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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세기의 철녀들

‘대중자본주의’ 전도사 마거릿 대처

노동자를 중산층으로, 파업왕국을 비즈니스 천국으로

  •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대중자본주의’ 전도사 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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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자본주의’ 전도사 마거릿 대처

1979년 보수당 당수로 선출된 마거릿 대처.

능력을 믿는 대다수의 여자처럼 대처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여성이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가고 싶다면 여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남자들과 경쟁해 실력으로 당당하게 겨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처가 보수당 당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정치가로서 여성이라는 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는 “나는 (여성, 남성이 아니라) 정치가입니다”라고만 답했다. 이어 “미세스라고 불러도 되겠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나는 마거릿 대처입니다”라고 답했다. 여성 최초니, 여성 정치인이니 하는 성의 구분을 뛰어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여성성을 활용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여성이란 게 무기이자 자산이 됨을 깨달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여성이면서 여성성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도 남성주의적 사고방식일지 모른다. 자기의 성에 대한 이해와 사랑 없이 어떻게 자신감이 생기겠으며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사실 개혁적인 이미지에 여성만큼 어울리는 ‘성’은 없다. 기존 사회의 주류는 대부분 남성이 아닌가. “모든 걸 바꾸겠다” 는 슬로건을 내건 대처에게 남성 위주의 기존 사회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은 남자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력’이었다.



선거전에서 벌인 그의 ‘아줌마 전략’은 유명하다. 그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유세를 했다. 한 손에는 가득 찬 장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절반 정도만 채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말했다.

“오른손 장바구니에 가득 찬 것은 1974년 1파운드로 살 수 있던 식료품입니다. 왼쪽은 지금(1979년)의 노동당 정권에서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만일 현 집권당인 노동당이 다시 5년을 다스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때엔 하도 살 것이 없어 비닐봉투 한 장이면 충분할 겁니다.”

이렇듯 감성적인 언어는 인플레이션에 지친 주부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는 자신의 행정철학을 ‘집안 살림’에 비유하곤 했다.

“나라 재정이 어째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까. 현명한 주부는 가정 수입의 범위 안에서 늘 알맞게 지출을 해가고 있습니다. 주부들도 잘 해내는 일을 어째서 정부가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사실, 행정이란 게 다른 게 아니다. 살림을 잘하는 것이다. 수입의 범위 안에서 지출을 하고 되도록 절약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부와 정부의 비유는 절묘했다.

대처가 자신을 간호사에 비유한 것도 여성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는 실업을 병(病)에, 영국을 환자에 비유했다.

“환자를 불쌍히만 여겨서 ‘그냥 가만히 누워 계세요. 필요한 건 제가 다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간호사와 ‘누워 있지만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세요’라고 채근하는 간호사가 있다고 칩시다. 누가 더 좋은 간호사인가요? 당연히 후자이고 내가 바로 그런 간호사입니다.”

때로 그는 국민의 어머니상(像)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전쟁에서 첫 사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내각회의를 주재하다 말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참석자들은 “총리는 고개를 숙이고 1분가량 테이블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국민은 대처의 이런 모습에서 남자에게선 볼 수 없는 전쟁 지도자의 모습을 봤고 반전(反戰) 여론을 누그러뜨렸다. 대처는 또 전사자 250명의 유족에게 일일이 친필로 위로편지를 써 보냈다. 어머니 처지에서 자식을 전쟁에서 잃은 가족들을 이해하고 그 상처를 보듬겠다는 모성적 리더십을 보여준 것.

대처는 이름 앞에 ‘주의(主義)’라는 말(‘대처리즘’)이 붙는 거의 유일한 정치가다. 그가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을 가진 철학자이자 이론가였으며, 자신의 사상을 책이나 교실이 아니라 삶과 현실에서 실현시킨,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인간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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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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