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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④

“내가 아는 로맨틱은 죄다 새가슴 뿐. 호탕한 주색잡기는 낭만 아니다!”

  •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내가 아는 로맨틱은 죄다 새가슴 뿐. 호탕한 주색잡기는 낭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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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의 4번 유형;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감동을 중시하고 평범함을 싫어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슬픔이나 고독 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자신을 연기자처럼 느끼고 살아가고 행동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느낌과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인상을 준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독특한 존재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하다’라는 자기 모습에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유형 4에 대한 근사한 규정은 계속 이어진다. 신비로운 면을 갖고 있으며 심미안이 있고 아주 개성적인 창조성을 가진 사람이다. 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유형 4는 이른바 낭만주의자를 뜻한단다. 이들은 시기심이 많다는 특징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일순 헷갈리는데, 스스로가 유형 4에 해당되는지 자가 진단해보는 체크 리스트가 있다. 재미 삼아 점검해보시라.

‘남들은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의 과거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항상 자연스럽고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상징적인 것에 마음이 끌린다,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사물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예의 바르고 품위를 유지하고 싶다, 주위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인생은 연극 무대이고, 나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좋은 매너와 고상한 취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맞다 맞아. 남한테 들키지 않고 혼자 속으로 응답하는 거라면 그저 예예 하고 싶다. 다 나 잘났다는 얘기 아닌가. 체크 리스트가 한참 더 남았다.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상실 죽음 고통 등을 생각하면 그만 깊은 사색에 잠겨버리곤 한다, 일반적이고 진부한 표현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나타낼 수 없다, 너무나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감정이 증폭되면 어디까지가 자신의 진짜 감정인지를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 남보다 고민을 더 하는 것 같다,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도도하게 구는 구석이 있다고 남한테 비난받을 때가 있다, 감정이 고양되다가도 갑자기 침울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자의식의 과잉

원래 운명철학의 예언이란 고객이 알아서 답을 맞히고 스스로 감탄하고 하는 거다. ‘자신의 과거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거나 감정기복이 심하다’에서 다시 한 번 무릎. 그러다 결정적인 항목을 만난다. ‘인생은 연극 무대이고, 나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언뜻 의문이 든다. 이거 누구나 다 똑같이 느끼는 거 아냐?

그런데 그게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올해 초 중학교 교장이 된 선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결국 시인이 되지 못했지만 전형적인 문약 문골의 사나이. 그도 에니어그램 테스트를 했단다. 각급 학교 보직을 앞둔 50명의 교원과 함께 했는데, 선배는 당연지사처럼 4번 유형으로 결과가 나왔다. 결과대로 줄을 서려는데 어라, 4번 낭만주의자 대열에 단 한 명도 줄 서는 사람이 없더란다.

“어떻게 했어요, 선배?”

“벌쭘해서 잽싸게 5번 줄에 섰지, 히히힛.”

왜 그래야 했을까. 낭만가객들은 학교 간부가 되기에 부적합하다는 뜻인가. 자기 진단 체크리스트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보니 답이 나온다. 거기 예예 하는 인간형에 딱 알맞은 규정이 떠오른 것이다. 자의식 과잉. 바로 그거다. 지금도 ‘아름다운 밤이에요’가 트레이드마크처럼 떠오르는 어여쁜 장미희가, 헤어진 여자들과의 큼큼한 고린내를 방향처럼 풍기는 조영남이, 제 맘대로 한국과 인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도올 김용옥이, 색정의 불같은 에너지를 차라리 불쌍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마광수가 힐난과 비아냥거림에 파묻히는 이유가 바로 광장에다 자의식 과잉을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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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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