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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남북관계 파행은 ‘인간미(人間味) 결핍’ 탓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남북관계 파행은 ‘인간미(人間味) 결핍’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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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파행은 ‘인간미(人間味) 결핍’ 탓

금강산 육로 관광로.

아규먼트(argument·논쟁 또는 논증). 이 지(知)적 어둠으로의 도전은 역사 발전과 공익 증대의 원동력이었다. 논란의 여지없는 완전무결한 입증이란 기존 지식의 ‘동어반복’이거나 ‘자기복제’에 불과할 수 있다. 앎의 확장은 독창적 주장을 그럴듯한 정황과 논리로 ‘완벽하진 않지만 타당성 있게’ 입증하는 ‘논쟁적 나아감’을 통해 획득된다. 이는 팩트(facts)와 논평의 결합이며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다. 이 논증의 바다에 던질 두 번째 소재는 ‘남북문제’다.

케이블TV ‘쿠키미디어’의 권기식 부사장은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한겨레’ 기자를 그만둔 뒤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는 ‘국정상황실’을 설치했다. 부서명도 직접 작명했다. “각종 국가 현안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정확하게 대응한다”는 취지다. 그날그날 보고받아 결정하는 언론사‘편집국 데스크’의 기동성을 청와대에 이식해본 것이다.

그는 국정상황실에서 정치상황국장을 맡았다. 국내외 현안, 남북문제 관련 고급 정보가 매일 그에게 보고됐다. 권기식 국장-장성민 국정상황실장-김대중 대통령의 직보(直報) 체제도 구축됐다. 그는 이 자리를 4년 역임했다. 정권 내에는 여러 의사결정 구조가 존재한다. 장성민-권기식 라인은 “이념 문제에 유연한 실리추구형”이라는 게 당시 여권의 대체적 평가였다고 한다.

“남북관계 모순 인정해야”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국정 경험과 정치 감각을 겸비한 실전용 참모’가 필요했다. ‘권기식’은 상품 가치가 있었다. 요직인 대선후보 비서실 부실장에 임명됐다. 12월 대선 승리 후 그는 ‘청와대 국정상황실 개편안’을 노무현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한 측근이 임의로 이 보고서를 노 당선인의 오른팔 이광재 현 의원에게 갖다줬다고 한다. 이것이 이광재 의원이 국정상황실장 자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라고 한다. 외부 접근이 차단된 권부 핵심층에서 일어난 일이니 이렇게 추정될 뿐이다. 어쨌든 이후 권기식-이광재의 인사 대립구도가 형성됐고 그 갈등은 이광재 의원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차지하면서 종결됐다. 여권 내 ‘구(舊)집권층’에서 ‘신진 386측근’으로 향하는 권력이동의 서곡이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권씨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한양대 국제대학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부교수를 거쳐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4년간 한반도 정보를 주물러온 이 대북 전문가는 민간 전문가나 각료, 정치인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편하게 만난 자리에서 “요즘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군사충돌 가능성도 높아졌다. 원인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인간미(人間味)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의 배경설명은 이렇다.

“남북관계는 근본적으로 모순관계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는 주적(主敵)이면서 통일과 번영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동족이다.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은 독재정권인 김정일 체제를 도와주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만약 지원을 끊으면 북한은 중국에 예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순되는 이런 두 면 중 어느 한 면만 보려 하면 대북정책은 실패한다. 원칙, 단호함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동시에 리스크가 증대되지 않도록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 가난하고 사고를 자주 치는 형제가 용돈 달라고 찾아오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 계속 못 본 체하면 불화는 커지고 그 형제는 홧김에 화염병이라도 던져 집안을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다. 한국은 남북관계의 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은 싫든 좋든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 관계’다. 싸울 부분은 싸우더라도 인도적인 부분은 도와주면서 ‘인간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대에 오르지 않는 배우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대북정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단절, 후퇴, 긴장, 충돌의 연속이다. 한국에서 정권이 보여주어야 할 양대 퍼포먼스는 ‘한반도 문제’와 ‘경제 문제’다. 그런데 막이 오른 뒤 전체 공연시간의 5분의 1이 지나갔는데도 배우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지켜보는 관객은 답답하다. ‘남북문제는 정권의 관심 밖인가’라고 웅성거릴 만도 하다.

올 들어 북한은 대남 전면대결태세 선언(1월17일), 남북한 합의사항 무효화(1월30일), NLL 인근 해안포 사격훈련(2월24일),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 시사(2월24일), 개성공단 육로통행 차단(3월13일) 등 긴장을 한껏 고조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북핵 폐기를 위한 진통”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북측이 원인을 제공 한 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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