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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③

‘나무에 미친 사학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

“나무를 사랑하며 살다가 마침내 나무가 되고 싶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나무에 미친 사학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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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미친 사학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

나무는 가까이 다가가 끌어안고 어루만질 때 비로소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다.

통섭의 인문학

▼ 나무를 세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무렵부터였나요?

“그렇죠. 나무 공부를 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새삼 캠퍼스 안에 나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부 합치면 얼마나 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요. 처음엔 저도 학생들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개수를 셌어요. 몇 번을 다시 세고서야 한 걸음 다가서는 법을 배웠지요. 껍질을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나무, 넉넉한 그늘 아래 누워 올려다보는 나무는 그때까지 알아온 나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정말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지요.”

강 교수는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을 들었다. 천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늘 푸르게만 보이는 소나무도, 가까이서 바라보면 언제나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물을 머금고 잎을 틔우고 나이테를 불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치열한 나무의 ‘삶’을 보며 그는 잠시나마 그들을 생존의 도구로 생각했던 걸 반성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무는 그저 온전한 사랑의 대상이 됐다.

강의가 없는 시간을 쪼개 나무를 세면서 그는 종종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멀쩡한 중년 남자가 나무 사이를 오가며 껍질을 쓰다듬거나 나무를 끌어안고, 심지어 그 아래 누워 하염없이 이파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동료 학자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인문학자가 공부하다 잘 안 된다고 해서 ‘외도’를 하면 되느냐”는 냉소와 비난이 들려왔다.



“하지만 저는 제가 외도한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고대 철학자가 과학을 연구하고, 퇴계가 직접 도산서원을 설계한 것처럼 인문학은 원래 경계가 없는 학문이라고 믿으니까요. 현대의 식물도감과 청대의 역사서, 경전, 문학서적을 함께 읽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사학이 나무와 무관한 학문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간은 나무보다 늦게 세상에 왔고, 그래서 인류의 모든 역사가 나무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나무를 공부하며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미쳐야 미친다

그의 관심 분야는 사학의 영역을 넘어 점점 넓어졌다. 예사로 지나치던 모든 나무가 큰 의미로 다가왔다. 동요에 언급되는 나무의 원형을 추적하고(동요 ‘푸른 하늘’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어떤 특징이 있기에 달나라에서 토끼와 함께 머무는 나무로 여겨졌을까,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있을 거라고 처음 상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역사의 이면을 파헤쳤으며(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은 어느 나무 아래 있었을까, 왜 공자는 수많은 나무 가운데 그 나무를 선택했을까, 공자의 가르침과 그 나무는 무슨 관련을 맺고 있을까), 유명 화가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고흐는 왜 자살 직전 ‘측백나무’를 그렸을까, 이 나무에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좋은 ‘백자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가 일본 원산 ‘삼나무’를 주제로 그린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은 고흐의 정신세계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금껏 누구도 연구한 적 없는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반까지’ 나무에 묻혀 살았다. 강의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나무를 세거나 관련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썼다. 점심, 저녁 두 끼는 모두 도시락으로 때웠다.

“일요일 하루는 학교를 떠나 새로운 나무를 만나러 다녔지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보거나, 교내에 없는 특별한 수종을 찾아다닌 거예요. 그전에는 몰랐는데 제가 뭔가에 빠지면 정말 ‘미치는’ 성격이더군요.(웃음)”

나무를 만난 뒤에도 직업은 여전히 시간강사였고, 미래는 불안했지만 그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열정을 바쳐 공부할 주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밥’을 위해 시작한 나무 공부는 그렇게 그의 ‘꿈’이 됐다.

강 교수는 2002년 마침내 첫 책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지성사)를 펴냈다. 나무와 역사, 나무와 문학, 나무와 미술 등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풀어낸 역작이다. 그는 책머리에 ‘일 년 이상 도시락을 준비하면서도 불평은커녕 오히려 더 맛있는 반찬을 싸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아내, 아침에 잠깐 아빠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지원과 영민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않았지만, 팍팍한 살림에 숨통을 틔워줬다. 그리고 2005년, 그는 강사 생활 16년 만에 마침내 모교의 교수가 됐다. 나무 공부를 통해 ‘괴짜 사학자’로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면 꿈조차 꾸지 못했을 일이다. 강 교수는 “나무에 미친 내게 나무가 준 선물 같다”고 했다.

▼ 스스로 ‘나무에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미쳤지요. 틀림없이.(웃음) 사람이 사는 동안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얼마나 쓰고 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무를 만난 뒤 제가 가진 것의 100%를 쓰고 있어요.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이 세상 다른 무엇이 아닌 나무여서 행복하고요.”

나무를 세고,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그는 존경과 감동을 자주 느꼈다. 특히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본 천연기념물 제289호 소나무를 잊을 수 없다. 고매한 선승처럼 위엄 있는 모습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경기 양평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도 보는 사람을 압도했지요. 그런 나무를 만나면 저는 큰절을 올립니다. 한자리에 서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낸 존재의 깊이라는 건, 한낱 인간이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경북 상주시 화서면의 반송(천연기념물 193호), 충북 괴산군 화양면 청천리에 있는 ‘왕소나무’(천연기념물 290호)도 종종 눈앞에 어른거린다. 부산 양정 1동 동래 정씨의 시조 묘 근처에 있는 배롱나무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늦봄 구름 한 점 없던 어느 날 오후, 그 나무 밑에 앉아 새 소리를 들었던 순간은 그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 가운데 하나다.

강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동양고대사’ ‘동양중세사’ ‘동양근대사’ 등 주로 시대사를 강의하고 있다. 사학과 전공 수업이지만, 강의에는 당연히 나무 얘기가 넘쳐흐른다. 나무는 그가 역사를 읽고 쓰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어떤 강의를 맡든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야외수업을 하며 학생들과 함께 나무를 본다. ‘근사’와 ‘격물치지’의 실천이다.

나무인간 강판권

그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학자’로서 연구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조만간 그가 정리한 ‘나무 이름 풀이 사전’이 출간된다. 우리가 부르는 나무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다양한 문헌에서 생태적 문화적 근거를 찾아내 설명하는 책이다. 그는 동시에 우리나라 식물학사를 개괄하는 책의 집필도 준비 중이다. 대한민국 식물학이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왔는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어떻게 발전 또는 왜곡됐으며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 숲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을 정리할 계획이다. 강 교수는 “평생 쓰고 싶은 책 제목은 이미 다 정해놓았다.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며 웃었다.

그의 꿈은 이렇게 나무를 사랑하며 살다가, 언젠가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강판권 쥐똥나무’라고 쓰여 있었다.

“‘쥐똥나무’는 아파트나 학교 등의 울타리로 많이 쓰이는 나무지요. 키 작은 모습이 저랑 닮은 것 같아 ‘본명’으로 삼았어요. 중심에 서 있는 것보다 울타리가 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점도 저와 비슷하고요. 게다가 이름도 정말 앙증맞잖아요.(웃음)”

그는 다른 이들에게도 나무 이름을 짓도록 권한다. 나무 이름을 갖는 순간 ‘내가 나무가 되고, 나무와 같은 가치를 갖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무가 되면, 우리도 나날이 새로워지고, 서로에게 평등해지며, 타인의 도움 없이도 혼자만의 힘으로 삶을 꾸릴 수 있게 되겠지요. 정말 근사한 일 아닌가요?”

그래서 강 교수의 ‘인문식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 ‘나무세기’ 회원들은 서로를 각자 원하는 나무 이름으로 부른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함께 캠퍼스로 나섰다. 벽오동을 지나 회화나무 산시나무 계수나무로, 산딸나무를 돌아 은목서 자귀나무 뽕나무로, 다시 상수리나무와 목백합 느릅나무로 길은 이어졌다. 강 교수를 만나러 가던 길엔 그저 ‘나무1’ ‘나무2’ ‘나무3’일 뿐이던 것들이 하나 둘 제 이름과 향기를 갖고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 어쩌면 그는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려/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이성복,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1-나무인간 강판권’

신동아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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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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