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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죠, 벨기에나 네덜란드에서 뛰고 싶어요”

  • 최용석│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gtyong@donga.com│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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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성용이 웃통을 벗었다. 3월7일 K-리그 개막전에서다. 카메라 플래시를 받은 조각 몸매가 팬을 몸 달게 했다. 술, 담배는 절대 안 한다. 여자도 귀찮다. 한국 축구의 중원을 평정한 이 젊은 별은 당최 쉴 줄을 몰랐다.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2002년 한국 축구는 역사에 남을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뤘다. 4강의 주역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도르트문트), 차두리(코블렌츠), 설기현(알 힐랄), 송종국(수원), 이을용(강원), 이천수(전남) 등 태극전사는 월드컵 프리미엄을 타고 해외무대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2003년부터 한국축구는 하락세를 걸었고, 아시아에서도 고전하는 팀으로 전락했다. 박주영(AS모나코) 이외에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지 못하면서 월드컵 프리미엄을 이어가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던 2008년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 기성용과 이청용(이상 서울). 이들 스타의 등장으로 한국 축구는 다시 주목받았다. 특히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기성용은 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20세의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기술 축구를 뽐내는 기성용은 박지성과 비교될 만큼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다. 기성용을 빼놓고는 축구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기성용은 2006년까지 평범한 선수였다. 또래들과 함께 소속팀 2군에서 생활하면서 1군으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며 볼을 찼다. 2006년 서울에 입단한 그는 단 한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17세로 나이도 어렸지만 선배들의 높은 벽을 넘기가 버거웠다.

기성용, 귀네슈를 만나다

어린 시절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터라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몇 축구 관계자밖에 없었다. 185cm의 장신에 75kg의 호리호리한 선수였을 뿐이다.



2군에서 힘들게 생활하던 그에게 2007년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은 이장수 감독을 내보내고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에 올려놓은 세계적 명장 세뇰 귀네슈 감독을 영입했다. 귀네슈 감독과의 만남은 기성용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았다. 귀네슈 감독은 예쁘게 볼을 차는 기성용에게 반했다. 그는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에서 기성용에게 1군에서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귀네슈 감독을 보좌한 이영진 서울 코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귀네슈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모든 선수를 다시 테스트했습니다. 특히 기성용의 신체조건과 볼을 차는 기술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단지 경험이 문제였는데요. 귀네슈 감독은 과감하게 성용이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18세의 어린 녀석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2007년 기성용은 꾸준하게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경험 부족 탓에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8세의 어린 선수에게 K리그 1군 무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이을용처럼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하는 것도 힘겨웠다.

“2007년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K리그에 데뷔한 뒤 한 단계 도약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1년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1년을 1군에서 뛰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걸 배웠거든요. 2007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기성용의 말처럼 그의 등장은 K리그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18세의 기성용은 화려한 기술 축구로 다른 구단의 베테랑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면서 서서히 팬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여름 서울에서 열린 서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기성용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기성용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맞서 기죽지 않고 좋은 플레이를 펼쳐 극찬을 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계적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기성용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기성용은 고무됐다. 박지성 이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가능성이 있는 선수가 K리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에서는 큰 뉴스가 됐다. 이 뉴스는 유럽에도 전해졌다. 아쉽게도 실제로 테스트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기성용의 이름이 유럽에도 알려지게 됐다.

큰 기대가 모아졌지만 기성용은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18세의 어린 선수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성공보다는 좌절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K리그에서는 팀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확실한 주전도 아니었다. 기성용은 체력적으로도 약점을 드러냈다.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20세 이하 FIFA 월드컵에 대표로 선발돼 참가했지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맛을 봐야 했다. 포지션도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수로 변신해 참가하면서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솔직히 2007년에는 팀에서도 확실한 주전이 아니었어요. 을용이 형 백업 멤버였죠. 세계대회에 나가서도 내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미난 사실 하나는 기성용이 2007년 K리그에서 22경기를 뛰었지만 단 하나의 골도,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는 점이다. 그만큼 K리그는 18세의 어린 선수에게는 녹록지 않은 무대였다. 그러나 18세의 어린 선수가 K리그에서 빅4로 불리는 서울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한국축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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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석│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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