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농사를 지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높은 곳은 덜어내고 낮은 곳은 북돋워서 논밭을 고르게 만드는 일이다. 자연과 인체를 하나로 파악하다보니 인체도 농사처럼 에너지가 높은 곳은 덜어내고 낮은 곳은 높이면서 고르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편작(중국 고대의 명의)은 이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호흡과 맥을 살펴서 병의 원인을 알아낸다. 양기가 성하면 덜어내서 음기를 고르고, 한기가 성하면 덜어내서 양기를 고른다. 뜸은 태양의 기운으로 차가운 오한을 없애고 침은 태백의 차가움으로 급성질환과 열을 의로써 없앤다. 졸렬한 의사는 진단을 잘못하여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환관의 ‘염철론’)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허실과 음양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다. ‘일침 이구 삼약론’은 첫째, 급성 질환에는 침으로 열을 제압하고, 둘째, 만성적인 질환에는 뜸으로 체온을 끌어올려 저항력을 높이고, 셋째, 약(藥·즐길 락(樂)이 포함됨)으로 내부에서 즐기면서 깊이 치료하라는 논리다.
여기에는 편작의 이야기가 근거로 많이 인용된다. 편작이 제나라 환공을 만나자 세 번에 걸쳐 치료를 권유했다. 환공은 번번이 병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편작이 달아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병이 주리에 있으면 탕울이 미치고 혈맥에 있으면 침석이 미치고, 장과 위에 있으면 약술이 미치지만 골수에 있으면 방도가 없습니다.” 일구 이침 삼약이 고루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이야기한 것이다.
침의 기원은 돌침이다. 폄석이라고 하며 침석, 폄석, 참석으로 나뉜다.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쇠로 침을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 차가운 것이 인체에 닿는 것은 기를 소모할 우려가 있어 말발굽으로 만들었다. 말은 본래 뜨거운 화의 기운으로 쇠의 차가움을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이 차가운 터라 열성이나 급성질환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뜸은 양기 북돋우는 좋은 수단
뜸은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이용해온 요법 중 하나다. 무릎이나 어깨가 아플 때 자가 요법으로 쑥뜸을 떠온 것은 오래전부터 숱하게 봤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치료를 ‘아시혈 치료’라고 한다. 병을 앓아 통증이 있을 때 그 부위를 누르면 입에서 튀어나오는 감탄사 ‘아(阿)’와 ‘맞다’는 의미의 ‘시(是)’를 합해서 만든 말이다.
이런 치료는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나름의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아픈 자리에 침이나 뜸을 놓으면 좋아지는 아시혈과 경혈은 다르다. 경혈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경혈은 내부의 오장육부와 연결된 곳으로 인체의 허실 상태를 조절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발동시킨다. 그 결과 내부와 외부, 좌우, 전후를 엮어나가는 깊은 울림을 만든다. 한의학에서 인체는 소우주다. 전신의 경혈수는 361개, 음력으로 1년과 같다. 바둑도 가로와 세로가 19 곱하기 19로 총 361개 자리가 있다. 바둑판의 원리와 경혈의 원리는 우주와 인체처럼 일치한다. 바둑에서 한 수를 잘못 두면 말이 죽고 사는 것처럼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취혈은 환자의 건강을 결정하는, 작지만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농경을 닮아서 그 변화를 쉽게 알 수 없다. 변화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도 종종 있다. 치료의 결과가 단박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전문가의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대처가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단기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알묘조장(·#53051;苗助長)처럼 뿌리를 들어올려 몸을 망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침술
이때 따져볼 점이 있다. 주전자에 물이 제대로 차 있는지 여부다. 만약 주전자에 적정량의 물이 차있지 않다면 화력을 1단에서 2단으로 올렸을 때 물이 끓기는커녕 다 증발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상태를 물이 부족하다 하여 음허(陰虛)라고 한다. 예상외로 화력이 3단이면 물이 너무 빨리 끓어 넘치거나 주전자를 태울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양기가 넘친다 하여 양성(陽盛)하다고 한다. 뜸 치료를 할 때 환자의 상태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화타의 의술을 채록한 고대의 ‘중장경’부터 현대의 한의학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한목소리로 “음기가 많거나(물이 적거나), 양기가 많으면(불기운이 많으면)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실제로 뜸을 잘못 뜨면 환자에게 없던 병이 생기기도 한다.
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지적했지만, 필자가 최근 왕진했던 한 분의 이야기가 교훈적이다. Y대 학장을 역임한 분이 암에 걸려 목숨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마지막 치료라 생각하고 쑥뜸치료를 받았는데, 상당히 호전 기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심쩍어 필자를 불러 확인하고 싶어했다. 가서 보니 상태가 듣던 것과 달리 좋아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붉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상기 증상을 호소하였다. 뜸의 열기가 내부로 들어간 것이라 진단하고 횟수를 줄이고 기(氣)를 아래로 내리는 혈을 권고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중풍이 왔다는 것이다. 너무나 빠른 안타까운 결과였다.
큰 불은 오히려 기를 소멸시킨다
뜸은 질병 예방에 좋다. 그러나 그 혈자리가 한두 곳에 불과하다. 다산 정약용은 늘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실증 한의학의 대가인 다산의 건강뜸은 신수혈에 뜸을 지지는 방법이다. 신수는 엉덩이뼈 뒤쪽, 등 뒤 푹 파인 곳이다. 신수혈 뜸은 하초가 튼튼하지 못하고 정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건강법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뜸의 적정성을 놓고 이렇게 정의했다. 小火生氣요 壯火食氣라. 작은 불은 생기를 만들지만 큰 불은 오히려 기를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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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에 뜸을 뜨고 건강을 지키는 방식은 문헌상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의 ‘상한의문답’을 보면, 몸의 정해진 자리 네 곳에 꾸준히 뜸을 떠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전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이 방법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지, 조선의 사신으로 일본을 찾은 조숭수에게 그 타당성을 물었다. 조숭수의 대답 역시 나의 대답과 같다. “음기가 많거나 양기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뜸 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하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