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호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어스름,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황금빛 파고다의 물결

  • 사진 / 글 이형준

    입력2007-06-01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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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최초로 미얀마를 통일한 아노라타가 타톤을 정복한 기념으로 세운 쉐지곤 파고다.

    같은 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도 미얀마(옛 버마)는 ‘아웅산 폭발사건’의 처참한 현장으로 먼저 기억된다. 하물며 바다 건너 머나먼 땅의 미국인과 유럽인들에게랴.

    존 부어만 감독의 1995년작 ‘비욘드랭군(Beyond Rangoon)’은 미지의 땅 미얀마를 서구에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와 함께 관광차 미얀마를 찾은 미국인 여의사가 우연히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현장을 목격한 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를 통해,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수도 양곤과 아름다운 파고다가 가득한 바간, 반군활동이 활발히 전개된 동부 정글지역은 세계인의 뇌리에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열기구에서 바라본 바간의 아침 풍경. 멀리 이라와디 강이 흐른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쉐지곤 사원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 그 모습이 자비로운 보살 같다.

    황홀한 유적지, 순박한 사람들

    강도의 손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언니 앤디(프랜시스 맥도맨드)는 동생인 로라 보맨(페트리샤 아퀘트)과 함께 미얀마를 찾는다. 영화의 서두, 자매가 일행과 함께 작은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던 지역은 바간이다. 불교 국가 미얀마를 상징하는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는 바간은 수많은 파고다와 거대한 사원, 불상, 대나무를 이용한 공예품 산지로도 유명하다.



    이라와디 강에 드리운 환상적인 석양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거대한 파고다가 어우러진 바간은 지금도 영화가 촬영될 당시의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독특한 유적지와 순박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방문객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자랑한다. 영화 속에서는 이라와디 강변에 자리잡은 거대한 파고다 몇 곳과 와불을 보여주는 정도였지만, 한때 5000개에 달하는 파고다가 있었고 지금도 2500개가 넘는 파고다가 서 있는 바간은 명실공히 지구촌 최대의 불교 유적지다. 도시 주변이 온통 파고다로 가득하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바간의 전체적인 풍광을 감상하려면 이른 새벽과 오후에 운행하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가장 좋다. 동틀 녘과 어스름 무렵, 기구에 의지해 내려다본 황금빛 파고다의 물결은 끊임없이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황홀한 경험이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이라와디 강변에 정박한 대나무 운반선. 대나무와 화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배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커다란 양산을 들고 쉐다곤 대탑을 찾은 승려들.(좌) 전통복장을 하고 일터로 향하는 인따 족 소녀들.(우)

    어느 곳을 방문해도 흥미로운 바간이지만, 특히 쉐지곤 사원과 부파야 파고다가 세워진 이라와디 강변은 놓쳐서는 안 된다. 규모와 화려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쉐지곤 사원은 최초로 미얀마를 통일한 아노라타가 건립하기 시작한 탑이다. 쉐지곤 사원에 세워진 파고다는 규모도 엄청나지만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사원이라는 점에서 미얀마 국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유람선이 출발하는 이라와디 강변을 굽어보고 있는 부파야 파고다는 바간에 있는 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저녁놀을 받아 불타는 듯한 탑은 감히 눈을 제대로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로라 보맨이 총에 맞은 전직 대학교수이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인 우앙코를 배에 태우고 빠져나가는 장면은 바간 서남쪽 마누하 마을에서 촬영됐다. 지금도 촬영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전혀 다르다. 영화 속에서 로라와 우앙코를 냉담하게 대했던 주민들은 실제로는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하고 푸근하게 맞아주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영화 속에서 수많은 시민이 “아웅산 수지!”를 연호하며 시위를 벌이던 곳은 미얀마의 옛 수도인 양곤(옛 랑군)이다. 미국의 공격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2005년 갑자기 천도하기 전까지 미얀마 정치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미얀마 최대 도시로서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는 양곤도 최근 몇 년 사이 호텔과 백화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신축한 건물이 몇 개 보일 뿐 영화 촬영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에 탑승한 젊은 학생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양곤의 재래시장은 여전히 영화 속 그대로 전형적인 노천시장이다.(좌)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에서 얻은 천연 로션을 바른 어린이.(우)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수많은 양곤 시민과 학생이 민주화를 외치며 행진했던 도심거리.

    거리 곳곳에 남은 민주화 시위의 기억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민과 학생, 승려들이 군사정권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며 시위를 펼쳤던 거리와 시장, 골목은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에서 로라와 앤디가 투숙했던 호텔이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던 곳은 도심에 위치한 보조개 마켓과 양곤역, 술래 파고다 주변으로 양곤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에 해당한다.

    이 활기 넘치는 도심지에서 영화가 남긴 자취를 확인하려면 술래 파고다에서 양곤역을 지나 마하위쟈야 파고다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찾아가면 된다. 이곳은 실제로 아웅산 수지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이 군부독재에 대항해 집회를 열고 민주주의를 외친 곳이기도 하다.

    양곤 또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유적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것이 대탑이 서 있는 쉐다곤 사원이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쉐다곤 사원은 자랑거리가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 그 가운데 으뜸은 전체가 금으로 입혀진 불가사의한 대탑 쉐다곤으로 그 높이가 98m에 달한다. 대탑의 외관을 도금하는 데 소요된 금이 6t, 주요 부분에 장식된 다이아몬드가 1800캐럿이 넘는다는 설명. 파고다의 주요 부위에는 루비와 에메랄드 같은 보석도 장식돼 있다. 그 지하에 보관돼 있는 석가모니의 머리카락과 사리도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유물이다.

    로라와 우앙코가 많은 피난민을 이끌고 정글과 강을 지나 태국 국경으로 향하던 길은 인따 족이 거주하는 동부 정글지역에 있다. 미얀마의 최고 비경(秘境)으로 알려진 인레 호수 남동부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군부에 반대했던 무장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이곳에는 당시부터 현재까지 카친 반군을 중심으로 카렌구민연합, 몽타이반군 등 여러 반군이 활동하고 있다. 일반 여행객이 찾아가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동북쪽 호수지역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미얀마를 가리켜 ‘지구촌 최후의 낙원’이라 말한다. 이는 단순히 때묻지 않은 풍광이나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유적지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청년들과 이방인을 돕던 순수한 소년처럼 자비로운 미소로 방문객을 반기는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욘드랭군’ 자취 서린  미얀마

    수많은 양곤 시민과 학생이 민주화를 외치며 행진했던 도심거리.(좌) 동부지방에 거주하는 인따 족 모자. 전통방식의 삶을 고집하는 이들은 대부분 산간지역에 거주한다.(우)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양곤까지 가는 직항편(6시간)은 시즌에 따라 한시적으로 운영되지만 동남아 경유편(7~9시간)은 매일 운항한다. 양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택시와 버스를 이용하면(40~60분) 된다. 양곤에서 바간까지는 국내선 항공기(50분)나 버스, 기차(15~17시간) 노선이 있고, 양곤에서 동북쪽 태국 국경까지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10시간). 숙박시설은 비교적 골고루 갖춰져 있고 요금도 동남아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다. 사전에 국내에서 비자를 받아가는 것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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