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길 부원장은 “시장의 힘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에선 회장 부인이 이사회나 대표이사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사회에는 사외이사들도 포함돼 있지만 이들 역시 오너 부인 앞에선 입을 다물 뿐. 이 회사의 지배구조가 후진적이라고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특수한 경우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문화에서는 이 회사처럼 공식 직함도 없는 오너 가족이 기업 경영권의 일부를 행사하는게 당연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의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와 낮은 투명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8월 말 공개된 사단법인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의 지배구조 평가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센터 전영길 부원장은 “올해 평가에서 643개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중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은 185개사에 불과하고, 2등 기업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42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8개 등급 가운데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 이상 기업을 비율로 보면 지난해 28.46%(657개사 중 187개사)에서 올해 28.77%로 미미하게나마 상승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 기업은 절대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 코스닥시장 등록 기업까지 포함해 1800여 기업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이 보통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올해 역시 최고 등급인 최우량 등급을 받은 기업은 없었다. 2등급인 우량+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KT와 KT&G가 받았다. 두 기업 모두 이 센터가 제시한 기업 지배구조 확립 모범 규준에 맞게 내부 규정을 개정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다고 한다.
전 부원장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수익력 측면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4등급인 양호+ 등급에 그쳤다는 사실. 그나마 올해엔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되는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돼 등급을 부여받지 못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등급 부여를 보류했다. 현대차는 지난해와 올해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을 받았다. 전 부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이 수준이니 다른 기업들에 대해선 새삼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평균적으로 국내 금융기관과 통신업체의 등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 전 부원장은 “금융기관의 경우 관련 법률에 지배구조 규정을 엄격히 정해놓았기 때문”이라며 “통신업체의 경우 업체 수도 적은 데다 자산 규모가 커 등급이 상대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인식 변화”라고 강조했다. “오너나 CEO 입장에서 지배구조 개선이란 자기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한국적인 기업문화에선 고위 임원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
외환위기가 탄생한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