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배우 오현경씨.
젊은이도 버거워할 정도로 강한 체력과 대사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무대를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거뜬하게 누비고 있는 그를 만난 것은 한 달 뒤인 대학로에서였다.
흰 수염에 백발을 한 그의 모습은 겉으로 봐서는 ‘원로배우’였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청년’이었다.
▼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직접 들으니 나이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였어요. 한참 가다가 제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자 택시기사가 움찔하고 놀라면서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나이 드신 분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깐 젊은 분이시군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하.”
사실 택시기사도 오해할 만하다. 그는 지난해에는 ‘베니스의 상인’에 출연했고, ‘봄날’에서 아버지 역으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타기도 했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앞두고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3일자에 ‘충돌’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연극 기사를 실었다.
‘배우 오현경씨와 연출가 이윤택씨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오씨는 정통파 사실주의 연기의 제왕. 연극계에선 그를 ‘냉철한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반면 연출가 이씨는 ‘파격의 마왕’이다. 전통적 해석을 뒤틀고 전복하거나 의표를 찌르는 데 선수다.’
▼ ‘베니스의 상인’을 공연할 때 연출가와 갈등은 없었나요.
“있었지요. 이번 작품은 샤일록의 이미지를 많이 바꿨습니다. 수전노라기보다는 베니스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핍박받는 유대인의 억울한 측면이 강조됐지요. 반면 안토니오(정호빈 분) 등 기독교인들은 타락한 측면이 많이 부각됩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동의했지요. 그런데 나는 원래 성격이 예술에 ‘사상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예 목적극을 표방한 극이라면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을 너무 많이 바꾸는 것에 대해선…. 그래서 중간에 ‘못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마쳤어요. 이번 연극을 보고 정통 연극인 중에는 실망을 하면서 제게 말도 잘 걸지 않으려는 경우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관객들은 이런 스타일의 연극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번 연극은 흥행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저로선 대사보다는 보여주는 연극, 즉 놀이연극을 해보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식도암, 위암 그리고 무대
오씨는 식도암, 위암 등을 이겨내고 무대에 선 배우이기도 하다. 전에는 공연을 앞두고 쓰러진 적도 있다.
“식도에 혹이 발견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지요. 그날 밤 화장실에 가다가 고꾸라졌어요. 혓바닥까지 나와서 다들 내가 죽는 줄 알았대요. 전기쇼크를 해서 겨우 의식을 회복했어요. 깨어나 일어나보니 마누라가 울고 있어서 ‘왜 그래, 창피하게’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3년 전에는 위암수술을 했고, 얼마 전에는 목 디스크 수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