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인류는 서로 다른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도 어떤 공통의 역사를 공유해온 셈이다. 특히 필요한 물건을 ‘획득’한다는 것은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행위였다. 야생 상태에서 혹은 농경을 통해 얻거나, 때로는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쟁취했다. 물건의 단순 소통은 시장에서 화폐와 재화가 교환되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화폐를 통한 물건획득, 즉 쇼핑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쇼핑은 나아가 쇼핑객들이 새로운 문화나 그동안 잘 몰랐던 것에 눈뜨게 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직도 많은 남성은 쇼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대적인 추세는 남자들에게도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과 물건들을 직접 획득하도록 자연스럽게 권장하고 있다. 지구의 인구 반을 차지하는 남성에게도 쇼핑은 감성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진지한 게임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
옷은 실제로 역사책 다음으로 인간의 역사와 감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고증자료다. 복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복이 현대적으로 정돈되고 발전한 시점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취향을 가졌던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절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오히려 남성의 의복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여성보다 더욱 다양하고 화려했기 때문에 루이 14세라는 ‘절대 남성’의 옷이 모든 여성복과 액세서리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의 수많은 명품 브랜드와 여성복은 럭셔리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가진 태양왕과 그를 둘러싼 귀족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에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성격이 까다롭고 남다른 것을 추구하는 프랑스인의 취향이 반영된 여성복은 항상 디자인과 실루엣, 소재와 디테일 등을 변화시키는 데 능숙한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실제 여성의 감성과 잘 부합해서 여성을 위한 브랜드 수는 그 폭과 깊이가 더욱 다양하게 분화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의 남성 패션을 대표하는 복식인 슈트나 재킷은 프랑스보다는 조금 더 보수적인 영국식 귀족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19세기 사람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현대인의 복장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여성의 옷차림은 과거와 현재에 공유점이 없을 만큼 그 변화가 드라마틱했고 시대적 격차도 컸다. 그러나 근대 영국 신사들의 옷차림과 현재 남성의 옷차림을 보면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놀랍게도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 근대나 현대 모두 남자들은 대표적으로 슈트를 입고 있으며, 그 슈트에는 항상 셔츠와 타이, 그리고 벨트와 구두가 변함없이 함께한다. 물론 소재나 디테일에서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백년의 시간차를 두고서도 남자의 대표적인 룩이 같다는 것은 아마도 슈트를 창조한 영국인의 성향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리지널에 대한 무한의 존중, 법칙을 세우기 좋아하고 그 법칙을 준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는 영국인의 사고방식은 이처럼 남성복을 입는 방식에도 투영돼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남다르게 연출하기 위해 소유한 아이템이 많을수록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반면 남자들은 여러 벌의 옷보다는 한 벌이라도 제대로 된 것, 그리고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품질 좋은 슈트를 한 벌 갖는 방향으로 문화가 형성됐다.
“남자들이여, 쇼핑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오랫동안 남자의 멋 부리기는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행위였다. 남자의 매력은 그의 지위나 이룩해낸 업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관습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시대는 달라지고 있으며, 남자다움에 대한 인식도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남자들이 화장품을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성형외과를 다니며 자신을 가꾼다는 것만으로 시대적인 변화를 감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과 같은 전통적인 남성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의 쇼핑 습관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쇼핑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만 했던 남자들이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선택 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거대한 혁명’이 아닐까. 물론 스킨케어에 수입의 상당부분을 지출하고 백화점 명품관을 순례하면서 모든 유명 브랜드를 줄줄이 꿰는 일부 남성을 제외한다면, 아직 ‘보통 한국남자’들은 옷차림과 쇼핑에 큰 자신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옷을 입는 방법에 대해서 도무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내나 여자친구(때로는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 데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며, 셋째는 옷과 자신의 궁합을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매장 직원들이 권하는 옷을 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