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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행복한 바보들이 ‘마음 치장’ 하며 사는 동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문화 신도시’로 거듭나는 헤이리·출판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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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는 ‘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만드는 동네다. 갤러리와 박물관, 소극장을 갖춘 각각의 건물에는 주인이 거주하는 주거용 공간이 딸려 있다. 집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마당에는 야생화가 멋들어지게 피어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소박한 벤치를 갖춘 집이 적지 않다.

“야생화가 좋아 지난 5월 헤이리에 집을 짓고 뿌리를 내렸다”는 고막원 주인 임지수(60·작가)씨는 “복잡한 도심을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맘껏 키우고 감상할 수 있어 행복하다. 1층에 식물이며 선인장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지만 큰 이익을 바라고 하는 ‘장사’가 아니라 취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돈 벌 생각으로 이곳에 둥지 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쾌적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헤이리다. 나이가 들어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고 세상을 좀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 그런 이들이 모여 산다.”

도회지와 시골마을의 ‘멋’과 ‘맛’이 적당히 버무려진 헤이리의 태동은 199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기웅 파주출판단지 이사장(열화당 대표)과 헤이리 아트밸리 전 이사장 김언호(한길사 대표)씨는 부부동반으로 영국 ‘에이 온 웨이’를 방문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보잘 것없는 중세 풍경 그대로인 이 시골 마을에서 전세계적인 문학 페스티벌이 열리고 고서(古書)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국에도 저런 문화예술촌을 하나 세우자’며 의기투합했다.

헤이리에서 일산 방면으로 1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출판단지 건설에 여념이 없던 김언호·이기웅씨를 비롯한 출판인 20여 명은 1997년 3월 ‘서화촌(書畵村·헤이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의 마을이름)’ 건설위원회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에이 온 웨이’처럼 책마을을 만들자는 데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발기인 멤버인 출판인들은 출판단지를 기획하면서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출판사, 인쇄 및 제본, 그리고 서점과 출판 관계자들의 주거시설까지 한데 어우러진 ‘도시’를 꿈꿨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는 이들의 소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출판단지는 주거시설과 상업 공간이 배제된 채 산업단지 형태로 개발됐다. 예상치 못한 법률적 제약에 부딪혀 주거와 문화시설 도입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출판인들은 애초에 출판도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도시’ 기능의 일부를 다른 곳에서 보완해야 했다. 그 공간이 바로 헤이리다.

문화예술마을을 만든다는 소식은 급속히 퍼져 나갔다. 출판계 사람들 외에 화가, 도예가, 건축가, 영화인, 문화기획가, 갤러리 운영자 등이 헤이리 참여를 희망해 책마을이 아닌 문화예술마을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미술계 인사로는 백순실 전광영 임옥상 화백, 음악계에서는 양성원 연세대 교수, 조민정 스페인 왕립오케스트라 부악장, 서현석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영화계에서는 강우석 강제규 김기덕 박찬욱 감독이 이들과 뜻을 함께했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송인길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극연출가 김정희씨, 소설가 윤후명 박범신씨, 방송인 황인용씨, 탤런트 최불암 김미숙씨도 헤이리 회원이다. 이들은 문화예술 마을을 만들기 위한 조합을 결성했다. 현재 회원은 370여 명.

예술인의 부동산 개발 첫 사례

이들은 1998년 7월 통일동산 내 부지(현재 통일동산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만평)에 대해 한국토지공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회원수는 200여 명. 그러나 계약한 땅 주변의 3분의 2 이상이 사유지로 둘러싸여 향후 난개발이 이뤄질 경우 회원들이 꿈꾸는 마을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는데다 국제적인 예술마을을 만들기에는 부지가 좁아 다른 땅을 찾아 나섰다. 단지 설계를 마치고 회원 전체(당시 회원은 200여 명)가 필지선택을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새로운 땅으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헤이리를 찾은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공동묘지 바로 옆에 마을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헤이리가 대규모 공원묘지 옆에 들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헤이리의 태동부터 함께 한 ‘문화예술마을 헤이리’ 사무총장 이상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부지를 찾고 있는데, 원래 계약했던 땅 인근에 있는 15만여 평(민속촌 용도)의 땅이 팔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땅의 3분의 1가량이 동화공원묘지에 접해 있어 기업이나 관공서 등이 기피하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공원묘지 문제만 놓고 보면 이전 부지에 비해 결코 더 좋은 조건의 땅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유지와 접한 부분이 적은데다 향후 개발이 된다 해도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헤이리 마을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땅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공원묘지보다 사유지의 난개발이 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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