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입헌군주제 vs 공화정’ 갈등이 진짜 이유…아직은 ‘찻잔 속 태풍’

  • 전성옥 연합뉴스 방콕특파원 sungok@yna.co.kr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1/3
  • 외신을 타고 전해오는 태국 정변은 미스터리다. 현직 총리가 대단치도 않은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사퇴를 요구 받고, 군부는 총리의 소요진압 요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한다. 비상사태, 계엄령, 쿠데타 등이 일상처럼 벌어지지만 국가 위상이나 경제사정은 별다른 흔들림이 없는 듯하다. 태국 정국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자가 그 배경과 맥락을 꼼꼼히 풀이했다.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8월26일 태국 방콕 정부청사 인근에 시위군중이 운집해 항의행진을 벌이고 있다. 태국 언론은 이날 군중이 방콕의 관영TV 방송국을 점거해 방송중단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 장면 #1 8월26일 방콕 중심가의 정부청사

청사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웅성대던 시위대의 소란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순간 시위대 전면에 있던 한 젊은이의 외마디 구호가 터져 나오면서 군중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정부청사 정문으로 향했다. 시위대는 손쉽게 정문과 담장을 넘어 총리실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정부청사 내 총리실 앞의 잘 가꾸어진 꽃밭과 잔디밭은 시위대의 발 아래 짓이겨졌다. 사막 순다라벳 총리와 각료들은 국정 심장부인 정부청사를 시위대에 내준 채 시 외곽 군 최고사령부로 자리를 옮겼다.

▼ 장면 #2 8월29일 태국 남부 휴양지 푸껫 공항

태국의 대표적인 관광휴양지인 푸껫 지방의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이 갑자기 국제공항으로 몰려들더니 주차장과 활주로를 점거했다. 수적인 우세에 눌린 공항경찰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몬루디 켓판드 태국공항공사(AOT) 대변인은 서둘러 기자들에게 “푸껫 공항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점거농성을 풀기 위해 주지사까지 나서 협상을 시도했으나 무위로 끝났다. 오히려 공항 점거농성은 인근 주(州)까지 확산돼 핫야이와 크라비 공항이 잇달아 폐쇄됐다.

진작 결딴났어야 하지만

푸껫 공항은 사흘 만에 정상화됐지만 수도인 방콕의 정부청사 점거농성은 9월12일 현재까지 18일간 이어지면서 반정부 시위대의 ‘해방구’로 변했다.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들이 정부청사를 에워싼 채 군경과 친정부 시위대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특히 정문은 PAD의 젊은 시위대들이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이중의 벽을 쌓고 소지품을 철저히 검색한 뒤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

9월2일 새벽 친(親)-반(反)정부 시위대가 충돌해 1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한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체 경계는 더욱 강화됐다. 바리케이드 안쪽 벽에 나무막대와 쇠 파이프, 중고 골프채를 꽂아놓고 보호용 헬멧 100여 개를 걸어놓아 출동 태세를 갖췄다. 삼엄한 분위기다.

총리실 맞은편 잔디밭에는 시위와 농성을 이끄는 대형 연단이 위치하고, 연단 뒤쪽에는 ‘마지막 전쟁’이라고 쓰인 글귀와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정부청사는 수천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매일 숙식을 하면서 밤샘농성을 할 수 있도록 온통 천막으로 덮여 있다. 청사의 다른 쪽에는 부패 공판에 참석하지 않고 영국으로 도피한 탁신 치나왓(58) 전 총리와 부인 포자만 여사에 대해 법원이 발행한 체포영장을 대형 걸개그림으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국왕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노란 옷과 노란 머리띠 차림의 시위대는 PAD 지도부의 연설에 손바닥 모양의 ‘짝짝이’를 두들기며 환호한다. 머리띠엔 ‘태국을 위하여’ ‘국왕 사랑’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노란색은 태국에서 왕실을 의미한다.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2006년 6월 불교 행사에 참석한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부부.

정부청사는 2년 전 이맘때 시위대 대신 군이 차지했었다. 손티 분야랏끌린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은 청사 주변에 탱크를 배치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뒤 헌법 발효를 중지시켰다. 군부가 내린 계엄령은 순차적으로 풀리다가 1년8개월 만인 올 4월에야 최종 해제가 결정됐다.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한국 국민에게는 듣기에도 섬뜩한 비상사태, 계엄령, 쿠데타 등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게 태국의 현실이다. 특히 정부청사와 국영방송국, 국제공항이 시위대에 의해 점거될 정도라면 그 나라는 결딴이 나도 진작 났어야 한다. 그럼에도 태국은 동남아국가연합을 선도하는 지역 중심국가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관광대국 지위를 누린다.

이렇듯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태국의 현 정국을 이해하려면 태국식 입헌군주제하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국왕의 민간 친위대 PAD, 태국 정치사의 풍운아 탁신 등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주역들의 성격과 역할을 파악해야 한다.

1/3
전성옥 연합뉴스 방콕특파원 sungok@yna.co.kr
목록 닫기

현장에서 본 태국 정국혼란 미스터리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