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을 현대의학으로 인증
알레르기라는 말은 1906년 클레망스 폰 피르케가 만들었다. 그리스말 ‘allos(변화하다)’와 ‘erogon(힘)’의 합성어. 인체는 외부 이물질에 대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알레르기 증상 중 쏟아지는 콧물은 침입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분해하고 씻어내기 위한 ‘인체 물청소’이며 재채기는 시속 180㎞의 속도로 이물질을 날려 보내기 위한 ‘인체 폭풍’이다. 가려움은 긁어서 이물질을 빨리 제거하기 위한 ‘피부의 신호탄’이다. 이렇듯 알레르기의 모든 증상은 세균과 바이러스 등 이물질에 대한 인체의 강력한 자기방어 수단인 셈이다.
이런 대응시스템의 배후에는 면역체계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면역은 인체의 국방부다. 혹자는 면역체계를 정신세계, 즉 뇌가 지배한다고 말하지만 뇌사(腦死) 상태에서도 면역체계가 작동하고 생명이 유지되는 현상을 보면 면역은 정신세계보다 앞서 존재하는 인체의 본능적 방어수단인 셈이다. 현대의학은 꽃가루, 진드기, 동물의 털, 비듬, 진균류, 직물의 먼지 등을 알레르기 원인물질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런 물질은 자연계에 늘 존재한다. 다른 이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게 나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결국 알레르기는 나의 문제이지 꽃가루나 이물질 탓이 아니다. 자신의 온도, 습도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일 뿐 꽃가루 등은 무죄라는 이야기다.
인체에서 코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가진 공기를 폐와 심장에 전달하는 일이다. 인체의 온도와 습도조절 능력이 약해지면 외부 이물질에 코가 예민해진다. 코의 점막에 혈관이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외부온도를 보일러 배관처럼 0.25초 만에 36.5℃로 데워 폐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환절기나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체온의 40%는 근육에서 만들어지는데, 몸을 움직이거나 낮이 되면 혈관 보일러의 온도가 높아져 폐에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주는 데 유리하다. 밤새 잠들어 있는 시간은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체온이 낮아지며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온도가 낮으므로 36.5℃를 유지하기 어렵다.
대부분 한국형 알레르기는 온도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체온적응장애로 유발된다. 좀 더 구체적인 한의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형한음랭(形寒飮冷)’이라고 한다. 여름 내내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면서 찬 음식을 즐겨 섭취한 것도 한 원인이 된다. 코를 통하거나 직접 찬 공기와 맞닿은 폐와 피부뿐 아니라 음식을 담는 위장도 체온적응장애와 관련이 깊다. 위 속에 들어간 알코올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 폐에서 내뿜는 숨과 함께 밖으로 배출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소화기와 호흡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폐가 지배하는 코 질환의 원인도 위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의학은 알레르기 비염의 원인을 환자 본인의 호흡기나 소화기인 폐와 위장에 있다고 보고 근본 치료에 임한다. 필자는 대학교수 시절 대규모 임상실험을 통해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한의학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8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석 달 동안 한약을 복용시키면서 혈액, 병리, 화학검사, 알레르기 검사 등을 병행했다. 이화학적으로 알레르기 비염 환자임이 증명되고 3년 이상 앓아온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한약 투여 실험 결과, 74.39%에서 유효·개선의 효과가 나타났다.
쾌비탕의 힘
한의학적 치료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현대의 과학적 도구를 통해 증명한 셈이다. 실험에 사용된 쾌비탕(快脾湯)은 황기 방풍 등 체온과 습도조절에 영향이 큰 약물로 이뤄졌다. 알레르기의 원인이 외부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인체 자신의 조절능력에 있음을 실증한 것이다. 실험의 전반적 과정이 현대 의학적 기준에 맞는지를 인증하기 위해 일본 도야마 대학의 이비인후과 와타나베 유키요 교수가 위촉됐는데, 진료과정을 지켜본 그는 “난치병인 알레르기 비염을 진단,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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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약물에 이르기까지 한의학만으로 통제하고 치료한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방의학이 현대의학의 일부로만 이용될 뿐인 일본의 현실과 달리, 직접 치료의학으로 자리매김한 우리 한의학의 위상에 경의를 표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대립이 거의 없다. 한방치료가 여의치 않으면 양약으로 치료하며 치료 자체도 전체 치료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고질화된 한양방 간의 불협화음이 오히려 한의학의 생명력과 창의력을 더 키워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대체의학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우리의 한의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