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건국의 첫 번째 대안으로 마련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쿠데타로 인해 일단 종막을 고하고 군부 권위주의에 입각한 개발독재라는 두 번째 대안이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그 대안이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했다.
쿠데타 이전 국가는 민간사회보다 힘이 우세했으나 정책적으로는 취약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한국은 강력한 군부 통치자의 등장과 기술관료의 성장으로 자율성과 능력을 함께 갖춘 강성국가로 변모했다. 이 강성국가는 자본주의적 산업 발전을 지배의 물적 토대와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매우 빨리 성장했고 민간사회는 엄청난 변모를 경험했다. 그러한 민간사회의 변모가 거꾸로 군사정권의 토대를 허물고 민간 민주주의의의 바탕을 마련한 것은 역사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군은 국가 구원할 유일한 세력”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원인을 알려면 먼저 당시 쿠데타 주도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내세운 명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쿠데타 주역들은 집권 후 펴낸 ‘한국 군사 혁명사’에서 “용공 사상의 대두, 경제적 위기, 고질화된 정치 풍토, 사회적 혼란과 국민 도의의 피폐, 그리고 한국군의 발전”을 ‘군사혁명’의 원인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군부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 불관여라는 명제를 충실히 신봉하던 군인들이 드디어 혁명의 전위에 나서게 된 것은, 무엇인가의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 근본적 개혁을 절규하던 거족적인 요구라는 외적 요인과 군 자체의 강군 육성을 위한 내부 정화라는 진통으로 나타난 내적 요인과의 결합에서 귀결되는 필연적인 당위의 결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군부가 ‘혁명’을 추진해야만 했던 이유로서, 군부의 정치적 초연성, 군의 민주적 훈련, 군의 행정적· 정치적 역량, 투철한 반공정신, 정의와 양심의 편에 선 군인의 청렴성 및 행동주의를 들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내세운 ‘혁명’의 정당성보다는 (그들이 이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혁명’의 요인으로 사회정치적 상황이라는 외적 요인과 군의 성장이라는 내적 요인의 결합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덧붙여, 군인이 국가를 구원할 유일한 세력이라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그들의 주장에서 확연히 볼 수 있다.
사회정치적 요인과 군부 내적 요인은 모두 5·16군사정변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해 모반 장교 집단에 행동 동기를 부여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군부 정치의 동태적 국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쿠데타라는 단기적인 행동과 군부의 사회정치적 지배라는 장기적인 현상을 구별해야 한다. 둘 사이에는 서로 관련되지만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다. 전자의 설명에는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행동 동기들이 중요하며, 후자의 설명에는 장기적이면서 구조적인 요인들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쿠데타를 주도한 소장 장교들이 품은, 진급 기회 소멸에 따른 불만은 쿠데타라는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 구체적인 행동 동기의 하나로 꼽을 수 있지만, 이 요인이 이후 그들이 장기적인 지배체제를 유지한 데 대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거꾸로 사회구조적인 요인에만 주목하면, 행위자들이 왜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행동을 취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