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청와대 신임 흔들, 내부알력 꿈틀, 조직장악력 휘청…“원장은 청문회 갈 일 절대 안해”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8-11-04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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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떠도는 ‘차기 국정원장 하마평’의 내막
    • 국정원 내부게시판의 ‘공안’ 논쟁, “역사 퇴보” vs “본연 임무”
    • 김주성 기조실장의 조직개편 ‘칼바람’…9월 팀제 도입의 끝은
    • 원장의 ‘공직자 조직관리론’ 對 기조실장의 ‘기업가 조직혁신론’
    • 1급 승진인사 두고 벌어진 2차장과 기조실장의 싸움
    • 내곡동 청사 지하 사우나탕에서 뜨거운 물이 사라진 까닭
    • “원장 비서실 판공비 내역까지 손대다니…”
    • ‘왕형(王兄)의 사람’이라는 그림자, ‘TK 대 PK’ 갈등 재현하나
    • ‘절대로 외부에 인사청탁 하지 말라’ 지시에 담긴 뜻
    • “원장과 기조실장 중 한 사람은 연말 인사에서…”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정보당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신변의 이상 징후를 미국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8월29일 무렵이었다. 일군의 프랑스 뇌신경외과 전문가들이 8월 중순 평양을 방문했다는 첩보였다. 몇 가지 추가사항이 확인된 9월4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은 안보부처 장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청와대 회의를 소집했다. 참석자들에게 안건도 사전 배포하지 않은 최고등급 보안 회의였다.

    회의 직후만 해도 일부 안보부처 핵심의 분위기는 밋밋했다. ‘단정할 수 없는 정보를 갖고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것. 여름을 넘기면서 여의도와 청와대 주변을 떠돌던 ‘김성호 위기설(說)’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9월6일 ‘조선일보’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보도하면서 상황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9월9일 북한 정권창건 60주년 기념행사장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연한 호들갑이었는지 아니면 정확한 사전예측이었는지, ‘국정원의 실력’을 판가름할 기회였다. 마침내 9월9일, 김 위원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저녁 국정원 관계자들의 표정에 ‘묘한 안도감’이 흘렀다는 게 청와대 인사들의 전언이다.

    “휴민트는 없다”

    이튿날인 9월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성호 원장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던 미국 측 브리핑과는 달리 그간 수집한 정보사항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그 이틀 뒤, ‘정부 고위관계자’발(發)로 문제의 ‘양치질 발언’이 흘러나왔다. 김정일 위원장을 옆에서 지켜본 ‘휴민트(HUMINT·인간정보)’의 존재를 암시한 듯한 정보노출 수위가 언론의 질타를 받았고, 김 원장의 보고사항을 ‘생중계’하다시피 했던 국회 정보위원들조차 이를 꾸중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간접 첩보를 분석한 결과이지 휴민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청와대 이하 관련부처 당국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9월9일 하루 종일 촬영된 위성사진 판독 결과 행사개최 시간이 당초 오전이었다가 오후로 연기된 정황이 확인됐고, 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에 머무르고 있던 외국인들에게서도 소집시간이 아침 일찍에서 오후로 연기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게 전부였다는 것. 다시 말해 이는 김 위원장이 행사장에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분명치 않아서 오후까지 행사를 미뤄가며 지켜본 흔적이고, 그렇다면 반신불수 등 아예 못 움직이는 상태는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최근 수년 사이 안보·정보당국 핵심에서 일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우리 정보당국이 김 위원장의 동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휴민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한 안보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8개월 사이에 새로 만들지 않은 한 그런 통로가 없는 건 확실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통로가 있었다면 핵실험도 예측하지 못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김 원장의 ‘정보 과잉노출’에 대해 안보부처와 청와대 일각, 여의도 국회 주변의 평가는 냉정하다. “금강산 피격사건, 독도 문제, 여간첩 사건 등으로 수세에 몰린 김성호 원장이 점수를 만회해보려 한 것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여름을 거치며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여권 인사들은 국정원의 역할 부재에 대한 공개비판을 쏟아냈고, 특히 북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공격은 “새 정부가 출범하고 원장이 바뀌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김 원장의 조직장악 능력 자체를 문제 삼는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물론 국정원 측의 공식적인 설명은 이와 거리가 있다. 정보위 보고에 대해 김 원장은 “워낙 엄중한 상황이라서 의원들도 보안을 유지해줄 것이라 판단했다”고 청와대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무적 판단 실패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의도적인 ‘오버’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폐지됐던 국정원장의 대통령 직접보고(이른바 ‘독대’)가 주 1~2회 정도 이뤄지는 등 김 원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에 이상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흘러 다니는 ‘차기 하마평’

    그러나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말이나 여권 핵심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법률가 출신인 김 원장이 ‘법과 비법(非法)의 경계를 오가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특히 지난 봄과 여름을 달군 촛불집회 정국에서 국정원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놀랄 만큼 공통적이다.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머물렀던 한 인사는 “퇴임 후 청문회에 나갈 일은 하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으며 누가 배후에 있는지 보고해야 할 것 아니냐’는 이 대통령의 회의석상 발언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자명하다는 것이다. 이후 국정원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상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논리였다.

    사실 여권 인사들이나 대통령 측근들 에게 김성호 원장은 ‘우리 사람’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존재다. 몇 차례 보수적인 발언으로 당시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다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PK 출신의 노무현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선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 공천설이 오가다가 정부 출범과 함께 발탁된 것이 전부라는 식이다. 하물며 그 자리가 누구나 욕심낼 만한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고 보면, 질시 어린 시선의 배경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국정원 내부에서도 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0월1일 열린 국정원 원훈석(院訓石) 제막식. 직원 공모를 통해 새 원훈을 만든 김성호 원장은 이를 새긴 대형 기념석을 내곡동 청사 중앙현관 앞에 설치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1998년 원훈을 교체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연설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국회 정보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참석한 ‘조촐한 규모’였다. 5월 초 국정원을 방문해 전 직원이 선서한 ‘정치중립 선언문’을 제출받기도 했던 이 대통령의 ‘심기’가 여름을 거치며 변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흘러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 초순 국회 주변에서는 전·현직 한나라당 의원 등 두세 사람이 하마평에 올랐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국정원에 욕심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자가 발전’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몇몇 인사의 경우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러한 여권의 분위기를 김성호 원장이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음을 감안하면 9월10일 정보위 보고가 ‘대외 과시용’이라는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익명 게시판에서의 논쟁

    분명한 것은 이 무렵 여권과 청와대에서 김 원장의 조직 장악력에 대해 의문을 가질 만한 사건이 실제로 몇 차례 있었다는 사실이다. 6월 초순 촛불집회 현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주간지 ‘시사IN’이 ‘국정원 직원이 말했다 “이건 시민혁명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일 같은 경우다. “국민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데 정부는 10년 전 시스템만 추억하고 있다”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한 인용 내용은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정원 관계부서에서는 익명으로 처리된 이 직원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고, 전 직원에게 ‘업무상 관련이 없는 직원은 촛불집회장에 가지 말라’는 엄중한 지시 회람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결국 인터뷰 당사자로 확인된 직원이 “현장 근처에서 잡담 도중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한 말이 인용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별도의 징계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 직원은 “당시 돌아가는 상황이 섣불리 징계를 거론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무렵 국정원 내부망 자유게시판에는 촛불집회의 성격과 정부의 대응 방향에 대한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그 가운데는 집회 참가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거나 정부의 실책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 자유로운 발언이 허용되는 익명 내부게시판의 특성상 누가 글을 올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문체로 미루어 젊은 직원들인 것 같다는 중평이다. 한쪽에서는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TF가 구성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의 공안 대응에 비판적인 의견 글이 올라오는 이중적인 분위기였던 셈이다.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3월11일 국정원 전옥현 제1차장, 김회선 제2차장, 한기범 제3차장, 김주성 기조실장(왼쪽부터)이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기 위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게시판에서의 논쟁이 촛불집회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내정보 수집능력 강화나 적극적인 대공수사 등 최근의 국정원 방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이러한 분위기가 ‘정보기관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거나 ‘어렵게 얻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논지가 핵심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에 대해 ‘국가의 안정을 책임지는 정보기관의 마땅한 역할’이라는 반박도 있었다고 한다.

    ‘사활(死活)의 문제’

    국정원 직원들 중에는 이러한 논쟁이 단순히 ‘생각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최근 국정원의 행보로 운신의 폭이 엇갈리는 부서 직원들 사이의 ‘이해관계 차이’가 반영된 것 같다는 해석이다. 특히 국내문제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 대공수사국 등 이전 정부에서 ‘찬밥’ 신세였다. 새 정부 들어 힘을 받기 시작한 부서 직원들과, 반대로 수년간 ‘잘 나갔다가’ 열세에 몰린 부서 직원들 사이에는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강도 높은 조직 개편이 진행되는 와중이다 보니 문자 그대로 ‘사활(死活)의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9월 국정원은 ‘국-처(단)-과-계’로 이뤄진 기존의 조직구성 틀을 대폭 바꾼 개편을 단행했다. 국장 밑의 계통을 모두 팀으로 단일화한 이른바 ‘팀제 개편’이다. 기존에는 주로 3급이 맡던 처장을 없애는 대신, 5급 이상이라면 직급에 상관없이 팀장을 맡을 수 있고 팀장보다 상위직급도 팀원으로 발령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중간간부였던 과장과 계장이 모두 일반 팀원으로 일하게 되는 셈. 민간기업에서 주로 사용되다 최근 수년 사이 공조직에도 일부 보급되기 시작한 팀 중심 체제가 국정원 조직에도 반영된 셈이다.

    통상 연말에 실시되던 것을 앞당겨 9월초에 실시된 인사는 이 같은 조직개편을 반영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하급 팀장 - 상급 팀원’ 배치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각 팀 업무를 구체적으로 식별해 국으로 승격시키거나 통폐합할 팀들을 추려내는 미세조정 작업이 진행 중으로, 이 역시 10월 말이 되면 마무리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조직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구조조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이다. 3월 임명 당시부터 ‘국정원 개혁’을 임무로 부여 받았음을 자타가 공인했던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코오롱그룹 시절부터 수십년 인연을 맺은 ‘SD맨’. 외환위기 직후에는 코오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산하법인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일하며 ‘칼바람’을 휘날린 그가 이번에는 국정원 조직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셈이다.

    파트 하나 없애봐야…

    국정원은 9월 인사를 통해 대공수사·대북전략·정책·총무 등 4명의 본부 국장을 전격 경질했다. 연말인사를 3개월이나 앞당겨 실시한 것은 역시 촛불집회 정국과 금강산 피격사건에서의 정보 부재 등을 통해 제기된 청와대 일각과 여권의 비판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30여 명 수준인 부서장급 고위직의 60%를 물갈이했다는 3월 인사의 후속판인 셈이다. 이와 함께 매년 두 차례 실시되는 명예퇴직제도를 통해 상급 직원 상당수도 국정원을 떠났다.

    정권 출범 초기인 3~4월까지만 해도 국정원 내부에서는 ‘해외-국내-북한-기획조정’으로 나뉜 기존의 조직구분 자체를 바꾸는 작업도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3차장 산하인 북한파트를 아예 폐지하고 산하 부서들을 해외파트나 국내파트의 국실과 통합하는 그림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 같은 개편은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철회됐다는 후문이다. 조직도를 간소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실제로 줄어드는 인원은 3차장과 보좌관, 국장 몇 자리 정도라는 것이다.

    북한파트 폐지가 백지화된 일련의 사정은 국정원 조직 슬림화를 둘러싼 고민의 일단을 보여준다. 결국 슬림화란 인원을 줄이는 것으로 귀결될 텐데,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신분을 보호받는 직원들을 함부로 쳐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 실제로 예전 정부에서 해직됐던 직원들이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슬림화는 결국 부서장 직급 이상의 극소수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정원의 이른바 ‘유휴인력’ 문제는 이전부터 역대 수뇌부의 고민이었다. 시대와 상황변화에 따라 파트별·업무별 소요인력은 급변하지만 이에 대응해 직원 구성을 재편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점에 따라서는 이러한 인적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수백명 단위라는 내부 분석 결과가 나올 정도다. 재교육과 직무전환이 계속 추진됐지만 대다수 직원의 평가는 여전히 회의적이었고, 특히 그 주요 대상으로 지적돼온 국내파트 부서 직원들의 피해의식은 간단치 않은 수준이다.

    슬림화의 딜레마

    9월 인사를 앞두고 불거졌던 김회선 2차장과 김주성 기조실장 사이의 알력도 이와 관련이 깊다. 국내파트의 수장인 김 차장이 원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2급 간부를 국내파트 1급 국장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고위직급 줄이기’에 주력하고 있던 김 실장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것. 승진인사가 인센티브의 요체일 수밖에 없는 김 차장의 조직관리 논리와 고위직 비대화를 경계하는 김 실장의 조직개혁 논리가 맞부딪친 셈이다. 결국 해당 인사를 승진이 아닌 같은 급수의 지역 지부장으로 발령을 내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지만, 김 차장과 김 실장 사이의 대립은 감정적인 수준까지 번졌던 걸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원색적인 언사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정설이 됐을 정도다.

    특히 이 직원의 1급 승진이 애당초 원장의 뜻이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김성호 원장과 김주성 실장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김주성 실장이 민간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인이라면 김회선 차장은 사법고시 20회로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친 ‘공안통’ 출신이다. 경력으로 놓고 보면 역시 검찰에서 승승장구하며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김성호 원장과는 김회선 차장이 ‘코드’가 맞을 수밖에 없다.

    김 차장은 10월초 국정원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에게 “친북 좌익세력의 척결 없이 선진국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는 등 국정원 대공수사 강화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소신은 그가 관장하고 있는 국정원 국내파트가 최근 이적혐의단체 기소 등 대공수사 부분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에 대해 국정원 내부에서는 앞서의 조직논리를 적용해 해석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인원조정 대상으로 공공연히 거론돼온 대공수사국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포석의 의미가 있다는 것. 공안 분야에 오래 종사해온 본래의 신념에 청와대와 여권의주문, 국내파트의 수장으로서 휘하 조직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자의 입장이 두루 반영된 움직임이라는 관측이다.

    여름 이후 국정원이 국가정보원법, 테러방지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개정을 통해 직무범위를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 사안의 상당부분이 지난 정부에서 일부 제한됐던 국내파트의 업무임을 감안하면, 국정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김 원장과 교감을 이룬 김회선 차장이 사안을 주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오른쪽)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7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과 안보라인의 뒤늦은 대응을 질타하고 있다.

    사라진 명절 귀향버스

    반면 앞서 설명한 대로 ‘조직 슬림화’가 쉽지 않다 보니, 김주성 기조실장의 최근 행보는 조직 전체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향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국정원과 외곽조직을 포괄해 강도 높은 예산절감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국정원 내곡동 청사 지하 사우나실의 대형 욕탕에는 뜨거운 물이 사라졌다. 샤워면 충분한데 굳이 온수를 받아 종일 식힐 이유가 없다는 것. 층마다 서던 청사 엘리베이터가 격층 운행으로 조정되는가 하면, 지난 추석에는 명절 귀향버스 제도도 사라졌다. 줄줄이 이어지는 예산절감 방안에 대해 대부분의 직원은 “혈세를 아끼자는 데 할말이 없다”면서도 불만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 민감한 문제는 기조실이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는 직원들의 판공비 내역 확인작업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현장요원이 “정보기관의 특성상 누구를 만나 밥을 먹었는지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심하다”는 불만을 공공연히 토로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조실에서 원장 비서실의 판공비 내역까지 간여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김성호 원장과 김주성 실장 사이의 알력이 돈 문제로 번졌다는 시각까지 나왔다.

    김 원장과 김 차장이 한편을 이루고 이상득 의원 등 여권 핵심을 배경으로 하는 김주성 실장이 다른 한편을 이루는 ‘대립구도’가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에는 이러한 그간의 사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공무원 마인드와 기업인 마인드’로 갈리는 셈이다. 부하 직원들의 사기를 신경 써야 하는 김 원장이나 김 차장으로서는 기조실의 강도 높은 조직·예산 옥죄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당장 많은 고참 직원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기조실장에 대해 감정이 좋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심각한 것은 김성호 원장과 김주성 실장의 불편한 관계와 관련해 국정원의 고질적인 지역갈등 문제가 중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김 원장과 경북 봉화 출신으로 봉화고등학교를 나온 김 실장을 둘러싸고 이른바 ‘PK 대 TK’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부산 출신인 김만복 전 원장 시절 승승장구했던 PK출신 직원들이 김 원장의 고향을 거론하며 생존을 도모했고, 이에 맞서 TK출신 직원들은 이상득-김주성 라인을 거론하며 ‘인사운동’을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조실장이라는 자리

    조직의 수장과 차관급 핵심 간부가 대립선을 긋는다는 것은 다른 공직사회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정원 기조실장이라는 자리의 특성을 곰곰이 따져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조실장은 운영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직관리와 예산을 한 손에 쥐고 있다. 인사발령의 주요 원칙과 조직 운용의 기본방침이 기조실장에게서 나오고, 예산편성과 집행승인이 모두 기조실장의 책임하에 이뤄진다. 웬만한 사업은 기조실장의 허락 없이는 지출 승인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기조실장은 직원에 대한 감찰결과를 최종 확인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러한 국정원 기조실의 강력한 파워는 대통령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외부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국정원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영욕의 세월을 거쳐온 고참 직원들의 설명이다. 인사와 예산이 모두 공개되지 않는 까닭에 자칫 원장 한 사람의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으므로, 내부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 기조실장을 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정권은 청와대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는 인사들을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특히 정권 출범 후 첫 기조실장은 내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뽑는다는 취지에서 외부인사를 발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라호텔 상무와 삼성전관 전무를 거친 김기섭 초대 기조실장(김영삼 정부), 대통령의 야당시절 측근이었던 이강래 전 실장(김대중 정부), 후보 시절 대통령의 안보분야 참모 수장이었던 학자 출신의 서동만 전 실장(노무현 정부)이 그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권 첫 국정원장과 기조실장 사이의 알력이나 갈등은 비일비재했다. 최근 사례인 서동만 전 실장만 해도 고영구 당시 원장과 인사·조직 문제를 둘러싸고 관계가 크게 어긋나 결국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에 해당한다.

    최근 상황에 더욱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김주성 실장의 경우 첫 인연이 대통령 본인보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먼저 시작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으로부터도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고는 하지만, 현역 여당의원이자 정권의 핵심실세인 이 의원과의 관계가 먼저 부각된 케이스다. 반면 김 원장의 경우 상대적으로 여권이나 정권 핵심부와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김 실장에게 이들의 힘이나 뜻이 실린 것 같다는 관측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주성을 통한 국정원 컨트롤’인 셈이다.

    “외부 인사청탁 금지”의 숨은 뜻

    기조실의 강도 높은 행보와 인사를 둘러싼 뒷이야기들이 전에 비해 직원들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공식계선 이외의 존재가 그림자를 드리운 형국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PK 대 TK’ 같은 일련의 잡음이 국정원 요원들의 사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문가지다.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역대 정권의 첫 기조실장들. 왼쪽부터 김기섭(김영삼 정부), 이강래(김대중 정부), 서동만(노무현 정부).

    최근 이어지고 있는 보안사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핵심이나 대통령 측근 등 여권에 줄을 대는 방편으로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는 것.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과 관련해 많은 정보가 국회나 정치권을 통해 언론에 노출된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작용한 것 같다는 이야기다.

    9월 인사를 앞두고 국정원 수뇌부는 직원들에게 “절대로 인사문제를 외부에 청탁하지 말라”는 회람을 여러 차례 돌린 바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는 외부에 대한 인사청탁이 적지 않았고, 국정원 수뇌부가 이를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흔들리는 김성호 호(號)’의 한 단면이다.

    “원장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문제는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이 강화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리라는 사실이다. 정치권 인사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정보가 국정원에 많아질수록 이러한 연결고리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국회에 드나드는 국정원 담당요원이 증가했다는 최근 소식이나, BBK 사건 재판부에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진행사항을 물어본 사건 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최근 국정원 수뇌부와 여권 핵심이 지향하고 있는 역할 조정의 방향성이 장기적으로 국정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최근 일부 언론에 조만간 원장과 기조실장 가운데 한 사람은 교체될 것이라는 여의도발(發) 기사가 나오는 등 여권의 분위기는 이제 ‘뒷말’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연말 개각설과 맞물려 어떻게 현실화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최근 한 정부 고위관계자와 나눈 대화는 그에 관한 실마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실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국정원장이라는 자리는 그렇게 민감한 자리가 아니다. 다른 부처와 달리 국정원은 조직 전체가 대통령을 향해 서 있는 조직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원장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차장이나 국장을 불러다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이다.

    지난 정부만 해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한동안 원장, 차장을 제쳐두고 대북전략국장에게 임무를 맡기지 않았나. 대부분의 국정원장이 외부 출신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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