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던 옷이네, 가방도?”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쇼핑 중독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청교도 같은 검소함과 절약의 미덕에 말뚝을 박는 나의 태도에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중독은 무슨….”
“아니, 저 쇼퍼홀릭 맞아요.”
사람들은 쇼퍼홀릭, 즉 ‘쇼핑 중독’이라 하면, 어디서든 미친 듯 물건을 사고, 식구들 몰래 물건을 장롱에 넣어둔 뒤 다시 쇼핑몰로 달려 나가다 ‘패가망신’하고 정신과로 끌려가는 사람을 떠올린다. 정신과 의사들은 쇼핑 중독의 원인이 충동조절장애 및 강박증이어서 물건을 사는 순간의 즐거움만을 반복적으로 얻을 뿐, 물건 자체에는 애정이 없다고 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쇼핑 중독은 마약중독이나 도박중독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진정한’ 쇼퍼홀릭은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물건을 소유하고 드러내서 남의 시선을 받기 위해 쇼핑한다.
쇼퍼홀릭의 취미는 쇼핑이고, 신상품을 보기 위해 점심식사를 기꺼이 희생한다.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사기 위해 만원 버스를 타고 다니며, 몸에 맞는 아이템을 사기보다 아이템에 맞춰 몸을 바꾼다.
결정적으로 쇼퍼홀릭을 쇼퍼홀릭답게 만드는 건, 자신이 구입한 물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즉 자신이 입고, 들고, 먹기 위해 쇼핑한 물건들의 총합이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쇼퍼홀릭은 사실상 ‘브랜드홀릭’이다. 쇼퍼홀릭이 돈을 주고 사는 건, 상품의 이미지이며 자신의 스타일이다.
프라다를 입는 사람과 돌체앤가바나를 입는 사람은 성장 과정부터, 교우관계, 인생관, 피서지까지 완전히 다르다. 나이키를 신는 사람과 퓨마를 신는 사람의 정서가 다른 것처럼. 쇼퍼홀릭은 상품의 브랜드와 이미지에 자신을 비춰보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아티스트 바버라 크루거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또 요즘 인기 있는 한국 출신 작가 낸시 랭은 모든 작품에 루이비통의 상품 이미지를 콜라주한다. 그에게 루이비통은 ‘잃어버린 꿈’이다.
최근 만난 한 정신과 의사는 “강박증에 의한 쇼핑 중독과 젊은 사람들의 브랜드(혹은 이미지) 중독 쇼핑은 확실히 다른 양상”이라고 인정했다. 쇼퍼홀릭을 비난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이들이 돈 많이 벌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보다 세상에 더 피해를 주진 않는다.
그러니 모두가 미친 듯 앞으로 달려갈 때 쇼윈도를 두리번거리거나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아 헤매는 쇼퍼홀릭이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요? 쇼퍼홀릭을 만나시더라도 겁먹지 마세요. 그는 결코 ‘환자’가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