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 막말’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거세다. 그러나 공개된 법정보다 폐쇄된 검찰 조사실에서의 언어폭력 수위가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국가인권위원회 상담사례를 통해 인권은 없고 막말이 난무하는 검찰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지난해 모 검찰청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한 A씨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한 내용이다. 검사의 강압적 조사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호흡곤란이 발생한 A씨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 안정제를 투여받고 있을 때 A씨가 검사에게서 들은 말은 사과보다는 핀잔에 가까웠다.
“괜찮네 뭐. 과호흡증후군, 그거 아무것도 아냐. 내가 잘 아는데 봉투에 입 대고 숨 쉬면 돼.”
검찰 관련 상담 연간 200건 이상
최근 법정에서 39세 판사가 69세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해 인권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법관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법관 막말’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이 ‘검찰 막말’. 인권위가 펴낸 2007년과 2008년 인권상담사례집에는 “뒈져라”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네 성씨들은 머리가 너처럼 둔해?”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검사 앞에 훈계하려 들어?” 등 도(度)를 넘은 검사들의 언사가 실려 있다.
인권위에는 해마다 200건이 넘는 검찰의 인권침해 상담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 지난해(2008년 7월~2009년 6월)에도 252건이 접수돼 2008년(2007년7월~2008년6월) 264건에 비해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 중 인격권 침해 관련 사안, 즉 ‘막말 피해’는 2년간 80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편파수사, 공소권 남용, 강압·부당 증거 확보, 과도한 총기·장구 사용 등 대부분의 인권침해 사안이 ‘기본적으로’ 언어폭력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검찰 막말은 심심찮게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신동아’는 서두에 밝힌 A씨 사례를 비롯해 2008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검찰의 인격권 침해 상담사례를 단독 입수했다. 이 사례들은 인권상담사례집 등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것들로 여전히 일부 검찰 조직원들이 피의자, 참고인, 고소인, 피고소인 가릴 것 없이 비인격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먼저 검찰 조사를 받고 큰 충격에 빠진 어머니를 대신해 인권위를 찾은 B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머니가 마트에 쇼핑을 갔다가 2000원 정도의 고기값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담당 검사는 50대인 어머니에게 ‘생리를 하느냐’고 묻고, ‘생리를 한다면 생리증후군이라고 하겠지만, 생리도 안 하면서 도둑질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도둑이 무슨 말이 많으냐’며 어머니가 작성한 조서 4장을 찢어버리고 ‘고기가 먹고 싶고 탐이 나서 도둑질을 했다는 내용으로 다시 쓰라’고도 협박했습니다. 어머니는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자식들 보기 부끄러워 집에 들어오시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입은 정신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생리도 안 하면서 도둑질을…’
검사실에 불려온 이에게 모멸감을 안기는 검찰의 언사는 이것말고도 많다. 2008년 사기 혐의로 모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C씨는 검사로부터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같은 해 위증교사 혐의로 조사를 받은 D씨는 검사가 “무직이지?”라며 본인을 무시하듯 말해 큰 상처를 받았다. E씨는 자신이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마다 검사가 말을 끊어서 과거 사건 얘기를 꺼냈다가 검사로부터 “정신이상자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여러 건의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은 여성 F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저 여자가 잘못했겠지 뭐’라고 하고, 소환장을 요구하면 ‘당신이 주거가 어디 있어? 왔다갔다 하면서’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반말을 했다”고 하소연했다.
배우 설경구(가운데)가 의협심이 강한 검사 강철중으로 등장하는 영화 ‘공공의 적2’의 한 장면. 현실의 검사들이 뱉는 ‘막말’은 의협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검찰계장이 나한테는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하면서 채권자에게는 ‘어르신, 좀 더 있다가 가시죠’라고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채권자의 말만 조서에 적었고요. 검사도 내게 ‘개새끼’ 등의 욕설을 하면서 ‘인상이 나쁘다’는 말까지 퍼부었습니다.”
“사기 전과도 있고,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영장을 끊을까요?”
영문도 모른 채 검찰에 출두한 사람이 검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심정이 어떨까. I씨는 “모욕을 느꼈다”고 인권위에 토로했다. 자신이 무슨 일로 고소당했는지 설명을 요구해도 검사는 답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뒤늦게 알게 된 고소인은 I씨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 그는 “이런 상황에서 조사를 못 받겠다고 하자 검사가 ‘조사를 거부한 거죠?’라는 등의 말을 위협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말 자르고 책상 치고 수갑 흔들고
신체적 건강, 종교, 성적 정체성 등 인간의 기본 권리마저 함부로 다뤄졌다. J씨는 암 수술을 받고 요양하는 중에 사업과 관련해 고소를 당해 검찰에 불려갔다. J씨는 “당시 몸에 마비가 와서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상태라고 알렸는데 검사가 ‘쇼하지 말라’며 모욕을 줬다”고 했다.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고소한 K씨는 “검찰 조사관에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가 ‘왜 종교를 믿느냐. 교회도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조사관이 ‘투자를 해놓고 왜 빌려줬다고 거짓말 하느냐’ ‘감방에 처넣겠다’며 수갑을 꺼내 채우려고 했다”고도 덧붙였다.
자신을 ‘성적소수자’라고 밝힌 L씨는 성추행 사건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사로부터 “성욕은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L씨는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을 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위압적인 태도도 여전하다. 모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인 M씨는 “허위공문서 행사와 관련한 진정서를 작성했는데, 한 검사가 전화를 걸어와 ‘고소하면 무고죄로 집어넣겠다’고 했다”며 인권위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검찰이 사건을 편향되게 처리해 억울한 사법피해자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겁이 나서 고소를 못하고 있다”며 “이번 일도 검찰이 피고소인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다음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이웃주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N씨의 말이다(이웃주민은 N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국선변호 적용 범위 확대 필요
“검사가 책상을 세게 치면서 ‘종이 가져가는 거 봤느냐? 보지도 않고 왜 가져갔다고 했느냐? 당신이 ○○○를 바늘로 찌르면 칼로 죽이는 거나 똑같다. 당신들 벌금을 몇 백만원 내고, 검사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구치소에 보낼 수도 있다. 벌금 많이 내겠네. 벌금 못 내면 구치소에 살아야 한다’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인권위가 ‘막말 판사’에 대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는 배경 중 하나는 막말의 ‘현장’이 법정, 즉 공개된 장소였다는 점이다. 막말 피해자의 소송대리를 맡았던 변호사는 인권위에 “당시 법정에서 이 사건을 목격했고,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 그대로”라고 증언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손아랫사람에게나 사용되는 ‘버릇없이’라는 말을 들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사건 발생 다음날 소송대리를 사임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정과 달리 검찰 조사실은 폐쇄된 공간이다. 검찰이 ‘아니다’라고 하면 입증할 도리가 없다. 대검찰청 측은 언론에 검찰의 막말 사례가 일부 보도되자 “검찰과 관련한 인권상담 사례 중 대부분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의 일방적 얘기이고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정황이나 구술이 너무 구체적이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검찰의 막말이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조국 교수(법학부)는 “일부 검사들이 피의자를 자신과 동일한 헌법상 기본권을 가진 동료 시민이 아닌, 처단되어야 할 범죄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고 유죄 입증이 실적과 직결되다보니 인내심을 잃고 무리수를 쓰게 된다는 것. 조 교수는 “검찰의 인격권 침해를 줄이려면 검사에 대한 인권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현재 피고인에게만 국한돼 있는 국선변호의 적용 범위를 넓혀 피의자 신분에서도 국선변호인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격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당당하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단호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대검찰청 홈페이지 첫 화면에 뜨는 문구다. 국민을 향해 이와 같이 천명하기에는 검찰의 현실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기자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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