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사진작가 조세현 - 문예춘추 ‘초상권’ 송사(訟事) 새 국면

조세현, ‘초상권’ 침해 억울함 풀 길 열려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08-11-03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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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심서 위증 혐의 무죄 받았던 황선용씨, 항소심서 유죄
    • 항소심 재판부 “진술 번복, 단순한 착오 아니다” 원심 깨
    • 황씨, 명예훼손 혐의도 유죄 …징역8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
    • 조세현, “할 말 없어 입 다물고 있었던 것 아니다”
    • 조씨, 패소한 두 건의 손해배상 판결에 재심 청구 예정
    사진작가 조세현 - 문예춘추 ‘초상권’ 송사(訟事) 새 국면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재판장 이상주)는 8월28일, 위증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블레스월드 황선용 대표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했던 원심(1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006년 2월9일 일본의 대표적 월간지 ‘문예춘추’를 발행하는 (주)문예춘추가 사진작가 조세현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황씨의 증언 내용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이라는 검찰의 기소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황씨는 당시 “2004년 6월14일 또는 15일에 조세현의 사무실을 방문해 함께 아귀찜을 먹으며 조세현씨로부터 직접 초상권의 사용 승낙 사실을 확인하여 그 자리에서 문예춘추에 전화를 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또 ‘인터넷에 댓글을 남기는 방법으로 조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서도 “인터넷을 통해 익명으로 욕설이나 감정적 내용을 유포한 점을 종합해보면 황씨가 조씨를 비방하려는 목적에서 글을 게시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문예춘추와 조세현씨 간에 4년 동안 이어져온 ‘초상권’ 송사(訟事)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2004년 7월, 문예춘추가 사진집 ‘the man’을 출간하면서 불거진 ‘초상권’ 문제로 지금까지 모두 네 건의 송사가 진행됐다.



    ‘초상권’ 둘러싼 네 번의 재판

    첫 번째 송사는 문예춘추가 사진집 발간 이후 ‘조세현씨가 배포한 보도자료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조씨를 상대로 한국에서 제기한 민사소송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3부는 2006년 5월4일 조씨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온 데에는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선용씨의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씨는 ‘조세현씨가 (2004년) 6월14일 또는 15일에 초상권 사용을 승낙했다’고 증언했고,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문예춘추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작가 조세현 - 문예춘추 ‘초상권’ 송사(訟事) 새 국면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문예춘추와 조세현씨 간에 4년 동안 이어져온 ‘초상권’ 송사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두 번째 재판은 일본에서 열렸다. 문예춘추는 ‘초상권은 작가가 책임진다’고 돼 있는 출판계약서를 근거로 조세현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집 초판 5만부에 수록된 배우들에게 지급한 초상권 사용료와 ‘초상권’ 문제 때문에 파기한 증쇄본 12만부의 제작 비용 등을 모두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도쿄지법은 2007년 11월5일 조씨에게 9079만7520엔(현재 약 11억원)을 문예춘추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된 두 건의 민사재판에서 거듭 패소한 조세현씨 측은 황선용씨를 위증 및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문예춘추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명예훼손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씨가 허위 진술을 했으며, 포털사이트에 조씨를 비난하는 글을 게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4월3일 황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8월28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황씨에게 징역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 이후 황씨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형은 확정됐다.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

    ‘초상권’ 문제로 촉발된 네 건의 재판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초상권 사용 승낙’의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점이다. 출판계약서상 초상권에 대한 책임은 작가인 조씨에게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조씨는 초상권 사용을 승낙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문예춘추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지금까지는 출판계약서상 초상권에 대한 책임이 명시된 조세현씨에게 재판의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을 계기로 국면이 전환됐다.

    무엇보다 항소심 재판부는 황씨가 2004년 6월15일경 문예춘추에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인쇄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고, 문예춘추가 이 말을 믿고 다른 확인 절차 없이 6월16일경 사진집 ‘the man’ 인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특히 조씨 측에서 황씨의 출입국 사실 등을 확인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주효했다.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황씨는 2004년 6월11일 일본에서 태국으로 출국했고, 6월14일 심야에 태국을 떠나 6월15일 아침에 일본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6월14일(또는 15일) 조세현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의 사용승낙 사실을 확인했다”는 황씨의 법정 증언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출입국 기록으로 자신의 진술이 모순된 것으로 나타나자 황씨는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황씨의 이 같은 소명을 받아들여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서 한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해야 하고, 그 결과 증인이 무엇인가 착오에 빠져 기억에 반한다는 인식 없이 증언하였음이 밝혀진 경우에는 위증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4월3일 황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기억에 반하여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며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다. 황씨가 단순한 착오로 날짜를 혼선해 증언한 것이 아니라 고의라고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조씨의 손을 들어준 것은 크게 네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황선용씨가 가져온 한글계약서의 초안과 수정안 등에 조세현씨가 여러 차례 가필을 하면서 출판 시기와 초상권의 사용 승낙을 완료하는 시점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점에 주목했다.

    둘째로 조세현씨로부터 사진집에 실릴 사진을 미리 제공받은 문예춘추는 초상권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인쇄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고, 문예춘추가 황선용을 통해 조세현이 초상권의 사용승낙을 완료했는지 여부를 알고자 했던 점도 고려됐다.

    셋째로 황씨가 6월15일경 문예춘추에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인쇄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고, 문예춘추는 이 말을 믿고 다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6월16일경 사진집의 인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점도 작용했다.

    넷째 황씨가 초상권 사용 승낙 사실을 확인했다는 날짜를 6월14일 또는 15일로 주장하다가, 출입국 사실 등을 확인해 이의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전화상으로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도 조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황씨가 ‘단순히 착오에 빠져 증언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고,’ ‘기억에 반하여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결론 내린 것. 즉 항소심 재판부는 문예춘추가 사진집 인쇄에 들어가도록 ‘초상권 사용 승낙’을 확인해 준 이는 조세현이 아니라 황선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증 혐의에 대해 황씨의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조세현씨는 ‘초상권 침해’라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씨는 항소심 판결 이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패소한 두 건의 민사 재판 결과를 바로잡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한국과 일본에서 패소한 손해배상 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로 문예춘추가 사진집을 출간하게 만든 초상권 승낙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씨는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제출한 ‘사건 경위 요약서’ 말미에 한국과 일본에서 내려진 두 건의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황선용의) 위증을 밝혀야 그동안의 모든 거짓말에 대한 사실을 문예춘추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피해자다. 중개인 한 사람의 잘못이 얼마나 큰 해를 입히는지, 작가의 명예에, 출판사의 도덕성에도….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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