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북핵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2006년 북한 핵실험 당시만 해도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빌미로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중국 측 관변 전문가들의 뉘앙스는 사뭇 달라졌다. 북한이 조악한 핵폭탄을 몇 기 가졌다 해서 과연 ‘진주만 기습’의 아픈 기억을 가진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해주겠느냐는 것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표출되는 이러한 견해의 골자는 북한 핵이 현 상황만 유지한다면 중국으로서도 나쁠 게 없다는 것에 가깝다.
‘확산 방지’를 중심 목표로 두고 있는 미국과 현재 상황에 큰 불만이 없다는 중국.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미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6~7기의 핵폭탄’을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의 처지다. 북측이 최소한 향후 수년간 모호하나마 현재 알려진 수준의 핵 능력이라도 계속 보유한다면, 이에 대한 불안은 고스란히 한국의 몫으로 남는다. 북한이 아직 핵폭탄을 장거리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게 소형화하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현재 상황에서, 북한 핵에 대한 실존적인 두려움은 오로지 한국의 몫이다.
‘확장된 억제’
물론 북한이 초보적인 수준의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당장 남과 북의 군사적 균형이 깨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북한 핵 보유 추진이 가시화한 1990년대 이래 한국군은 유사시 이를 초기에 무력화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계를 확보해왔다. F-15K 전투기에 탑재되는 공대지유도탄(SLAM-ER, 사거리 270km), 2011년 도입 예정인 합동공대지미사일(JASSM, 사거리 400km), 미국에서 수입한 에이태킴스(ATACMS) 미사일과 한국이 독자 개발한 현무1, 2 미사일(사거리 180~300km)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사거리 500km와 1000km 수준의 크루즈미사일 보유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군은 사거리별로 촘촘한 정밀유도 무기 공격망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 미사일은 유사시 북한의 핵 공격 징후가 확인될 경우 이를 선제 타격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북한이 기습적인 핵 공격에 성공하는 경우는 이 같은 장거리 미사일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더욱 큰 보복, 특히 핵을 이용한 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해 섣불리 북한이 핵 사용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제효과’는 고스란히 미국의 핵우산에 맡겨져 있다. 이는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부의 독자적 핵 보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1978년 이래 한미 양국은 매년 가을 열리는 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을 통해 ‘핵우산의 제공(provision of a nuclear umbrella) 지속’을 재확인한 바 있다.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 38차 SCM부터는 표현을 바꾸어 ‘확장된 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문구를 공동선언에 포함시켰다. 미국이 자국 영토뿐 아니라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는 경우에도 대신 보복한다는 이 ‘확장 억제’라는 개념은 우방국의 자체 핵무장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렇듯 핵우산의 존재 자체는 잘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핵이 실제로 한반도에서 사용될 경우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떤 부대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핵무기로 이를 ‘응징’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말하자면 ‘핵우산의 군사적 실체’에 관한 정보다. 이는 물론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엄중한 군사기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 국방부 등은 상당량의 간접자료를 공개하고 있고, 특히 미국의 많은 전문연구기관은 FOIA(정보공개법)에 의거해 관련 자료의 비밀해제를 꾸준히 추진해 축적해왔다. 전미과학자연합(FAS·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의 한스 크리스텐슨 연구원, 천연자원보호협회(NRDC·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의 토머스 코크란 박사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