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 |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2/6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b>1</b >클랑필름 사의 오이로다인 <b>2</b >오이로다인 필드 전원부 <b>3</b >웨스턴일렉트릭 16575 파워앰프 <b>4</b >프리앰프 마이학 101

죽기살기, 그리고 생의 목적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격 앞에서는 존중을 가장해 항복하는 편이 정신과 육체 건강에 모두 유익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갸륵한 미담의 주인공? 천만의 만만의 말씀. 거래는 냉정한 것이다. 배려받지 못하는 만큼의 자유가 내 몫으로 주어진다. 더욱이 나 또한 아내 못지않은 강도로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배냇병이로다, 아이도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아내의 책이 내게는 음악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할 일은 독서와 음악 감상이다. 우아스럽고 교양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웬걸. 당사자들에게 그 짓은 우아, 교양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나에게 음악은 비둘기가 노래하는 가정음악실의 선율이 아니다. ‘죽기살기.’ 무슨 업보인지, 내게 음악 듣기는 날마다 죽기 살기 같은 전투적 집중에 해당한다. 과장하자면 매혹적인 범죄, 불가항력적인 질환의 대체물쯤 된다. 비포(before) 결혼에서 애프터(after) 결혼까지 한평생 그래왔다.

결혼하고 3년쯤 별도 공간 없이 ‘가정’에서 음악을 들어봤다. 그건, 피차간에, 그러니까, 고문이었다. 내 방식은 스위트홈에 어울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성정을 똑같이 보유한 부부. 타협책은 집 밖에 결혼 전과 비슷한 공간을 따로 장만하는 거였다. 서로 그리워하는 부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설의법적 명제.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



지금 거주하는 마포의 줄라이홀은 결혼 후 네 번째로 마련한 작업실 공간이다. 상용건물 지하 한 층을 통째로 전세 내 본격적인 음악감상실로 공사했다. 주변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말해준다. 로망이라나. 뭐 그런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로망, 그 단어는 너무 한갓진 느낌이 든다. ‘생의 목적’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거창할까. 중년기 정서치고는 유치해 보이겠지? 그런들 어쩌랴. 줄라이홀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한 사내의 생의 목적이다.

무언가가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어떤 위치로 올라가거나 무엇을 획득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음악에 포개어진 삶은 무엇이 되거나 획득하거나 올라서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팔자려니 해야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하루하루 음악을 듣는 일이 삶이 되면 되는 거잖아! 먹고사는 일이며 모든 관계를 도구나 방편으로 삼으면 되잖아! 그 무엇의 잣대를 ‘이쪽’이 아니라 ‘저쪽’ 세계의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을.

나는 아무것도 못 된 것이 아니었다. 못 획득한 것도 아니었고 못 올라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조건을 많이 가졌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줄라이홀의 일곱 아내

작업실 줄라이홀은 음악을 듣는 곳이다. 음악은 오디오를 통해서 듣는다. 자장면, 그거 먹어봐야 맛을 아는 건데 블랙누들이라고 이름밖에 모르는 서양인에게 그 오묘한 맛을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오디오가 그렇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부문을 다양하게 조합해가며 소리를 만드는 것이 오디오질인데 그 맛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해 불능일 것이다. 감히 말한다.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운운의 버킷 리스트가 유행이던데 죽기 전에 오디오 한번 해봐야 한다. 거기에 생의 ‘저쪽’이 있다.

가치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쪽 세계에서 의미 있고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치켜 올리는 것들이 소리세계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대신 50헤르츠 이하를 커트하는 게 나은지, 2000헤르츠 대역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지, 8000헤르츠 내외가 곱고 해상력이 높은지, 1만2000헤르츠 이상을 감지할 수 있는지, 뭐 그런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2/6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연재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더보기
목록 닫기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