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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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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사회에서 40세는 ‘제2의 사춘기’로 불린다. 청장년에서 중년의 시기로 넘어가는 시점, 젊음을 보내고 늙음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 자기가 살아온 길의 결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는 시점, 이 시점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을 추슬러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앞으로 나가게 된다. 이는 에릭슨이란 심리학자가 말한 ‘생산성이냐 아니면 정체냐’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제4의 분리-개별화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을 거세당한 남성들의 비극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했다. 이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성으로 길러진다. 넘어져서 울려고 하면 어느 새 어른이 달려와서 털어주며 말한다. “뚝, 남자가 이런 것 갖고 울면 안 되지. 그건 계집애나 하는 짓이지.” 밖에서 친구들과 싸우다 분해서 울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내자식이 어디서 맞고 들어와서 울어! 맞지 말고 가서 때려!” 밤에 화장실 가기 무서워해도 또 ‘사내자식’을 들먹인다. 여자애들과 곰살갑게 소꿉장난을 하고 놀면 당장 듣는 말이 “고추 떨어진다”다. 남자는 강해야 하고, 울면 안 되고, 무서워해서도 안 되고 곰살가워도 안 된다. 이런 위협과 인격적 모욕을 받으며 성장한 남자들은 당연히 감정을 느끼는 일과 표현하는 일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특히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지역에 유교의 영향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가부장적이며 남성 우월주의의 분위기에서 사내아이를 키우고, 또 아이의 감정을 극도로 억압시킨 결과다. 집에 들어와서 고작 세 마디 말밖에 안 한다는 경상도 남편에 대한 우스갯소리도 결국은 감정을 거세당한 남자들의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공중화장실을 가면 남자 변기 앞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한다. 나야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세상에 소변을 볼 때조차 울면 안 된다고 세뇌시키다니 남자들이 새삼 불쌍해진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조차 억압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자란 남성들은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서투르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이 냉혹한 정글 같은 현실에서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고 배워온 남자들은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창피하거나 미안한 감정이 들면 우선 화부터 낸다. 그들은 화를 내서 자신의 약한 감정을 숨기고 강한 척하려 든다. 이러다 보니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괜한 담배만 빨아대고 술을 들이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 방법은 건강을 해치고 가족 내 갈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의 40~50대 남자들은 말 그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6·25전쟁의 혼란과 폐허, 아니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용틀임의 과정에서 태어나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자라고 한강의 기적과 함께 성장한 세대,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세대, 1980년대의 경제성장과 88올림픽을 준비한 세대, 성공과 성장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다. 개인은 무시되고 희생된 세대들이고 따라서 집에서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은 방기된다. 남자들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 집에다 가져다주면 된다. 아침 일찍 나가서 아이들이 다 잠든 밤늦은 시간에 지친 몸으로 귀가하던 아버지는 부인이나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교육은 온전히 부인의 몫이었다. 혼자서 아이들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부인은 부인 나름대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아이들에게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소원한 존재이자 그들 옆에 없는 원망스러운 존재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겉돌고만 있는 풍경이 많은 집의 창문에 비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죽기 직전 뱉는 세 가지 ‘껄’

사람은 “껄, 껄, 껄” 하며 죽는다 한다. 호탕하게 웃으며 죽는 게 아니라 “~할 껄”하고 후회하면서 죽는다는 말이다. 첫 번째 ‘껄’은 “더 베풀고 살걸!”이다. 죽는 마당에 자신이 왜 그렇게 인색하게 살았는지, 더 베풀고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통한의 후회인 것이다. 두 번째 ‘껄’은 “더 용서하고 살걸!”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는데 용서하고 떠날걸!’하는 후회다. 허나 이미 화해하기엔 시간이 없다. 세 번째 ‘껄’은 “아, 좀 더 재미있게 살다 갈걸!”이다. 이렇게 죽을 걸, 왜 그렇게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살았던가 하는 후회다. 죽을 때가 되니 자신이 가졌던 것들과 그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미 시간은 다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는데 말이다.

여기서 세 가지 ‘껄’인 베풂과 용서, 재미는 모두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은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과 친구 같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그런데 이 관계 맺기는 여자들의 강점이고 남자에겐 태생적으로 그리고 발달학적으로 약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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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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