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죠, 벨기에나 네덜란드에서 뛰고 싶어요”

  • 최용석│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gtyong@donga.com│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2/3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용(龍)이 된 2008년

알에서 막 깨어난 후 1년간 힘든 시기를 보낸 기성용은 2008년을 최고의 해로 만든다. 소속팀에서는 확실한 주전으로 도약했고, 각급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뛰어난 그의 기술에 매료돼 연신 러브콜을 보냈다. 19세의 그는 성인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도 맛본다. 자신이 동경하던 선배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솔직히 대표팀에 처음 뽑혔을 때는 출전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할 것 같았어요. 대표팀엔 좋은 선수들만 모이잖아요. 그래도 자신은 있었어요. 경쟁에서 한번 이겨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경기도 뛰고 골도 넣었으니까요. 선배들이 칭찬해준 것도 큰 힘이 됐어요.”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도 참가했으며 월드컵 예선 북한전에서 귀중한 동점골을 뽑아내며 말 그대로 ‘벼락 스타’가 됐다. 북한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며 0-1로 끌려가던 후반 23분 발리슛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몸 뒤에서 넘어오는 볼을 가슴으로 트래핑해 발리 슈팅으로 연결하는 플레이에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기성용은 A매치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보다 K리그에서 데뷔골을 넣은 것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다.

“올림픽에서 좌절을 맛보고 돌아온 직후 K리그 경기를 뛰었어요. 지난해 8월23일로 기억하는데 대구와의 원정경기였습니다. 원래 을용이 형이 출전하기로 돼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제가 갑자기 뛰게 됐어요. 준비를 하나도 못했는데 K리그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이후 기성용은 8월30일 광주와의 홈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며 2경기 연속골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10월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도 득점포를 쏘아 올리며 A매치에서도 ‘연속골’ 징크스를 이어갔다.

“좋은 징크스잖아요.(웃음) 크게 골 욕심을 낸다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북한전 골은 상대 골키퍼가 조금 도와준 것 같기도 하고요. 팀에 보탬이 되는 좋은 골을 넣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워요.”

기성용은 대표팀에서 연거푸 골을 넣은 뒤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떠올랐다. ‘한국의 제라드’(스티븐 제라드는 잉글랜드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그가 움직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많은 팬이 모여들었다. 훌륭한 신체조건에 곱상한 외모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FC서울 구단이 인기를 통제하기 힘들 만큼 최고의 별로 떠오른 것이다. 서울을 K리그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려놓은 그는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는 등 상복까지 따랐다.

축구밖에 모르는 아이

“2008년의 시작은 안 좋았어요.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올림픽 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대표팀에 선발되고, K리그 경기와 A매치에서 골을 넣었고, 상도 받았어요.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마무리가 좋았던 한 해라서 뜻 깊었어요. 좋은 선생님, 동료들과 재미있게 보낸 한 해라서 더 기뻐요.”

기성용이 어린 나이에 성공한 비결은 축구에 대한 열정과 엄청난 몰입에 있다. 축구 감독을 했던 아버지 기영옥(전 광양제철고 감독)씨의 영향으로 그는 항상 축구와 함께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면 다른 감독님들이 용돈도 주시고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자주 쫓아다니면서 축구도 하고, 경기도 보고 그랬어요. 그 덕분에 축구가 생활이 돼버렸어요.”

축구 감독을 한 아버지 덕분에 축구공과 함께 자란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기영옥씨는 미래를 내다보고 축구뿐 아니라 영어도 익힐 수 있는 호주로 아들을 유학 보냈다. 당시는 브라질이나 영국 등 축구 선진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기영옥씨는 다른 선택을 했다.

“호주에 가라고 하실 때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갔어요. 호주에 가서 보니까 축구를 하는 시간이 한국에 비해 훨씬 짧았어요. 여러 가지로 이해하기 힘들었고, 적응하기도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죠. 그런데 되돌아보니 공을 차면서 영어도 배우고, 견문을 넓힌 게 지금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호주에서 축구를 배우면서 영국에 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의 유소년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는 경험도 했다. 호주는 영국과 축구 교류가 활발하고, 호주 출신 선수들은 잉글랜드 등 유럽 무대에 대거 진출해 있다. 그렇다 보니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잉글랜드에 가서 경기하는데 결과적으로 지긴 했지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또래들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기술, 체력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하루빨리 유럽으로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낀 기성용은 이후 유럽선수들과 대응하기 위해 개인연습에 몰두한다. 지금도 소속팀 훈련이 끝난 뒤 야간에도 그라운드에 나와 개인 훈련을 하며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단기간에 2군 생활을 청산하고, K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서울의 최용수 코치는 노력 면에서는 기성용을 따라갈 선수가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굳이 성용이와 (이)청용이를 비교하면 노력과 천재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청용이는 몸 밸런스나 볼을 차는 게 타고났어요. 반면 성용이는 꾸준한 노력으로 지금까지 성장한 선수예요. 하루는 밤늦게 훈련장 옆을 지나가는데 성용이가 개인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개인 연습을 꾸준하게 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런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성용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고, 어린 선수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3
최용석│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gtyong@donga.com│
목록 닫기

한국 축구 새 아이콘 기성용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