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9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의전은 종합예술
의전(儀典)은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대본이 있어야 하고, 그 외에도 조명, 카메라, 배우, 소품, 편집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의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 소위 VIP는 배우이고, 일정계획을 담은 행사 가제(Code Name)는 영화의 시나리오에 해당되며, 차량, 숙소, 연회, 출입국, 화물 같은 소품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의전행사가 완결된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 배우가 NG(no good)를 낼 경우, 그 장면을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의전행사에서는 배우인 대통령이 실수를 해도 다시 할 수 없다. 그래서 의전 담당자들은 그런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에서는 먼저 대본이 있고 그 대본에서 설정한 이미지에 잘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에 맞는 배우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의전행사에서는 배우에 맞도록 대본을 써야 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군 출신 대통령들은 이미 군대 의전에 익숙해 있어서 행사 진행에 정확성을 요구했다. 다리가 불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되도록 동선을 짧게 하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2000년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하며, 그 부인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했다. 따라서 와히드 대통령은 누군가가 부축해야 보행이 가능하고, 부인은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누군가 밀어줘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거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했다. 방한한 와히드 대통령 내외를 위한 국빈만찬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을 때 VIP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특이한 의전 행사가 진행됐다.
의전 행사계획은 한 권의 행사 책자로 완결된다. 이 책자는 3급비밀에 해당된다. 그러나 실제 행사계획대로 의전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며,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에 의전 담당자들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의전 행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의전의 5요소 ‘5R’
의전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protocol’은 원래 공증문서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맨 앞장에 붙이는 용지를 말한다. 그 이후 외교관계를 담당하는 정부부서의 공식문서 또는 외교문서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즉 의전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즉 첫째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에티켓(etiquette) 또는 예의범절(good manners)이 개인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이라면, 의전은 국가 간의 관계 또는 국가가 관여하는 공식행사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a set of rules)을 뜻한다.
대통령 의전은 대통령이 참가하는 모든 행사와 관련이 있지만, 원래 국가의전은 국가원수뿐 아니라 고위급 외빈을 맞이하는 의전행사의 뜻으로 쓰인다. 방문 목적에 따라 국빈방문, 공식방문, 실무방문, 비공식 또는 사적방문의 네 가지로 나뉜다. 가장 격식이 높은 국빈방문은 초청국의 국가원수가 직접 영접하며 특별 예복을 입고 만찬을 베푼다. 공식방문은 여러 의전 절차가 생략되며 행정부 수반이 오찬을 베푼다. 실무방문은 격식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의전에는 ‘5R’이라는 5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첫째, 상대에 대한 존중(Respect)과 배려(consideration)다. 둘째, 의전은 문화의 반영(Reflecting Culture)이다. 셋째, 의전은 상호주의(Reciprocity)를 원칙으로 한다. 넷째, 의전은 서열(Rank)이다. 다섯째, 의전의 기본은 오른쪽(Right)이 상석이라는 것이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