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대학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대학원 붕괴, 그리고 이공계와 인문계의 위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당초 상·중·하 세 차례에 걸쳐 기고할 계획이었으나 중·하에 나눠 쓸 것을 이번 원고에 다 포함시킴으로써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미국 일류대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은 우수한 교수진과 시설을 자랑한다. 이 모든 것이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엄청난 노력의 산물임을 이미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지만, 이런 이유로 많은 이가 미국 유학을 희망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나 학부 때 미국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본격적인 미국 유학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학생들도 나름대로 철이 든 성인이라 부모는 물론 당사자도 커다란 불안감 없이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한국 학생 유학실태’에서도 특별한 몇 개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학부 학생보다 대학원생이 6~7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원의 황폐화
미국 일류대 대학원은 모든 면에서 세계 각국 유학생을 유치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학생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확보한 명망 높은 교수진, 최첨단 실험기자재 등 연구 및 교육여건이 한국의 일류대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류대와 대학원은 장학금을 넉넉하게 준비하고 있다. 교수들이 많은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조교직을 얻기가 쉽다. 또 우수한 대학원생은 교수의 학부 강의를 분담하거나 과제 및 시험지 채점을 맡아 하기도 한다. 교수들이 연구나 대학원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학부 강의를 대학원생에게 맡기는 경우가 적잖다. 아주 우수한 학생의 경우 이런 식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장학금을 받는다. 그러므로 미국 일류대 대학원에 진학하면 대체로 처음 한두 해만 학비를 부담하고, 나머지 학기는 학부 학비 걱정 않고 공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미국의 일류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려 하는 것이고, 교수들도 그러기를 권한다.
필자는 서울대 대학원에 우수한 학생이 부족한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일류대 대학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01년 UCLA, UC버클리, 남가주대(USC), 스탠퍼드대 등 세계 일류대로 알려진 태평양 연안의 대학 4곳을 방문했다. 이들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실은,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대거 모여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으나 이공계 대학원에는 한국 학생이 전체 학생의 15~20%를 차지했다. 물론 최근 이들 대학교 대학원생의 70~80%를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 등 동양계 학생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동부나 중부의 다른 명문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한국 학생의 숫자가 중국이나 일본 학생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30배 가까이 많고, 일본도 한국보다 인구는 3배, 소득 수준은 2배 가까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이들 세계 일류대에 유학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국가 규모가 작아서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국가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 일류대에서 유학하는 학생이 많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들이 외국의 대학원으로만 몰려가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도 일으킨다. 국내 대학의 대학원이 황폐해지고 교수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에 우수한 대학원생을 빼앗긴 국내 대학은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특히 이공계 대학원의 경우 대학원생의 도움이 교수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대학마다 우수한 대학원생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