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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세금으로 전기요금 보조? 잘사는 사람이 더 큰 혜택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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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약한 보조금 명분

정부가 보조금 지급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서민생활 안정과 우리 경제에 대한 부담 완화 등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9월8일 국회에서 “전기요금은 서민생활과 관련이 있는 데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원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임금 상승과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기요금 동결 대신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이명박 대통령이 9월9일 TV 대담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해 “전기요금을 서민 부담을 안 주는 범위 내에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명분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많다. 오히려 정부의 명분은 어떤 의미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경제학계의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선의로 정책을 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 의도와는 달리 부작용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가스공사 관계자의 말이다.

“전기·가스요금은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 서민보다는 전기를 많이 쓰거나 LNG를 많이 쓰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된다. 결국은 국민 세금을 거둬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람을 지원하는 꼴이 돼버린다.”

수도권 지역의 한 도시가스 회사 사장은 “제주도민들은 LPG보다 싼 LNG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데 이들이 낸 세금도 가스공사 보조금 지급에 일부 사용될 수 있다”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제주도는 LNG 배관망을 해저로 연결하는 데 들어가는 투자비가 너무 많아 현재 LPG와 기름을 연료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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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9월8일 예결특위에서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은 “전기·가스를 많이 쓰는 국민에게 보조금을 많이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고 비판한 것. 이에 대해 강만수 장관은 “그런 면은 인정한다”면서도 “수학적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느냐”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현 정부가 입만 열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데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설사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해도 서민가계 부담은 거의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전기 사용량을 줄여 가격 신호에 반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나마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연간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의 전기요금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월 평균 소비지출 금액은 234만8801원. 이 가운데 전기요금은 3만9221원으로, 고작 1.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통신비 13만8458원(5.9%), 공공교통비 6만5140원(2.8%)과 비교하면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일반국민이 산업용 전기요금 보전

우리 경제에 대한 부담 완화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기요금을 되도록 억제함으로써 수출산업의 원가 부담을 줄여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일부 흡수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산하 전기위원회 한 민간위원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그런 보조를 하면 오히려 에너지 낭비구조만 고착시킬 뿐 아니라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녹색성장’의 본질은 비싼 청정 에너지를 쓰되 절약하자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기조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 및 일반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였다. 한전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일반용 전력의 원가 보상률은 127% 수준. 반면 산업용은 102%, 농사용은 46%에 불과하다. 결국 그동안 일반 국민이 산업용 ·농사용 전기요금의 일부를 보전해온 셈이다.

현재 전기요금은 주택용(저압, 고압)과 일반용(갑, 을), 산업용(갑, 을, 병),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용 등 6개 용도별로 전압에 따라 10개로 구분돼 있다. 2002년 11월 수립한 ‘중장기 전기요금체계 개편방안’에 따라 3차례 체계를 개편, 종별 간 요금 격차가 완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종별 원가 보상률 격차가 큰 편이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산업이 에너지 다소비형 구조로 고착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선 굳이 효율이 좋은 생산설비로 교체할 이유가 없다는 것. 전력을 더 많이 쓰더라도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에 생산설비를 교체하지 않는 게 기업 입장에선 더 유리하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해온 것은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체제하에서는 ‘국부(國富) 유출’ 논란도 불러올 수 있다. 기업들이 적게 낸 전기요금을 우리 국민이 일부 부담하지만, 정작 그 효과는 해당 제품을 수입하는 나라의 국민이 누리기 때문이다. 국부를 수출국에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한전의 계산에 따르면 전기요금이 1% 인상되면 소비자 물가는 0.019% 포인트, 생산자 물가는 0.0275% 포인트 올라간다. 또 제조업의 제조원가 중 전력비 비중은 2006년 기준 1.26%다. 그나마도 1990년대 이후 감소 추세다. 웬만큼 전기요금이 인상된다고 해도 제조업체들이 충분히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만한 비중이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가스연구실장은 “현재 전기요금이 너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당연히 올려야 하는데,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전 국민이 전기를 소비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단기적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것. 정부가 정책적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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