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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⑦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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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때 아이들과 함께 그 등산로를 올랐다. 추석 음식이 소화가 안돼 산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따라나선 것이다. 송편과 배를 싸 들고 아내까지 합류했다.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둘째아이가 병아리 오줌처럼 흐르는 아주 작은 물줄기를 발견했다. 길옆으로 올라가더니 ‘약수터’를 발견했다며 모두 와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물이 바닥에서 송송 올라오고 있었다. 그 옆에서 쉬며 깎아 온 배를 먹었다. 아이들은 나무로 그 물이 솟는 곳을 파헤쳤다. 좋은 놀잇감을 만난 듯, 아이들은 손으로 물구멍 주위를 넓히고, 약수터를 만든다며 한참을 헤집었다. 그러자 제법 많은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에 정식으로 약수터를 만들자고 약속하며 산을 내려왔다.

며칠 후, 아이들과 나는 산을 다시 올랐다. 이번엔 장비가 달랐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아이의 배낭에는 정원용 자갈과 벽돌 등을 넣고, 난 야전삽을 들었다. 둘째는 나무를 잘라 만든 ‘형제약수터’팻말을 들었다. 돌과 벽돌이 가득 든 무거운 배낭을 번갈아 메가며 그 형제약수터에 낑낑거리며 올랐다. 그리고 정식으로 약수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 나오는 구멍 위에 자갈을 올려 물이 맑게 유지되도록 했다. 물 구멍 위로는 쓰러진 통나무를 잘라 덮었다. 둘째는 물길을 만든다며 크게 도움 안 되는 작업에 나름 씩씩거리며 몰두했다. 주변을 정비하고 형제약수터 팻말을 꽂았다.

형제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이제 우리식구의 정기적인 행사가 됐다. 벌써 팻말의 글씨가 바랬고, 물은 말라 있을 때가 많다. 약수터를 만들 당시에는 비가 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무늬만 약수터를 오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겐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가족이 모두 약수터를 방문하는 날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족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있으면 아무도 산에 오르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할 때, 아니 행복함을 느끼고 가족 서로에게 고맙고 감사할 때 우리는 형제약수터를 오른다. 아내는 과일을 깎고, 보온병에 커피와 코코아를 담는다. 약수터에 오르며 나는 아이들에게 계속 다짐한다. 나중에 너희들이 장가가서 아이를 낳으면 할아버지 이야기해주며 함께 올라야 한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식구가 모두 즐거울 때면 내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어투까지 닮아 있다. 형제약수터에 오르는 일은 우리 식구가 최근 발견한 행복의 리추얼(ritual)이다. 행복과 재미는 리추얼로 확인된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그토록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던 이유



그때는 그랬다.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며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을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 위에 태어났다’. 그렇게 누구나 힘들게 찾아내려 하는 내 삶의 목적을 국가가 그렇게 간단히 정해준 것이다.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모여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확인해야 하는 그 국민의례는 지금 생각하면 진짜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지금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일부 페미니스트가 예수, 석가, 공자를 마초, 남성우월주의자로 비난하는 것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냄새가 가득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농후한 국민교육헌장과 국민의례지만 당시 사회 맥락에서는 결정적 기능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후진적 경제구조를 벗어나 국가의 일대 변혁을 꾀하기 위해선 의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의례, 즉 리추얼처럼 강력한 수단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아침마다 외웠던 ‘국가를 위한 내 삶의 목적’은 지금까지 입안에 빙빙 돈다. 나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모든 이에게 물어보라.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그럼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혹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헷갈려 하는 이들은 이렇게도 대답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리추얼은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단순히 반복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계속해서 의미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습관과 리추얼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계적인 행동의 반복은 습관이다. 그러나 리추얼은 ‘반복되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의 맥락’이다. 그 행위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의미가 구성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의례나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가가 갖는 의미를 재생산한다. 그 집단주의적 의미의 재생산구조 때문에 오늘날 아무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일부 바뀌었다. 더 이상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라는 문장은 없다. 대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지난해부터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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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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