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TO는 러시아의 2007년 유럽재래식무기(CFE) 감축조약 이행중지 선언 이후 이에 대한 지속적인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루지야 주둔 군대에 전력을 쏟아 부으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러시아 지도부는 오히려 NATO의 세력 확장을 CFE 이행중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강력한 동맹이 러시아 국경 주변에서 세력 확장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MD와 START-1
CFE조약은 복잡한 미·러 간 군비통제 문제의 일단에 불과하다. 양국 지도부의 최대 관심사는 NATO의 동유럽 MD구축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갱신이다.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부를 배치한다는 계획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수년에 걸친 외교적 난항 끝에 일련의 저지 대책을 내놓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발표는 오바마 행정부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파워게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스칸데르 배치 계획은 그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오바마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체제에 미온적일 때만 소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사일 방어체제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에 한해 배치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전략미사일군 니콜라이 솔로프초프 사령관은 신형 다탄두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RS-24를 내년에 실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MD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는 반면, 미국은 올해 12월 만료되는 START-1 갱신에 주력하고 있다. 1991년 체결된 START-1은 미·러 양국이 배치 중인 전략 핵탄두를 각각 1600개 수준까지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START-2는 미국의 1972년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탈퇴로 발효되지 못했다.
이후 양국은 2003년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모스크바협정)을 맺고 배치 중인 전략 핵탄두를 1700~2200개 수준까지 감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의 고민은 실질적인 운반수단(delivery vehicles) 확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비전통적 적대세력(테러리스트·불량국가)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재래식 탄두로 무장 가능한 중폭격기, 잠수함,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의 무제한 배치를 원하고 있다.
START-1 만료일이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미 행정부는 새로운 협정 체결에 대한 의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유임의사를 타전받기 전인 지난해 10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운반수단이 아닌) 탄두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새로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유연성을 확보한 새 핵무기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할 것을 건의했다. 미 국무부는 ABM 체제와 START-1 조약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11월과 12월 모스크바에 협상대표단을 파견했다. 루가 상원의원은 12월 모스크바 방문에서 START 대체협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를 만나 협정체결을 조속히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 지도부는 군비통제 문제를 오바마 행정부와 협상하기 위해 새 정부 출범을 기다려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번즈 미 국무차관과 루드 국무부 군축담당관의 모스크바 방문은 성과 없이 끝났다. 이들은 미국이 동유럽 MD 계획을 재고한다면 START 대체협정 체결에 러시아가 협조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보고했다. MD 배치가 계획된 폴란드와 체코 현장에 러시아 전문가 파견을 허가해달라는 요청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러시아가 이란에 S-300을 포함한 지대공 미사일을 판매했다는 12월23일자 발표가 나오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S-300은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신예 방공체제로 이란의 공중 방어능력을 크게 개선시켜 전투기를 이용한 이란 핵 시설 공격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즉각 러시아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러시아 측은 확인도 부인도 안 하고 있다.
적의 이웃과 친구하기
파키스탄 육로를 통해 아프간 주둔 NATO군을 지원하는 문제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 아프간 주둔 5만여 NATO군은 군수품의 80% 이상을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항에 하역한 후 트럭으로 북서부의 페샤와르를 거쳐 카이버 패스를 잇는 보급로를 통해 조달해왔다. 그러나 지난 12월 무장세력이 페샤와르 인근 화물 집결소를 이틀에 걸쳐 습격, 군수품 수송차량 260대를 불태우자 파키스탄 당국이 카이버 패스를 봉쇄했다. 올해 미국의 2만명 증파 계획으로 안전한 보급로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으나 최근 파키스탄과 아프간 접경 보급로에 대한 무장 세력의 기습공격이 이어지고 있어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곳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이룬 지역이다.
아프간의 폭력상황과 파키스탄 정부의 무력한 대응으로 NATO와 미국은 새로운 보급로를 물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파키스탄의 정치적 혼란 지속, 인도·파키스탄 전쟁, 기타 예기치 못한 상황의 발생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중앙아시아에서 아프간 북부로 넘어가는 보급로가 유력한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