‘쇼퍼홀릭’에 빠졌어요. 저도 쇼핑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꼭 저 같아요. 뭔가를 사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그는 기자에게 “‘쇼퍼홀릭’을 보면 여자의 심리를 잘 알 수 있으니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다른 취미는?
“전에는 연구해가며 요리하는 걸 좋아했는데, 데뷔 후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없어서 못해요. 요즘은 좀 한가하지만 요리를 하려면 장을 봐야 하잖아요. 이젠 변장을 하고 나가도 사람들이 다 알아보더라고요. 저를 알아보는 게 신기해서 좋긴 한데, 행동하는 데 제약이 많아 사람 많은 데 가는 걸 자제하고 있어요.”
요리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엄마처럼 끓일 수 있고,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엄마랑 같이 노래해본 적이 없어요. 대중가수와 오페라 가수가 한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저도 엄마랑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 중에 음악하는 분이 많아요. 모두 모여 가족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또 하나,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고등학교 때는 복지시설에 가서 위문공연도 했다는 그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다른 분들이 제게 준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라고 한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