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인고(忍苦)하는 여성보다 바가지 긁는 여성 뇌가 더 건강”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8-10-31 1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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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긍정적인 사람의 뇌가 훨씬 좋고 건강하다
    • 참고 견디면 기억력 줄고 뇌 빨리 늙어
    • 치매는 동물의 뇌만 남는 것… 화투 친다고 해결되진 않아
    • 뇌 건강의 기본은 탄수화물과 지방, 최고 좋은 건 공부
    • 세 살 버릇 여든 가고, 천재는 99% 노력으로 만들어져
    • 잘 자고, 먹고, 노는 아이, 손놀림 정교한 아이가 머리 좋아
    • 같은 일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게 뇌 건강엔 최악
    • 아들의 지능은 엄마의 머리를 닮는다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마음’의 본체는 심장인가, 뇌(腦)인가. 정답은 뇌다. 뜨겁게 사랑하고 시니컬하게 사랑이 식는 건 심장의 장난이 아니라 뇌의 명령이다. 만약 인간이 감성과 이성, 신경을 지배하는 ‘대뇌 중추’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똥을 벽에 바르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물과 불을 못 가리는 노망자가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이토록 뇌는 인간의 실체를 표현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인간이 다른 건 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뇌이며 뇌가 나인 셈이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徐維憲·59) 교수는 뇌 연구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다. 서 교수는 인턴을 마친 직후,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의 길을 접었다. 기초의학자로서 뇌 연구에 사활을 걸겠다고 다짐했기 때문. 그는 외골수로 뇌만 연구하기로 결심한 끝에 지난해에는 치매를 일으키는 새로운 유발인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서 교수는 꽤나 분주하다. 우리나라 최초로 ‘뇌 연구원’을 설립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뇌연구원추진기획단’ 단장직을 맡은 후 “의학과 생명과학뿐 아니라 인공지능 인지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뇌를 연구해 원인을 모르는 뇌 질환을 연구하고, 뇌가 기억 지능 감성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를 국가 차원에서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뇌 연구 관련법을 마련하고 국가 차원의 뇌 연구소를 만드는 등 20년 전부터 뇌 연구에 정책적 지원을 하는 한편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그나마 10년 전 서 교수가 중심이 돼 ‘뇌 연구 촉진법’을 제정한 후 정부가 국가 차원의 ‘뇌 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10월2일 목요일 오후 3시. 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 의과대학 본관을 찾았다. 기자는 인터뷰 주제를 ‘뇌’로 해놓고선 발걸음이 무거웠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복잡한 뇌에 대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앞이 아득했다. 온 세상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소식으로 우울하고 멍하게 마비된 듯했다.



    최진실씨도 뇌의 병을 앓았다?

    ▼ 우울증이 참 무서운 질환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울증 환자 중) 3분의 1이 자살해요. (우울증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뇌 질환입니다.”

    ▼ 일종의 정신병도 약물로 치료가 된다는 얘기인가요.

    “네. (우울증은) 마음(뇌)의 통증 같은 겁니다. 약 먹고 치료를 받으면 극복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심장이 나빠지고 간이 나빠지면 검사하고 약을 먹으면서, 뇌에 오는 병인 우울증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거나 창피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자살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 고(故) 최진실씨의 경우 사채업 괴담 때문에 감정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 없었다면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문제 아닌가요.

    “그랬을지 모르죠. 복잡한 과제를 풀어나갈 때 우울한 사람보다는 명랑한 사람이 훨씬 잘 풀어나갑니다. 이성의 뇌와 감성의 뇌가 따로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감성의 뇌는 이성의 뇌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틀렸어요. 이성과 감성은 동등합니다. 감정적으로 월등한 사람이 이성적입니다. 감정과 본능이 서로 같이 충족되어야 이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해요. 기분이 좋을 땐 뇌의 신경회로가 막힘이 없어요. 문제 처리를 위해 기억 속에 보관한 모든 정보를 동원시킬 수 있거든요.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땐 신경회로가 막혀서 잘 흐르지 않아요. 또 기분이 좋을 땐 신경전달물질이 원활하게 작동됩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기능을 못합니다.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뇌 명령체계가 부분적으로 무너져요.”

    뇌는 온몸의 신경을 지배한다. 우리 몸에 퍼져 있는 수천조에 이르는 세포가 모두 뇌로 집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뇌에는 1000억여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들 사이에는 일정간격으로 끊어진 틈(시냅스·200만분의 1mm)이 있다.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틈(시냅스)에 분비돼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노릇을 하는 것이다. 끊어져 있는 신경회로 사이로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마치 마라톤을 하듯 달려가 각종 흥분이나 감정상태를 전달하게 된다. 좌쪽 회로 끝에서 보내온 명령어를 우쪽 회로 입구까지 전달하는 식이다.

    낙관의 힘

    만약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뇌 명령체계가 부분적으로 무너져버린다.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병, 자폐증 같은 신경정신계 질환이 모두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이 파괴되거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에 이상이 생기면 사소한 일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흥분형 인간’이 될 수데 그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연쇄살인범의 뇌를 의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세로토닌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긍적적인 사람은 신경회로가 활짝 열려 있어요. 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회로 간 흐름이 방해가 되거나 억제돼요. 뇌 건강에 가장 좋은 게 낙관적 사고입니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뇌가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좋게 생각하고 잘해보려고 노력하면 대뇌 세포에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뇌 신경회로가 활짝 열리는 거죠. 예를 들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뇌가 아주 건강해요. 뇌 회로가 고속도로처럼 넓고 시원합니다. 신경전달물질도 풍부하게 생성되고요.”

    서 교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면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버릴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 변연계입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거나 사건들을 해석할 때 거치는 여과장치죠. 우울증에 걸리면 (변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요. 중요한 건 각자의 정서 상태에 따라 (변연계가) 다르다는 겁니다. 슬픔에 빠졌거나 우울증에 빠졌을 땐 부정적 여과장치(변연계)를 통하는 거죠. 변연계가 부정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건을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해요. 부정적인 사람과 대화하면 자꾸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동되는 게 이런 원리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어떤 일이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은 변연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낙관적인 사람은 신경전달물질계도 활발해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계가 왕성한 거죠.”

    ▼ 불행한 충격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런 점도 있어요. 변연계는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행복도, 충격도 변연계에 모두 저장되죠. 특히 충격은 뇌에 아주 큰 상처를 남깁니다. 충격이 잦으면 부정적인 방식으로 현상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변연계가 제 기능(여과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동물도 충격으로 변연계가 손상되면 자기 새끼하고도 적절하게 유대관계를 갖지 못해요. 결국 모성이 사라질 수 있는 거죠.”

    ▼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이 풍부해 충격에 예민하고 우울증이 많은 게 아닐까요.

    “여자가 남자보다 변연계가 더 커요. 변연계가 커서 감정이 풍부하고 자신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하고 현실적인 겁니다. 사교성도 여자가 더 뛰어나요. 반면 사춘기나 출산 등을 겪으면서 남자보다 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죠. 여성 자살률이 남성의 3배 이상입니다. 재미있는 건 여자는 미세한 감정표현에 더 능한 쪽으로 변연계가 진화됐고, 남자는 폭력적 행동에 관여하는 쪽으로 진화됐다는 거죠. 그래서 남자들이 폭력적 언행을 더 쉽게 나타내는 겁니다.”

    뇌 분비 마약 엔도르핀

    ▼ 여성과 남성의 뇌 구조가 다른가요.

    “약간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이 남자보다 좌우 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남성은 분석하고 언어적인 것을 관장하는 좌뇌를 많이 사용해요. 여자는 양쪽 뇌를 다 사용합니다. 여성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표정을 잘 읽고 솔직하잖아요. 양쪽 뇌를 다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환경과 분위기 적응력도 뛰어나요. 양쪽 뇌를 다 사용하는 게 한쪽 뇌만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뇌 건강에 좋아요. 오른손잡이는 뇌에 손상이 오면 언어능력을 상실해요. 하지만 오른손도 잘 쓰는 왼손잡이들은 좌뇌뿐 아니라 우뇌에도 언어중추의 일부가 있어서 한쪽 뇌가 손상되어도 언어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외골수적인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뇌가 더 건강한 편입니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재미있는 얘기를 꺼냈다. ‘인고(忍苦)하는 여성’보다 ‘바가지 긁어대는’ 여성의 뇌가 더 건강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자제하고 애써 숨기면 기억력도 감소해요. 감정중추는 기억중추인 해마와 붙어 있고 앞쪽의 전두엽에 있는 동기부여의 뇌와 연결돼 있거든요. 감정이 즐겁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일 때 기억이 잘되고 동기부여가 잘됩니다. 자꾸 참으면 소수 세포가 기억에 참여해서 기억력도 떨어집니다. 자꾸 뭔가에 억압되어 기가 죽으면 뇌 회로도 자꾸 막히고 좁아집니다. 여자의 눈물도 뇌 건강에 한몫을 하죠. 감정적인 눈물에는 신체가 내보내야 할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거든요. 뇌 건강을 위해 울고 싶을 때 펑펑 우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여성들은)호르몬 덕을 봐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뇌를 건강하게 만들거든요. 항치매효과도 있습니다.”

    ▼ 현대인에게 스트레스가 좀 많습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맞아요. 스트레스 받으면 뇌 호르몬 센터가 엄청 자극을 받지요. 그러면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분비를 매우 증가시키죠. 스트레스 호르몬이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아드레날린 호르몬입니다. 스트레스 받는데 이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방어할 능력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혈압이 상승하고 위궤양에 걸리고 혈당이 올라가고 T-임파구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죠. 뇌는 참 신비롭습니다.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 것 같을 때, 뇌에서 주인을 살리려고 마약을 분비하거든요. 스트레스를 견디게 하기 위해 모르핀을 분비하는 거죠. 엔도르핀(내인성 모르핀) 같은 호르몬이 모르핀 구실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거죠. 심한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 뇌에서 통증을 없애주려고 그걸 분비하는 겁니다.”

    ▼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엔도르핀 혜택을 왜 못 받는 건가요.

    “부정적이거나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한테는 이런 메커니즘이 소용이 없죠. 스트레스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스테로이드 호르몬 때문에 오히려 몸이 안 좋아지거든요. 그게 장기간 나오면 고혈압, 당뇨 같은 생활습관병(성인병)을 일으키는 나쁜 호르몬으로 작용합니다. 신념이 약한 사람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요. 예민하니까 스트레스가 장기화되고 스테로이드 호르몬 분비도 장기화될 수 있는 겁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뇌 조직을 엄청 파괴시킵니다.”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치매는 화투만 친다고 예방되는 게 아니다. 항상 새로운 뭔가에 도전해야 한다.

    ▼ 흔히 정신력이 강하면 암도 이길 수 있다고 하잖아요. 가능한 일인가요.

    “그렇죠. 뇌가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이 좋아요. 뇌가 건강하다는 건 곧 그 사람이 통제력이 좋고 긍정적인 사람이란 뜻입니다. 뇌는 면역기능을 원격 조절하는 중앙사령부입니다. 간단한 원리입니다. 기분이 좋을 땐 면역기능이 좋아져서 암 세포 진행도 늦출 수 있지만, (기분이) 나쁘고 우울하면 면역기능이 확 떨어져서 진행이 빨라져요. 평소 화(火)를 너무 억제하거나 소극적이고 완벽주의자이며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이 암에 잘 걸리고 전이가 빠릅니다.”

    술은 남성을 여성화한다

    ▼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효과가 있어서 뇌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곧 스트레스의 연속 아니겠습니까. 적당한 스트레스가 뇌를 더 건강하게 운동시키는 구실을 해요. 뇌 신경회로들은 생각하고 고민해야 활짝 열립니다. 생각을 안 하고 타인과 단절되면 회로가 폐쇄되고 기능이 사라져요. 그렇지 않아도 20세가 지나면서 하루에 5만개 이상씩 뇌세포가 사멸합니다. 뇌를 자꾸 써야 신경세포가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네크워크를 만들어요. 적당한 스트레스, 우리 뇌 입장에선 좋은 겁니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이 없으면 뇌가 퇴보해요. 뇌에 정보가 안 들어오면 퇴보되는 거죠. 아무리 좋은 도로라도 차가 안 다니고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황폐해지고 폐허가 되는 원리와 같아요.”

    ▼ 최고의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요.

    “혼자 되는 겁니다. 세상에 홀로 남는 ‘격리 스트레스’가 뇌에 치명적입니다. 뇌에 자극이 커요.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혼자만의 성을 쌓는데 이건 더 위험하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폐쇄되면 대뇌 신경세포가 전체적으로 활성화되지 않고 억제충주만 활성화됩니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죠. 홀로 되면 거기서 죽어가고 미쳐가게 돼요. 우리 사회에 기러기아빠가 많아져서 큰일입니다. 싱글족이 늘어나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진실씨도 술만 먹지 않았다면…”

    ▼ 스트레스를 푸는 데 술이 일조를 하나요.

    “절대 아닙니다. 술 마시는 건 뇌 신경계에 마취제를 넣는 겁니다. 두어 잔 마시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용기가 솟아나서 좋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용기가 생기는 건 뇌의 억제성 신경계부터 마취가 되기 때문이지요. 평소 억제됐던 행동이 풀리는 겁니다. 예술가들이 포도주를 한 잔 마시면서 창작활동을 한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돼요. 흥분성 신경계까지 마취시켜버립니다. 전쟁터에서 알코올을 마취제로 쓰는 이유가 흥분성 신경계를 마취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술을 잘 마시면 ‘남성적이다’ ‘호연지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 반대입니다. 술은 여성호르몬 생성을 촉진해 남성을 여성화하는 물질입니다.”

    ▼ 술이 뇌를 서서히 파괴한다는 얘기인가요.

    “그럼요. 결국에는 그렇죠. 술이 몸에 들어가면 위와 장에서 흡수가 되고 간에서 처리가 됩니다. 많이 마시면 간 처리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게 돼요. 남은 알코올이 혈액으로 들어가서 전신으로 퍼집니다. 뇌로도 들어가는 거죠. 알코올이 뇌 속에 들어가면 신경세포를 용해합니다.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줘서 기억회로가 고장이 납니다. 필름이 끊겨버리는 거죠. 술을 너무 자주 마시면 기억중추인 해마와 소뇌의 앞 윗부분이 상해요. 알코올 중독자의 뇌를 열어보면 뇌가 오글오글 오그라들어 있고 골이 넓어지고 깊어져 있습니다. 젊은 사람의 뇌실은 작아야 하는데, 엄청 커져 있는 거죠. 반면에 뇌 무게는 가벼워져 있고요. 자주 필름이 끊길 만큼 술을 마신다면 뇌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있고 몸도 망가져 있고 이성도 망가져 있을 겁니다. 흔히 감기에 걸렸을 때 술 한잔 마시면 낫는다고 하는데, 틀린 소리입니다. 알코올이 면역기능, 방어기능을 다 떨어뜨리고 백혈구 수도 감소시켜요.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간 큰일 납니다.”

    ▼ 담배도 뇌에 안 좋은 거죠.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임신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산소가 부족해서 태아 뇌의 중요한 부위가 망가집니다. 고도의 정신활동을 하는 대뇌피질과 변연계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요. 태어난 뒤에도 뇌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 걷고 말 잘 한다고 뇌가 멀쩡한 게 아닙니다.”

    ▼ 담배도 일종의 중독인데 우리 사회에 마약중독, 게임중독 같은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우리 뇌에는 중독에 관여하는 부위가 있습니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뇌’에서 다룬 바 있어요. 전두엽 밑에 있는 신비의 부위가 바로 중독에 관여해요. 모든 중독을 관여하죠. 그 부위가 활성화되면 중독이 될 수 있어요. 뇌의 앞쪽에서 도파민이라는 탐닉 신경전달물질이 자꾸 분비가 되면서 중독이 되는 거죠.”

    ▼ 사랑을 할 때 이성이 마비되는 것도 일종의 중독인가요.

    “그런 셈이죠. ‘사랑에 빠지면 눈에 꽃지짐이 붙는다’고 하잖습니까. 제대로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되는 거죠. 전 사랑도 이성의 뇌가 작동을 하고 나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상대방을 다 파악하고선 사랑해야 하는 거죠. (웃음)”

    ▼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흡연자이고 애주가면 뇌 기능은 마비되겠어요.

    “그럼요. 최악이 뭔지 아세요. 술에다가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같이 복용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성적 생각이 완전히 차단될 수 있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최진실씨도 술을 먹지 않았다면 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뇌의 가장 큰 불행은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가 찾아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뇌 신경세포가 파괴돼 기억력 장애 뿐 아니라 정신기능 모두에 장애가 온다. 우리나라는 노인성 치매가 가장 많고 중풍의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가 다음으로 많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약 10%, 85세 이상 노인의 50%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 치료약 개발

    서 교수는 뇌 박사이기 전에 신경약리학자다. 1967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1981년 신경약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0년과 지난해 4월, 신경정신약리학자로서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인 ‘DHED’를 우리나라 생약에서 순수 분리하는 데 성공해 치매 효능을 가진 항생제를 개발한 것이다. 또한 ‘오수유’라는 한약제에서 항치매 효능을 가진 물질을 찾아냈고, 여드름이나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감염질환의 치료에 쓰이는 약이 치매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서 교수는 “항생제로 쓰이던 ‘미노사이클린’이 뇌에서 신경세포 사멸을 억제하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면서 “미노사이클린이 치매를 일으키는 독성단백질의 생성과 활동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치매에 걸린 실험쥐에게 미노사이클린을 투여한 결과, 죽어가는 신경세포가 4분의 3 정도 줄어들었고 쥐의 기억력도 2배 이상 향상됐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치매를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와 C단 단백질의 이상 활동을 억제하는 신약물질을 개발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이뿐 아니라 기억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물질인 ‘BT-11’을 천연물 신약과 기능성 식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 치매 발병 연령이 자꾸 낮아진다고 하던데요.

    “스트레스 때문이죠. 치매 위험인자는 첫 번째가 나이입니다. 두 번째가 가족력 즉 유전이고요. 부부가 80대까지 산다면 둘 중에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고 봐야 해요.”

    ▼ 치매에 걸리면 도저히 이성을 되찾을 수 없는 건가요.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아침은 꼭 밥으로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서유현 교수.

    “그렇죠. 독성 단백질 조각 때문에 뇌신경세포가 망가져요. 뇌는 3층 구조로 되어 있어요. 3층(대뇌피질/신피질)은 이성의 뇌로 지(知)와 창조를 담당해요. 2층은 동물도 가진 뇌 고피질인데 변연계로 본능과 감정을 주관합니다. 제일 밑에 있는 1층은 생명의 뇌로 파충류의 뇌라고 해요. 치매는 3층 지혜의 뇌(신피질)가 다 망가지고 2층(변연피질)과 1층(생명관장)이 남는 상태입니다. 감정과 본능만 남는 거죠. 치매는 사람이 동물이 되는 병입니다. 암은 죽을 때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자기 통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만 치매 환자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갑니다. 우리 몸 중에 뇌의 지시를 받지 않는 곳이 없거든요. 뇌가 사령탑이고 모든 걸 컨트롤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의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했는데, 틀린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뇌에 있습니다. 아이덴티티가 뇌에 있다는 거죠. 사랑도 뇌가 하는 겁니다. 뇌가 2층까지 망가져서 1층만 남으면 파충류의 지능이 되는 겁니다. 뱀은 예뻐해줘도 별 반응이 없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나라 치매인구는 40만~50만명(추산)으로, 이는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의 8~10%에 해당된다. 암 환자가 43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 화투치는 것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요.

    “뇌를 골고루 써야죠. 화투만 친다고 되질 않아요. 좌뇌는 분석과 논리를, 우뇌는 감성을 관장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든 신경회로가 멈춰 있으면 안 돼요. 좌우 뇌 모두 사용해야 해요. 다 쓰려면 생활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수화기를 한쪽 귀에다만 자꾸 대면 안 됩니다. 오른쪽, 왼쪽 모두 사용해야 하는 거죠. 뇌 신경회로는 손을 정밀하게 많이 움직일수록 발달해요. 손을 움직이면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키거든요.”

    공부가 뇌를 살린다

    ▼ 뇌 건강에는 적절한 ‘공부’가 최고라던데 사실인가요.

    “맞아요. 지적인 자극이 가해지면 신경전도가 일어나고 신경가지가 두터워져요. 신경회로가 넓어지는 거죠. 막힘없이 신경흥분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평생 즐겁게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 수 있으면 뇌 건강에는 좋아요. 수수께끼나 퍼즐을 푸는 것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죠. 뇌는 적절하게 쓰지 않으면 신경세포와 회로가 점점 사라집니다. 공부를 하면 뇌의 구조가 변하죠. ‘적절하게 사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다(Use the brain or lose it)’는 원칙에 따라 뇌는 유연하게 변합니다. 치매라는 게 독작용을 하는 단백질 조각(아밀로이드) 때문에 뇌신경세포가 망가져서 생기는 병이잖아요. 이렇게 되어도 일부 안 망가진 기능이 남아 있는데, 공부를 하면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서 신경기능의 일부가 살아나서 망가진 뇌 기능을 보충합니다. 뇌에도 줄기세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면 줄기세포가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치매증세가 완화될 수 있는 거지요.”

    서 교수는 “운동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면서 “적당히 운동을 하면 뇌에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동을 하면 줄기세포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날 수 있으며, 늙은 신경세포 간에 연결망이 생기고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켜 뇌 세포에 더 많은 영양과 산소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단 운동은 오전에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오후에 운동을 하면 심장을 흥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장수하려면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닙니다. 쥐의 경우는 소식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걸 발견했어요. 요즘 지나치게 웰빙 식단을 강조하는데 뇌 건강에 안 좋아요. 영양이 결핍되면 뇌 기능이 떨어지죠. 기억력이 감퇴되고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신경회로 간 명령이 잘 전달되려면 신경전달물질이 잘 만들어져야 하잖아요. 이런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원료가 음식물입니다. 신경회로 말단부에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공장이 있어요. 그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것이 각종 영양분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으면 영양이 떨어지고 뇌기능도 떨어집니다. 뭘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거죠. 기억을 관장하는 뇌가 잘 돌아가려면 고단백음식이 적당히 필요해요.”

    ▼ 각종 성인병과 심혈관계 질환 때문에 지방섭취를 줄이자는 추세인데 뇌 건강에는 어떻습니까.

    “큰일 나죠. 지방섭취도 줄여선 안 돼요. 지방은 세포신호 전달에 관여하고 신경세포막을 정상기능으로 유지하게끔 합니다. 장기 중에 뇌가 가장 많은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요. 지방이 신경기능의 핵심이거든요. 고지혈증, 동맥경화증으로 기피하는 분 많은데 치매를 예방하고 뇌를 건강하게 만들려면 지방을 줄여선 안 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트랜스 지방은 좀 줄여야 하겠지만 음식에서 섭취되는 자연적 지방은 너무 줄여선 안 됩니다.”

    뇌의 밥은 쌀밥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치매치료를 받고 있는 노인들. 이제 부부 둘 중 한 사람은 먼 훗날 치매에 걸린다.

    ▼ 뇌에 좋은 음식이 따로 있나요.

    “탄수화물이에요. 뇌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해요. 쌀밥과 콘플레이크 같은 탄수화물이 뇌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겁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은 항우울제인 세로토닌 같은 걸 많이 만들어내거든요. 우울할 땐 탄수화물 섭취가 도움이 돼요. 당분이 뇌 건강엔 좋아요. 한창 공부할 때에는 밥 많이 먹고 빵도 좋아하고 단 것을 좋아하는 걸 말리면 안 돼요.”

    서 교수는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분을 섭취해야 뇌가 활동해요. 아침 식사를 거르면 포도당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뇌가 활동을 줄입니다. 아침은 밥으로 먹는 게 최고예요. 아침 안 먹으면 시상하부 속에 식욕 중추가 흥분하게 되는데 이걸 가라앉히는 게 혈당입니다. 아침은 밥으로 꼭 먹어야 해요.”

    최근 우울증과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19세 이하 환자가 2003년에는 2만6000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만6000명으로 늘어났다는 것. 청소년 자살상담 건수도 2003년에 57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00건으로 크게 늘었다.

    서 교수는 “청소년의 우울증은 지나친 학습이 원인인데 이 때문에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우울증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뇌 발달에 적합한 교육을 시켜야 해요. 영유아기 땐 뇌 회로가 엉성합니다. 아기들은 머리를 흔들거나 때리면 뇌손상이 온다고 하잖아요. 이를테면 앞쪽 뇌는 발달하고 있는데 뒤쪽 뇌는 엉성한 거죠. 가늘고 엉성하게 연결된 미성숙 회로를 전선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거기에 많은 전류를 흘려버리면 과부하가 걸려 불이 나겠죠. 막 태어났을 때의 뇌는 성인의 25% 밖에 안 됩니다. 생후 3년 후가 되면 1000g 정도가 됐다가 10세까지 꾸준히 자라서 성인이 되면 1300~1500g이 되는 거예요.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3세까지 일생 중 신경회로가 가장 많이 발달해요. 잠깐 스치면서 듣고 보고 배운 정보가 입력이 되기 때문에 일관되고 고른 자극을 줘야 하고 편중되지 않은 자극이 중요합니다. 3세부터 6세까지는 전두엽이 빠르게 자라는 시기예요. 전두엽은 판단하고 사고하고 느끼는 모든 걸 관장하죠. 이때 인간성이 길러지는 겁니다. 초등학생을 자꾸 암기교육에 시달리게 하는 건 뇌에 좋지 않아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본기를 다져야 해요. 예의를 가르치고 도덕을 가르쳐야 해요.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린 이 시기부터 대입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기억력 좋으려면 솔직해라

    ▼ 사람마다 뇌 발달도 차이가 있겠죠.

    “그럼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가 돼야 두정엽과 측두엽이 발달합니다. 두정엽은 물리학적, 수학적 기능을 담당하고 측두엽은 언어영역을 관장합니다. 언어의 뇌가 가장 빠르게 발달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어와 외국어를 배워야 학습효과가 좋아지는 거죠. 언어는 단순한 단어의 연결이 아니에요. 자신의 감정, 인지기능, 철학이 포함되어야 해요. 너무 어릴 때 언어를 마구잡이로 시키면 인지기능이 다양해지지 않아요. 또 자신의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가느다란 회로로 연결된 언어중추가 손상받기 쉬운 거죠.

    아이슈타인은 두정엽이 보통 사람보다 15% 더 컸다고 합니다. 두정엽이 수학, 물리학, 공간적 사고, 계산, 연상 등을 관장하기 때문에 과학천재가 된 거죠. 또 두정엽과 측두엽 사이의 고랑인 실버안고랑이 더 많은 세포로 채워져 있었고 보통 사람보다 얇았다고 해요. 이 부분이 바로 천재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이 보통 사람보다 작았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언어발달이 느려서 3세가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이 말을 못한 건 아니거든요. 언어를 관장하는 측두엽 발달이 다른 사람보다 느렸던 거죠. 부모들은 아이마다 뇌 발달이 차이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시기에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한다고 해서 ‘영재다’ ‘천재다’ 장담할 수 없어요. 어떤 것이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건 그쪽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다른 애들보다 먼저 발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재인 줄) 착각하고 마구잡이로 공부시켰다가는 뇌 신경회로가 다 망가져요.”

    ‘치매의 대가’ 서유헌 교수의 재미있는 腦 이야기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가 머리도 좋다.

    ▼ 머리가 좋고 나쁘다는 걸 어릴 때 알 수 있나요.

    “두고 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신경세포회로가 치밀한 정도에 따라 달라요. 시냅스가 정교하게 많이 발달했을 경우에 머리가 아주 좋죠.”

    ▼ 두뇌가 좋은 아이의 특징이 있다면요.

    “잠 잘 자고 많이 기어 다니고 손 많이 쓰면서 쾌활하게 잘 놀아야 머리가 좋아요. 제일 중요한 것은 잠을 잘 자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애들 키워보면 잠을 안 자는 아기들이 칭얼거리고 예민해서 자꾸 안아줘야 해요. 아인슈타인은 머리만 대면 골아 떨어졌다고 합니다. 영재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요. 잠은 집중력을 위해 아주 중요해요. 계속 머리를 쓰면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됩니다. 잠을 푹 자고 잘 먹어야 회복되는 거죠. 요즘 학생들은 자야 할 시간에 새벽까지 학원을 가고, 학교 수업시간에는 선잠을 잡니다. 뇌 회로가 망가지고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흔히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잘 때 잘 자고, 공부할 때 미친 듯이 하고, 놀 때 잘 논다’고 하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손놀림이 많을수록 발달합니다. 아기를 키울 때 손을 많이 놀려야 뇌가 발달합니다. 뇌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이 손을 관할하는 부위입니다. 뇌 운동 중추사령실의 30%가 손에 해당되는 거죠. 손을 이용한 놀이를 많이 하는 게 좋아요. 두뇌가 좋다는 건 기억력이 좋다는 것인데, 기억력이 좋으려면 솔직해야 합니다. 아이를 솔직한 성격으로 키워야 해요.”

    잘 놀아야 머리에 좋다

    ▼ 전자파가 기억력 장애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던데요.

    “그럼요. 텔레비전 보지 않고 핸드폰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꺼야 해요. 전자파에 장시간 노출되면 가장 고도의 뇌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부위와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 운동과 몸의 평형을 담당하는 소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변해요. 컴퓨터, 핸드폰 등의 전자파가 치매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뇌에 30%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어요.”

    ▼ 천재는 99% 노력에 의해 완성된다는 건가요.

    “반 정도는 태어나고 반 이상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서 교수는 “지나치게 청소년의 감정과 본능을 억눌러선 안 된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청소년은 어른보다 감정이 더 예민해요. 어른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여행도 갈 수 있지만 학생들은 안 되잖아요. 인간의 행동과 생각이 모두 뇌에서 좌우되는데, 감정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성의 뇌가 마비됩니다. 본능과 감정을 주관하는 2층(변연피질)의 뇌를 무시하고 계속 지식만 집어넣으면 3층(대뇌피질) 지혜의 뇌가 다 망가지는 거죠. 대뇌피질과 변연피질은 상호협력 관계거든요. 본능이 충족되어야 이성을 관장하는 회로가 서로 활짝 열려요. 지성의 뇌와 감정의 뇌는 수많은 회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처럼 암기만 죽어라 하면 3층 지혜의 뇌가 파괴되고 2층 본능의 뇌는 충족되지 않고 위축돼요. 감정적 충족감을 몰래 갖기 위해 각종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예요. 이것은 변연계(2층)의 암기능력만 단련시키는 거죠. 결국 추론하고 연상을 할 수 있는 종합적인 뇌 발달이 안 돼요. 본능이 너무 억제되고 차단돼서 그런 거죠. 또 감정이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 망상활성화계가 흩어지고 억제됩니다. 주위가 산만해지고 기억기능이 무너지는 거죠.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영재로 태어나도 범재, 둔재가 될 수 있어요. 감정의 뇌를 충족시켜주면서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 일설에 아이는 엄마 머리를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사실입니까.

    “똑똑한 후세를 만들려면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아내를 만나야 해요. 여성의 X염색체에 지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유전자가 있거든요. 엄마가 아들에게 지능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책임을 지고 있는 거죠. 아들의 지능은 엄마로부터, 딸의 지능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1개씩 X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양친의 지능을 모두 물려받는 셈입니다.”

    음이온을 마셔라

    서 교수와 대화를 하다가 불현듯 옛말이 떠올랐다. “말이 씨가 되고, 노래 따라 팔자 간다”는 운명타령 구전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보다 더 황당하고 비과학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서 박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평소 밝은 노래를 부르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의 뇌가 건강한 뇌”임을 강조했다. 뇌가 건강해서 명랑한 건지, 명랑해서 뇌가 건강한 건지는 정확하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긍정적인 사람의 뇌와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의 뇌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뇌 기능의 차이가 운명을 결정짓는 키워드라는 얘기였다.

    “뇌에 가장 안 좋은 것이 고립되는 외로움입니다. 쥐에게 장난감을 주고 친구 쥐와 놀게 했을 때와 혼자 고립시켰을 때를 비교했는데요. 친구와 놀게 한 경우 뇌 무게가 10% 증가했습니다. 재미있고 신선한 자극이 뇌 건강에 좋은 거죠. 쥐 세계도 세대차이가 있습니다. 늙은 쥐와 젊은 쥐를 같이 넣었더니 늙은 쥐는 좋아하고 젊은 쥐는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젊은 쥐의 뇌 무게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사회생활이 필요한 거죠. 뇌가 건강해야 치매도 안 걸리고 병을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은퇴하고도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 아닙니까. 적절하게 머리 식혀가면서 사는 게 참 중요해요. 신경세포가 성장하는 건 수상돌기가지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어떤 자극이 있어야 합니다. 신경세포 가지가 증가하고 두꺼워지니까 뇌 무게가 늘어나는 거죠. 그래서 음이온이 많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하는 거예요. 뇌에 참 좋아요. 음이온이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누구든 뇌를 적절하게 쓰지 않으면 세포 간 회로가 다 망가져요.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 버리세요. 뇌를 신선하게 자극할 일을 찾아봐야 합니다. 새로운 취미생활에 도전하는 건 뇌를 신선하게 만드는 첩경이죠. 뇌는 계속 자극을 받아야 회로 간 반응이 좋아집니다. 매일 같은 생활패턴으로 살면 뇌가 일찍 늙습니다. 뇌 세포에 피로가 쌓이면 ‘치매’라는 불행한 덫에 걸립니다. 위 내시경은 자주하면서 뇌 건강을 위해선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니 참 안타까워요. 뇌가 건강해야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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