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74세의 ‘영원한 청년배우’ 오현경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선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10-03-02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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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백 한 가지.
    • 최근 몇 년 동안 기자는 연극을 한 편도 관람한 적이 없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랬다. 적어도 올해 1월2일까지는. 그러다가 1월2일 가족과 함께 서울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중학생인 두 딸에게 연극을 보여주려는 아내를 따라 나선 게 계기였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연출 이윤택).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샤일록으로 분한 ‘배우 오현경’이었다.
    74세의 ‘영원한 청년배우’ 오현경

    연극배우 오현경씨.

    1936년생으로 올해 74세. 백발의 배우에게서 나온 목소리는 우렁차고 명료했다. 대사는 객석에 정확하게 전달됐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겉으로 봐서는 가냘프기 그지없는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는 무대를 압도했다. 존경심이 생겼다.

    젊은이도 버거워할 정도로 강한 체력과 대사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무대를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거뜬하게 누비고 있는 그를 만난 것은 한 달 뒤인 대학로에서였다.

    흰 수염에 백발을 한 그의 모습은 겉으로 봐서는 ‘원로배우’였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청년’이었다.

    ▼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직접 들으니 나이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였어요. 한참 가다가 제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자 택시기사가 움찔하고 놀라면서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나이 드신 분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깐 젊은 분이시군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하.”



    사실 택시기사도 오해할 만하다. 그는 지난해에는 ‘베니스의 상인’에 출연했고, ‘봄날’에서 아버지 역으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타기도 했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앞두고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3일자에 ‘충돌’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연극 기사를 실었다.

    ‘배우 오현경씨와 연출가 이윤택씨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오씨는 정통파 사실주의 연기의 제왕. 연극계에선 그를 ‘냉철한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반면 연출가 이씨는 ‘파격의 마왕’이다. 전통적 해석을 뒤틀고 전복하거나 의표를 찌르는 데 선수다.’

    ▼ ‘베니스의 상인’을 공연할 때 연출가와 갈등은 없었나요.

    “있었지요. 이번 작품은 샤일록의 이미지를 많이 바꿨습니다. 수전노라기보다는 베니스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핍박받는 유대인의 억울한 측면이 강조됐지요. 반면 안토니오(정호빈 분) 등 기독교인들은 타락한 측면이 많이 부각됩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동의했지요. 그런데 나는 원래 성격이 예술에 ‘사상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예 목적극을 표방한 극이라면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을 너무 많이 바꾸는 것에 대해선…. 그래서 중간에 ‘못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마쳤어요. 이번 연극을 보고 정통 연극인 중에는 실망을 하면서 제게 말도 잘 걸지 않으려는 경우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관객들은 이런 스타일의 연극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번 연극은 흥행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저로선 대사보다는 보여주는 연극, 즉 놀이연극을 해보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식도암, 위암 그리고 무대

    오씨는 식도암, 위암 등을 이겨내고 무대에 선 배우이기도 하다. 전에는 공연을 앞두고 쓰러진 적도 있다.

    “식도에 혹이 발견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지요. 그날 밤 화장실에 가다가 고꾸라졌어요. 혓바닥까지 나와서 다들 내가 죽는 줄 알았대요. 전기쇼크를 해서 겨우 의식을 회복했어요. 깨어나 일어나보니 마누라가 울고 있어서 ‘왜 그래, 창피하게’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3년 전에는 위암수술을 했고, 얼마 전에는 목 디스크 수술을 했다.

    74세의 ‘영원한 청년배우’ 오현경

    연극 ‘봄날’에서 아버지 역 (왼쪽)과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연기한 오현경씨.

    ▼ 시련이 끊이지 않았네요.

    “저는 사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위암 수술도 위의 절반 이상을 잘라냈지만 밥을 많이 먹지 못한다는 점 빼놓고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어요. 최근에는 목 디스크 수술도 혼자 병원에 가서 했어요.”

    뭔가 세상사를 초월한 듯한 발언이다.

    ▼ 아니 그래도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죽음이 겁나지 않아요. 더 오래 살겠다고 안달한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닙니다. 오래 살려고 했던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더욱이 요즘은 제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합니다. 그리고 나는 의사 말을 잘 믿어요.”

    ▼ 마이크도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대사가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나요.

    “실제로 연극이 끝난 뒤 어떤 사람은 나를 찾아와서 ‘혹시 마이크를 썼느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서는 선천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야 하지만 훈련을 해야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발성방식을 보면 횡격막에 공기를 채워놓고 바람이 모두 빠지기 전에 살짝 채우는 방식으로 해요.”

    그러면서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배를 한번 만져보라고 했다. 차돌처럼 단단했다.

    “무대에서 제대로 발성되지 않은 소리는 관객에게 들리지 않아요. 소극장에서는 대사가 잘 들릴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아요. 아무리 작은 극장에서라도 저음은 저음대로, 고음은 고음대로 발성을 해야 합니다. 요즘 배우들은 대사의 분석을 대충하고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국어교육이 잘못됐어요. 말하기를 배우지 않아요. 서양말은 표준말을 배우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선 공인이 지방말(사투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해요. 영어사전을 찾아보면서도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긴 발음과 짧은 발음에 대해서는 찾아보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객석과 연극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연극할 때가 많아요.”

    연극배우가, 나아가 공인이 표준말을 구사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을 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그의 집착은 매우 강했다.

    실제로 그는 사재를 털어 연극계 후배들을 위해 연기뿐만 아니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 위한 송백당(松柏堂)이라는 연극워크숍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말하기

    ▼ 일반인도 발음을 정확히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나요.

    “그럼요. 나를 보세요. 내가 인중이 짧아요. 발음을 정확히 하는 데 상당한 핸디캡입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발성을 배운 겁니다. 일반인도 정확한 발음을 배우기 위해서는 누웠다가 약간 일어나려는 자세를 한 채 신문을 읽어보는 것도 해볼 만합니다. 물론 일반인은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지만 정치인 교수 목사 등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은 배워야 해요. 과거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도 별도의 스피치 고문을 두고 중요한 연설을 할 때에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어떤가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잘 들렸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경상도 사투리이기는 하지만 뜻이 정확하게 전달됐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잘 전달이 안됐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전달이 잘 안되는 편이에요. 원래는 자기 의사가 100이면 120이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100이라고 하더라도 (발성에 문제가 있으면) 80만 전달이 됩니다.”

    ▼ 영화나 TV는 대사를 잊으면 다시 촬영하면 됩니다. 그런데 연극공연은 그 같은 ‘재촬영’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연극무대에서는 스트레스가 많겠네요.

    “물론 연극에도 애드리브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겁니다. 스트레스가 많지요. 연기를 한 지 오래돼서 이전보다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도 몸무게가 2㎏ 줄었습니다. 특히 공연이 임박했는데 대사가 완전히 외워지지 않으면 힘들지요. 대사를 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연기까지 해야 합니다.”

    ▼ 나이가 들수록 암기력이 떨어지는데 대사를 외우는 게 힘들지 않나요.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빨리 외우면 금방 잊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연습하면서 대사를 암기하는데 그러면서 연기도 함께 생각해요. 내 친구들은 ‘우리 나이에 어떻게 그걸 다 외우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총명기’는 떨어집니다. 젊을 때에는 이 정도 하면 됐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되는 게 사실입니다.”

    오현경씨는 1954년 서울고 2학년 때 교내 연극부를 만들면서 처음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연기와 연출활동에 본격 들어서게 됐다. 그는 연세대 재학 중 연출과 연기 등을 합쳐 12편의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60년대 안방극장 톱스타

    ▼ 일반인에게는 1987년 ‘TV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장수 과장’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실 TV에서 전성기는 1960년대 TBC에서 활동할 때였습니다. 총각 시절이지만 당시 세계일주도 했어요. 안방극장 최초의 ‘톱스타’였어요. 당시 김지미씨가 미원 광고로 실질적으로는 100만원을 받았는데 나에게는 다른 회사에서 12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습니다. 이 돈은 당시 공무원아파트 두 채 반 가격이었어요.”

    ▼ 돈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왜 거절했나요.

    “사실 요즘 세상에 돈을 모르면 바보지요. 나는 6·25 이전까지는 여유 있게 자랐어요. 안국동에서 살았는데 대문이 3개나 있는 66칸짜리 집이었어요. 우리 집은 나중에 몰락했지만 저는 쥐뿔도 없으면서 돈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연극을 하다가 상업방송에 출연하면서 내가 타락한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직접 상품에 파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그때 광고제의가 와서 거절한 겁니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제의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요.”

    ▼ 후회는 없나요.

    “딱 한 번 후회했어요. ‘송백당’을 운영하다가 돈이 부족해 문을 닫아야 할 때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돈이 많았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혹은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 실례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오현경’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면 ‘여자 탤런트 오현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가 ‘TV손자병법’을 촬영할 때 방송국에서 당시 청소년드라마에 출연하던 오현경 학생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사건’이 터졌어요. 우리 집에 전화가 어찌나 걸려오던지. ‘오현경 누나 바꿔주세요’ ‘아버님 되시나요’라는 전화가 밤이고 낮이고 계속 걸려오는 거예요.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고. 방송국에서도 제게 전화가 올 정도였어요. 심지어 오현경이를 만나겠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가 아파트 경비와 싸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편지는 또 얼마나 왔던지. 그런데 현경이가 원래 착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 이해를 했지요.”

    ▼ 연극계는 영화나 뮤지컬 등 다른 분야에 비하면 열악한 상황입니다. 일부에선 산업화시대에 ‘가내수공업’이 퇴조할 수밖에 없듯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부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연극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1950년대, 60년대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지요. 연극이 대중예술로 가기 힘든 측면이 있어요.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세계가 그런 편이에요. 연극하는 사람은 그래서 대개 가난해요. 영국에선 뛰어난 연극배우에 대해 ‘경(Sir)’ 칭호까지 붙여줘요. 그런 분조차 때로는 자존심을 버리고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해요. 어찌됐건 연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연극

    그는 그러면서 영국에서 겪은 일을 소개했다. 오래전에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배우들이 출연한 셰익스피어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다고 했다.

    “그때 옆에 함께 있던 영국인이 ‘우리가 이렇게 박수를 쳐줘야 이 중에서 훌륭한 배우가 나와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고 말하더군요. 필남필부가 이러니 영국 지성인은 수준이 얼마나 더 높겠어요. 친구들에게 가끔 ‘내가 50년 가까이 연극을 하는데 한번이라도 연극을 보러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면 ‘초대권을 보내줘야 연극을 보러가지’라고 이야기해요.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학예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미국의 경우 브로드웨이 뮤지컬만큼은 아니지만 연극축제가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리는 것을 봤어요. 서부 오리건 주에서 열리는 ‘오리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준비하는 상근직원만 100명이 넘고 1년 경상예산이 400억원, 1년 총 관람객이 40만명을 넘습니다. 한국 연극에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

    “문화수준이 높아지고 정부 지원이 충분하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일반관객만으로는 안돼요. 후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에선 기업후원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은 많아지고 있지만 지원대상 연극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정부 지원을 타내기 위한, 혹은 비용을 최대한 줄여 돈만 남기려는 장사 위주의 상업극이 너무 많아요.”

    그는 서울에도 소극장이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수준 이하의 연극이 너무 많다보니 관객들은 수준이 낮은 연극을 보고 실망해서 연극에 발을 끊는 역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 다른 공연예술장르와 비교했을 때 연극의 매력은 뭔가요.

    “창조의 희열입니다.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은 큰 매력이지요. 극중 인물이 배우에 따라 달라져요. 관객들은 이런 것을 보고 재미를 느껴요. 그런데 정부도, 매스컴도 영화에만 관심을 둬요. 연극처럼 열악한 예술분야를 좀 널리 선전해줘야 하는데 영화만 선전해줍니다.”

    그의 가족은 연극 가족이다. 부인 윤소정씨와 딸 오지혜씨가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오씨의 장인은 고 윤봉춘 감독으로 나운규와 함께 영화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그는 일부 연극에 대해선 ‘연출가만을 위한 연극’이라고 비판했다.

    “변호사로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부인이 연극을 좋아해 연극을 몇 차례 보러 간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만났을 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극장에 두 번 갔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고 실망스러워서 그 뒤 다시는 연극을 안 보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런 것은 연극인의 책임입니다. 연출가들은 실험한다고 연극을 이렇게 만들고, 상을 타고 이렇습니다.”

    74세의 ‘영원한 청년배우’ 오현경

    오현경씨.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부인 윤소정씨가 출연한 연극 ‘에이미’ 소개 책자다.

    ▼ 앞으로도 연극무대에 서는 거지요.

    “그럼요. 나는 항상 이번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공연을 해요. 지난해 출연했던 연극 ‘봄날’ 극단대표가 극단창립 10주년을 맞는 2011년에 ‘봄날’을 또다시 하자고 해서 ‘내가 내년을 어떻게 기약하느냐’고 대답한 적도 있어요.”

    기억력

    이 같은 말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기억력도 젊은이 못지않다. 지금도 4시간 동안 서서 쉬지 않고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다. 몇 십 년 전에 어느 장소에서 누가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수십 년 전에 만난 사람 이름 하나 하나를 곧바로 떠올릴 만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에는 기억력이 더욱 비상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를 통째로 외운 적도 있어 영문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시험을 칠 때 창문 밖에서 대사를 불러줘 도와준 적도 있다. 그는 그때 외운 ‘햄릿’ 대사 일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력으로 보면 천재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인터뷰 도중에 “창피한 이야기지만 희곡은 읽었지만 지금까지 장편소설을 한 권도 못 읽어봤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가 소설을 한 편도 읽지 못했다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그동안 창피해서 이야기를 못했는데 희곡은 읽을 수 있지만 긴 소설을 읽을 때면 책에 나온 내용이 계속 연상 작용을 일으켜 책을 계속 읽어가기가 힘들어요. 물론 시나 단편소설은 읽을 수 있고, 희곡도 읽을 수 있지만 장편소설은 힘들어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그가 ‘난독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독증을 가진 사람은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대신 이미지의 연결 등 비주얼에 강한 특성을 보이고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아인슈타인, 미켈란젤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 난독증을 가진 천재가 꽤 있다.

    어찌됐건 긴 글을 읽기 힘든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가, 인중이 짧아 정확한 발음을 하기가 쉽지 않은 그가, 식도암과 위암수술까지 했던 그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여전히 연극무대에서 선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74세의 ‘영원한 청년배우’ 오현경. 이제는 ‘국민배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대에 계속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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