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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큰 손’ 군인공제회

“24년 연속 흑자, 주식·부동산 찍고 중앙 아시아로!”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금융계 큰 손’ 군인공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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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업체를 사려는 곳은 없으니 살려면 알짜를 팔아야 한다.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알토란처럼 아끼던 부동산과 기업을 내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냥꾼’이 몰려들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M&A에 서툴렀고, 경기도 불투명했으므로 선뜻 M&A에 뛰어드는 기업이 없었다. 덕분에 외국 업체가 이 시장을 주도하게 됐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면 외국에서 자본이 들어와야 하므로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장려했다. 그리하여 삼성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에 넘어가 르노삼성 자동차가 됐고, 대우중공업은 여러 개로 쪼개져 그중 중장비 부문은 스웨덴의 볼보가 주인이 됐다. 대우자동차는 GM이 인수해 GM대우가 됐다.

한때 한국의 자존심이기도 했던 대우차 매각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국내 기업의 해외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먹튀(먹고 튀기)’를 하는 외국 투자자 때문이었다.

당시 대우차 매각 후 시장에 나온 큰 기업이 금호타이어였다. 유동성 위기에 당면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타이어 업계 세계 랭킹 11위권인 금호타이어를 팔려고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타이어의 덩치가 너무 커서 국내에서는 매수할 회사가 없다고 보고 해외 업체를 두들겼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사모 투자회사인 C그룹과 접촉해 1년간 협상을 거듭했다.

C그룹 한국지사는 국내 한 은행을 매입해 워크아웃한 다음 미국계 은행에 매각해 큰 재미를 본 적이 있었다. 경험이 있는 만큼 C그룹은 금호그룹을 능란하게 다루었다. C그룹 한국지사의 대표는 정·재계에서 이름을 날린 원로의 사위로 파워가 막강했다. 그로 인해 금호그룹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때 금호타이어의 가치를 평가한 기관 가운데 하나가 S회계법인이었다.



S회계법인의 모 상무는 금호타이어를 외국계 투자회사에 매각하는 것이 아까워 군인공제회 이청남 이사장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제의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바람결처럼 전해오는 정보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이사장 역시 이 제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실무자인 J씨로 하여금 금호그룹의 전략기획본부장인 O씨를 만나게 했다. 그러나 O본부장은 군인공제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인사만 하고 J씨를 돌려보냈다.

“경영권은 당신네가 가지시오”

한번 물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군인공제회는 작전을 바꿨다. 금호그룹 채권단 중엔 군인공제회와 가까운 조흥은행이 있었는데, 군인공제회는 조흥은행 간부를 통해 ‘군인공제회가 금호타이어에 투자할 생각이 있으니 제대로 대화해보라’는 이야기를 O본부장에게 전하게 했다. 군인공제회의 현금 동원력을 알고 있는 조흥은행은 이 부탁을 들어주었다 .

그리하여 O본부장을 다시 만난 J씨는 군인공제회의 투자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조흥은행의 측면 지원은 위력이 있었다. 군인공제회의 뜻을 확인한 O본부장은 J씨에게 “C그룹에는 이를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금호그룹은 10월말 C그룹과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했기에 이러한 부탁을 한 것이었다. O본부장과 J씨가 만난 게 9월이었으니, 금호그룹으로서는 C그룹에 대해 군인공제회가 치고 들어온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 후 금호그룹은 군인공제회에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곧바로 금호타이어에 대해 실사를 하게 된 군인공제회는 S회계법인의 권유가 허언(虛言)이 아님을 확인하고 획기적인 제의를 했다.

“우리는 경영을 모른다. 우리는 투자만 할 테니 경영은 금호그룹이 계속하라. 우리는 2500억원을 투자해 금호타이어 지분의 ‘50% 플러스(+) 1주’를 갖고, 금호그룹은 현물로 50%를 투자한 것으로 하자. 금호그룹은 경영권을 가져가는 대신 우리에게 수익을 보장하라. 금호타이어가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면 우리는 그러한 수익이 확보될 때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겠다.…”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주는 것은 장교에게 부대를 주는 것과 같다. 유·무능을 떠나서 경영인은 회사가 있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장교는 지휘할 부대가 있어야 전투와 훈련을 할 수 있다. 금호는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C그룹이 당황했다. C그룹 대표는 군인공제회를 찾아와 “우리도 금호타이어 투자에 끼워달라”고 부탁했으나 군인공제회는 거절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C그룹은 적절한 선에서 압박을 멈추고 금호타이어를 인수했다면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도를 넘어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일단락되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후폭풍이 몰려온 것이다.

당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고 금호그룹의 오너는 호남 출신이었으므로 “호남 정권이 군인공제회를 동원해 호남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몇몇 국회의원이 ‘군인공제회가 금호타이어에 투자한 것은 금호그룹에 특혜를 준 것’이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금호타이어가 정상화되지 못하면 군인공제회는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았다.

50% 넘긴 수익률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금호타이어에 투자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겠지만, 군인공제회는 국방부 산하기관이므로 국회가 요구하면 설명을 해야 한다. 군인공제회를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정치인들 때문에 군인공제회는 이들과 기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국회는 군인공제회에 대해 국정감사까지 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기우(杞憂)를 불식시켜준 것은 ‘시간’이었다. 생각 밖으로 시간은 빨리 찾아왔다. 2003년부터 한국 경제는 놀라운 탄력성을 보이며 급성장했는데, 금호타이어도 그 탄력을 받았다. ‘펀더멘털’이 좋은 금호타이어는 서울 증시와 까다롭기로 소문난 런던 증시에 동시에 상장했다. 금호타이어 주가가 급등하자, 군인공제회는 미련 없이 주식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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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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