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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죄보다 인간을 더 미워한 세상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칠 것만 같아요!”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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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년 후 1992년 기자가 신문사에 들어가던 그해, 그녀는 미국의 예술계 명문인 캔자스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기자는 ‘얘가 결국 자기 적성을 찾아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녀를 다시 본 건 휴가 때 친구를 찾아 안동에 갔을 때였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의젓한 숙녀로 변해 있었다. 말괄량이의 모습은 간데없고 차분하고 부끄럼 많은 여인이 되어 있었다.

‘팜파탈’로 전락한 소녀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들은 것은 친구의 다급한 전화 때문이었다. 1995년 6월 여름더위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동생이 무너진 삼풍백화점 안에 갇혔다 겨우 구조됐어. 초밥 사 먹으러 갔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다. 야, 이거 우리 집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액땜했다고 생각해야지. 지금 애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기자는 삼풍백화점 부상자 명단에서 바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어떤 신문에는 짤막하게 구조된 사연도 소개돼 있었다. 건물이 무너질 때 계단 밑에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암흑과 먼지더미 속에서 터진 상수도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받아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기자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대면한 것은 신문지면에서였다. 어느덧 이름만 대면 아는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돼 각종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었다. 친구는 전화할 때마다 동생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근무처도 가깝고 하니 서로 보고 지내라”는 오빠의 채근에 그녀로부터 한번 전화는 왔지만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가정교사로 만난 지 꼭 20년 되던 해인 2007년 7월, 그녀의 이름 석 자는 한동안 모든 신문과 방송의 톱을 장식했다. 처음에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신정아 동국대 교수, 예일대 박사학위 논문표절 논란’으로 시작된 언론의 보도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달려 나갔고, 눈덩이처럼 커졌다. ‘예일대 박사, 캔자스대 경영학 석사(MBA) 학위도 가짜’, 심지어 ‘캔자스대 졸업은 물론, 입학 사실도 없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은 ‘고졸자가 어떻게 교수가 되고 국내 최고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학예실장이 되는가’라며 신씨를 숫제 ‘인간 말종’으로 취급했다.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2007년 7월 당시 신정아 관련 언론 보도. 성로비, 게이트란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썼다.

신씨의 광주비엔날레 감독, 동국대 교수 선임과 관련해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에 재임 중이던 변양균씨 개입설이 터져나왔고, 신씨와 변씨가 부적절한 연인관계이며 미술관이 각 전시회에 유치한 협찬금 수억원이 모두 신씨의 부탁을 받은 변씨가 해당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얻어온 것이라는 기사가 연일 지면을 메웠다. 변씨의 특정 사찰에 대한 특별교부세 불법지원을 두고도 신씨가 변씨를 꾀어서 꾸민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는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신씨의 사생활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가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줄지었다. 신씨의 오피스텔에서 콘돔과 남성 팬티가 발견됐다는 ‘저질 보도’가 횡행하는가 하면, 문화일보는 급기야 신씨의 누드 사진을 큼지막하게 게재한 후 신씨가 노 화가들에게 성(性) 로비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당시 문화일보는 그 보도로 인해 홈페이지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신씨를 미술계의 ‘팜파탈’로 묘사하며 신씨의 성을 상품화해 학위조작과 연결시켰다.

언론에 비친 신씨의 36년 인생은 모두 거짓으로 일관됐다. 삼풍백화점 사고 이야기도 그녀가 지어낸 거짓말로 취급됐다. 그녀와 가족의 삶은 깡그리 발가벗겨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언론계 동료들은 그런 풍토에 대해 전혀 죄의식이 없었다. 정작 언론이 밝혀낸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엉터리였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소문, 그녀의 초중학교 시절 이야기, 영재고등학교 졸업, 금호미술관 입사와 활동에 관련된 보도는 기자가 직접 지켜보고 알고 있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론의 집단 이지메

신씨의 학력조작 여파는 연예계, 종교계, 학계로 일파만파 번졌다. 신씨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영향력이 큰 명망가, 유명인의 학력조작 고해성사가 잇달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언론은 거기엔 별 관심이 없었다. 신씨에 대해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지면과 전파를 배정했던 언론은 그들에겐 상대적으로 관용을 베풀었다. 스스로 시인을 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거기엔 ‘연애사’나 ‘선정적 이야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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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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