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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으로 풀어본 ‘위기 이후 국제질서’

저무는 ‘팍스 아메리카나’ 떠오르는 ‘샹들리에 체제’

  • 문정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cimoon@yonsei.ac.kr

정치경제학으로 풀어본 ‘위기 이후 국제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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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세 가지 효과

다시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의 실패’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애덤 스미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장지상주의는 금융거래든 상품거래든 ‘보이지 않는 손(가격기능)’에 의해 조정이 이뤄져 평형(equilibrium)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해왔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자유방임사상(laissez-faire)이 등장해 ‘야경국가’ 등 국가 역할의 최소화를 주장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시장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모두가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거래행위가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리스크 관리의 실패인 셈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법에 현재 위기를 대입해 풀어보면 이 리스크 관리 실패의 핵심이 무엇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우선 미국 금융업계가 자신들의 수리모델이나 계량방법론을 과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무시했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이다. 1+1이 단순히 2가 아니라 5, 6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위기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첫째 이유다. 둘째는 지연효과 또는 복잡계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나비효과다. 지금 벌어진 일이 즉각적으로는 큰 영향이 나타나지 않아도 나중에 엄청난 폭풍이 되어 밀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턱(threshold) 효과다. 어떤 패턴, 특히 수학적 파생의 연쇄고리로 순환 연결돼 있는 패턴은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갑자기 그 증가세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정치경제학으로 풀어본 ‘위기 이후 국제질서’

10월3일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뒤 낸시 펠로시(왼쪽 아래) 미 하원의장이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1월 조지 소로스의 예언



모기지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무엇이 나쁘겠는가. 그러나 갑자기 주택시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자 이 두 요소가 결합해 그 파생상품의 연쇄고리에 얽혀 있는 세계 곳곳의 평범한 투자자들을 울리는 거대한 폭풍으로 돌변했다. 이건 시장의 실패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현재 상황을 두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관론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연사로 참석했을 때 필자가 만난 조지 소로스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를 “탐욕(greed)”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도 헤지펀드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텐데, 최근 투자은행의 행태를 보자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놀라게 된다는 얘기였다. 조만간 엄청난 후과(後果)가 있으리라고, 연초의 상황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는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그 예언은 놀랄 만큼 잘 들어맞아 이제 현실이 되었다.

탐욕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사모펀드 자산 운영자가 기업 인수합병 한 건을 성공하면 총 거래액의 20%를 수수료로 챙긴다고 한다. 100억달러짜리 ‘딜(deal)’ 이면 20억달러를 버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탐욕이 또 어디 있는가. 이쯤 되면 이것은 시장이 아니라 야바위판이고 도박판이다. MBA를 졸업해 겨우 3~4년 일했다는 사람들의 연봉이 100만달러를 헤아리고, 거기에 또 수백만달러의 보너스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미친 듯이 파생펀드를 만들어 ‘어떻게 하면 한탕 먹고 튀어볼까’만을 궁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시장의 실패는 시장 시스템의 실패이자 리스크 분석의 실패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탐욕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근본 명제부터 잘못됐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욕망이 절제와 중용의 선을 넘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계속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고 막대한 돈이 그 이어지는 파생상품의 연쇄고리 위를 돌고 도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면서 현재의 위기가 배태됐기 때문이다.

시장의 실패와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국가의 실패’다. 이는 관리감독 혹은 규제의 실패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국가는 그렇듯 무기력했는가. 왜 국가는 뻔히 보이는 위기마저 막아낼 수 없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뿌리는 결국 1980년대 이후 주요 국가들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1970년대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많은 이가 앞 다투어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나섰다. 케인스주의 성향의 경제정책 때문에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본령이 오염됐고 그 때문에 시장이 활력을 잃어 침체에 빠졌다는 비난이었다. 큰 정부, 과도한 정책개입과 규제, 생산수단의 공공화가 악(惡)으로 지탄받는 반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노믹스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공급자 위주의 경제정책, 공기업 민영화, 복지지출 감축, 탈규제, 투자자에 대한 대규모 감세정책과 이를 통한 재투자 유인 등이 지고의 선(善)으로 칭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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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cimo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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