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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ㅣ글로벌 경제위기와 한국

한국경제의 대응

중대 갈림길… 경제체질 개선이 진정한 경기부양책

  •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jyj@seri.org

한국경제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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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의 주연과 조연

우리의 외환보유고 수준이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비율을 따져 볼 때 과거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외불균형이 심화되고 외화유동성 부족현상이 확대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때가 돼도 현 외환보유고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적 시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높은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물가수준을 보이는 경제를 ‘골디락스 경제’라고 한다. 고성장, 저물가에다 금상첨화로 경상수지 흑자까지 누리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표현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상황에서 ‘세 마녀’의 망령에 시달린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 세 마녀가 바다 건너 저편으로부터 날아왔다는 사실이다. 국내 문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면 그 원인을 캐내 수습책을 마련하면 되지만 우리의 통제 영역 바깥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해결책을 찾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직접적으로 글로벌 금융 불안에 의해 촉발됐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물경제 불안과 경상수지 적자 역시 글로벌 금융 불안의 연쇄적 상호작용에 기인한 것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달러가치가 급락하자 국제 자본은 원유 및 원자재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었다. 이는 물가불안으로 바로 연결됐으며 물가불안은 다시 소비심리 위축과 구매력 축소를 촉발해 종국에는 실물경기의 냉각을 가져왔다. 글로벌 금융 불안, 유가·원자재 가격 급등은 한편으로 대외불균형을 확대시켰고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파고가 높아가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대외 변수들의 향방에서 우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대외 경제환경이 개선된다면 한국 경제의 회복 가능성도 높아지겠지만, 빠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그만큼 한국 경제의 회복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핵심 요인은 글로벌 금융 부실 문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의 침체, 환율이나 유가와 같은 가격변수의 급변동 등 온갖 경제 불안의 핵심에는 서브프라임 부실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지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 넘치는 드라마가 각본도 없이 전개되고 있다. 드라마의 주연은 집값이 계속 오르리라는 환상 속에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 집을 구매한 미국의 주택 수요자와, 자격이 안 되는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창출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투자은행 등 금융기관들이다. 굳이 이 드라마의 조연을 든다면 주택시장에 거품이 형성될 조짐이 보였음에도 역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를 유지하다 뒤늦게 주택 버블 붕괴의 위험성을 깨닫고 금리를 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주택경기 냉각과 서브프라임 담보대출의 부실을 초래한 미국 FRB(연방준비위)가 될 것이다.

주택경기 호황에 힘입어 급증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저신용자에 대한 장기 주택담보대출)이 금리상승과 주택경기 둔화로 부실화되면서 촉발된 금융 불안은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의 연쇄 부실과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잇따른 부실화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메릴린치,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즈 등 세 군데 은행이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전 세계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부실로 입은 손해는 장부상 손실만 따져도 무려 5000억달러에 달한다.

‘끝의 시작’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적게는 5000억달러에서 많게는 1조달러 이상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외로 부실 규모가 확대되자 금융시장에는 일종의 패닉 현상이 빚어졌다. 금융기관 사이에 자금거래가 거의 중단되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많은 금융기관이 부실화되고 파산의 길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신용위기’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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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각본 없는 ‘금융위기’ 드라마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1920년대 말의 대공황처럼 전면적인 금융시스템 마비와 실물경제 위기라는 대파국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1980년대 말의 미 저축대부조합(S&L) 부실처럼 피해가 결코 작지 않지만 시스템의 붕괴까지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원 부결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통과된 미국의 ‘긴급 경제안정화법안’(일명 구제금융법)은 일단 금융시스템의 파국을 방지하는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700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자원을 투입해 정부가 금융시장이 보유한 부실금융자산을 사들인다는 이번 조치는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족 및 신용경색 현상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의 상실로 거래가 실종된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을 정부가 매입함으로써 시장가격을 형성시키고 자산가치의 급락을 방지해 향후 손실 규모가 확대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부실을 떨어낸 금융기관들은 외부자금 수혈 등 자본 확충을 통해 회생책을 강구할 수도 있으며, 부실이 정리된 상태라면 인수합병 등 금융기관의 구조조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 조치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부실규모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 규모가 충분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조치는 금융기관의 손실을 직접적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금융기관들이 추가로 파산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르면 11월부터 정부가 부실자산을 매입하게 되는데, 자산 가격 산정을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되며 그 효과가 본격화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현 상황은 위기의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beginning of end)’이다. 터널 끝 희미한 빛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 어둠 깊은 곳에 머물러 있고 그 끝으로 가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다. 물론 위기가 완전하게 해소되는 시점을 지금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적어도 1~2년 동안은 불안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 금융 불안의 첫 출발점이 주택경기 둔화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임을 상기해본다면, 미국의 주택 경기가 다시 회복돼야 금융 부실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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