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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비자금사건’ 수사 관계자 증언

“청와대 수석·장관들 ‘뇌물 정황’ 나오자 덮어”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한보 비자금사건’ 수사 관계자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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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비자금사건’ 수사 관계자 증언

1997년 2월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한보사건 수사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홍인길 의원은 처음에는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점을 부인했다고 한다. 임씨는 이런 홍 의원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정 총회장의 운전기사인 임씨는 “홍 의원의 운전기사인 곽모씨를 만났다, 곽씨와 함께 현금이 든 사과상자를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검찰이 이 진술서를 들이대자 홍 의원은 한동안 할 말을 잊은 듯 침묵하다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수사 관계자는 “임씨를 맡게 된 수사관이 임씨를 의심한 것이 적중했다”고 설명한다.

“임씨를 맡은 수사관은 ‘정태수 총회장은 현찰로 뇌물을 주는 스타일이다. 5000만원은 쇼핑백, 1억원은 골프가방, 2억원은 사과상자에 들어간다. 적지 않은 무게다. 74세의 고령인 정 총회장이 그런 무거운 걸 직접 들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을 만한 측근에게 시켰을 거다. 보안 때문에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에게 몰아서 심부름을 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임씨는 운전을 하면서 정 총회장의 통화를 다 듣게 된다. 어차피 정 총회장의 이런저런 비밀을 공유하는 위치다. 정 총회장은 운전기사 임씨를 의전담당 상무로 임명했다. 파격적이다. 운전을 잘해서가 아니라 입이 무겁기 때문에 정 총회장의 눈에 든 것이다. 운전기사가 돈 심부름을 도맡았을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배달 장소와 집 주소 비교”

수사 관계자는 “당시 임씨는 자신은 무관하다며 버텼다. 이틀 간 강도 높게 추궁했다. 차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검찰에선 임씨의 진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누구에게 상자를 전달했는지는 말 안 해도 된다. 상자를 건네준 곳의 위치만 말하면 된다’고 한 것이다. 임씨는 수사에 협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보 비자금사건’ 수사 관계자 증언

1997년 당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보그룹 사옥.

검찰 측은 대형 서울시내 지도를 펼쳐 놓고 임씨에게 상자를 건네 준 곳들을 찍어보라고 했다. 임씨는 ○○동 ○○아파트, △△동 △△아파트 등 비교적 구체적으로 10여 곳의 장소를 특정했다고 한다. 검찰 측은 전현직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 전현직 장·차관, 전현직 은행장의 주소록을 구해 임씨가 지목한 장소와 이들의 주소가 일치하는지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은행장 등 몇명은 정태수 총회장의 돈을 받은 혐의가 확인돼 당시 검찰 수사발표내용에 포함됐다고 한다.



수사 관계자는 “추가적인 조사결과 청와대 수석, 장관 등 현직 고위공직자 여러 명에게 정태수 총회장의 사과상자가 전달된 정황이 나왔다”고 했다. 이후 임씨를 조사해오던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서 배제됐다고 한다. 검찰은 임씨에게 수사관 두 명을 붙여 임씨와 24시간 함께 있도록 했다.

수사 관계자는 “수석, 장관 등 현직 고위 공무원 여러 명도 받았다는 진술이 외부에 알려져 언론에 보도라도 될 경우 큰일이었다. 한보비리의 몸통은 YS정부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씨가 언론 등 외부와 접촉할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수사관을 보내 임씨를 특별관리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임씨 특별관리는 정태수 총회장을 기소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수일간 계속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국회의원들과 은행장들이 돈 받은 사실은 공개됐지만 현직 고위 공직자는 거의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997년 2월12일자에서 임씨가 홍인길 의원과 관련된 내용 외에 또다른 사과상자와 관련된 진술을 했다는 정황을 보도한 바 있다.

수사 관계자의 주장에 대해 당시 대검 중수부 고위 인사의 주장을 들어봤다. 이 인사는 ‘신동아’에 “당시 정태수 총회장의 운전기사 임모씨는 2억원인가를 상자에 넣어 여러 사람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검찰이 정 총회장을 기소할 때까지 수사관들을 임씨에게 보내 임씨를 특별관리 했나”라는 질문에 “아마 그랬겠지”라고 답했다.

“수석, 장관 등 여러 현직 고위공직자가 정 총회장의 상자를 받았다는 정황이 밖으로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특별 관리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인사는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 운전기사를 특별관리 한 것으로 기억한다”라는 석연치 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임씨를 검찰이 수일간 특별 관리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 조사할 내용이 있으면 검찰로 불러 조사하면 되는 것이다. 수사 목적에서 수사관들을 임씨 옆에 수일간 계속 붙여두어 늘 함께 행동하도록 했다는 건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석연치 않은 해명

“당시 검찰에서 수석, 장관 등 여러 현직 고위공직자가 상자를 받았다는 정황을 확인했다고 한다”고 다시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자 당시 대검 중수부 고위 인사는 “총무수석이 홍인길씨 아닌가”라고 답했다. “홍인길씨는 전 총무수석이었다. 당시 현 수석에게도 상자가 전달됐다고 한다”고 하자 그는 “청와대 살림살이 하는 총무수석, 그때 홍인길씨가 맞다”고 했다.

홍인길씨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총무수석을 역임했으며 한보사건 수사로 구속될 때는 국회의원이었다. 당시 중수부 고위 인사는 “운전기사의 진술로 여러 명을 구속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 중에는 틀린 것도 많았다. 현직 관료도 들어가야 하는데, 1명이라도 찾으려고 했는데 안 나왔다”고 말을 맺었다.

신동아 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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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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