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폐개혁은 내각 소관, 당 계획재정부장은 관련 없어
- ‘잠든 돈’ 소멸시켜 자금여력 확보하는 게 주목적
- 통화·외환정책 주도권 확보는 경제개혁의 출발점
- 개발은행 설립과 1988년 통일채권의 경험
- 후계체제 발맞춰 경제상황 개선하려는 국가주도형 세팅
- 핵문제 해결 통한 미국發 지원금을 종자돈으로 기대
- 입맛 맞춰 관점 따라 해석하는 언론, 전문가, 탈북자들
대표적인 것이 박남기 조선노동당 계획재정부장과 김동운 39호실장이 화폐개혁 실패와 관련해 경질됐다는 2월 초순의 소식이다. 최익규 당 영화부장 역시 화폐개혁 관련 홍보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좌천됐다는 것. 특히 최근 들어 북한 소식의 주요 유통창구로 자리매김한 전문 인터넷 매체들은, 화폐개혁으로 인해 시장 기능이 급속도로 위축됨에 따라 식량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일부 국경지역 주변에서는 소요에 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2월 중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화폐개혁의 실패를 인정했고 김영일 내각총리가 인민반장(한국의 동장) 수천 명을 모아놓고 이에 대해 사과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한 소식은 북한의 화폐개혁과 외환관리 정책 변경이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장경제적 요소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간 후퇴일로를 거듭하던 계획경제를 복원해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국가운영시스템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이러한 평양 핵심부의 의지가 이미 자리를 잡은 시장과 그에 적응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한 것이 화폐개혁 실패의 주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도 국가다”
‘신동아’가 소개하는 탈북 외환딜러 최세웅(50)씨의 분석은 이러한 기존 시각과 사뭇 관점이 다르다. 화폐개혁을 비롯해 최근 북한이 보여주는 경제정책은 개혁과 개방을 위한 도입부 작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과 흡사하고, 후계체제 구축이나 북핵 문제와 관련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발맞춰 이러한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는 게 최씨의 분석이다.
1995년 탈북한 최씨는 북한 노동당 재정경리부장(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희벽씨의 차남이다. 1979년 평양외국어학원, 1984년 김일성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후 북한 노동당의 대외결제를 담당하는 조선대성은행에 입행해 외환담당 과장과 국제부 차장을 거쳤다. 이후 수년간 런던 현지법인에서 대표로 일하며 금과 외환선물을 거래하다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 직을 마지막으로 서울에 온 그는, 이후 금융결제원 자금중개실과 나라종합금융 국제부 과장, 외국계기업 서울법인 대표 등으로 일했다. 북한의 통화정책이나 외환관리 실무를 담당해본 사실상 유일한 고위급 탈북자다.
최세웅씨.
“언론에서는 북한 화폐개혁이 실패했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특히 화폐개혁 때문에 박남기나 김동운이 해임됐다는 보도는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같은 중요조치들은 모두 김 위원장의 방침을 받아 이뤄지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가 아니다. 남한이나 일본에서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뿐이다.
화폐개혁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각 소관이다. 화폐개혁을 한다면 중앙은행과 내각 재정성이 먼저 기안을 만든다. 일종의 태스크포스를 조직해서 기안을 심사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도 실시한다. 그 결과 필요성이 인정되면 김 위원장이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프로세스다.
북한도 국가다. 지식층, 전문가들이 있다. 그 많은 인구 가운데 쓸 만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적잖다. 북한을 수준 이하의 비정상적인 집단으로만 치부하면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북한에서 통화와 관련된 계획 수립에 직접 관여해본 경험을 갖고 말하자면,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한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화폐개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일부의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므로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초기 혼란도 만만찮겠지만, 모두 예측 가능한 변수들이다. 정책이 기본목적을 달성했다면 실패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화폐개혁의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
화폐개혁의 실패라는 건 사전에 정보가 새서 인민들이 사재기를 하고 난리를 치는 경우다. 그러나 북한은 워낙 통제가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쉽지 않다. 이번 화폐개혁을 앞두고 전국적인 사재기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혀 없다는 건 북한의 체제 통제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도 된다. 국가기구가 그만큼 관련정보를 제대로 통제했다는 말이다.”
‘박정희 화폐개혁’과 비교하면
평양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
“화교들을 비롯해 몇몇 돈주에게 돈이 급속도로 집중돼 유통이 안 되는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국가에 100원이 필요한데 들어오는 돈은 70원밖에 없다고 치자. 필요한 30원은 찍어내야 100원을 맞출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찍어내면 유통량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돈주들의 집에 잠들어 있는 돈을 아예 못쓰게 만들어 없애버린 다음에 그 한도 안에서 필요한 돈을 찍어내기 위한 사전조치가 바로 화폐개혁이다. 시중에 나가 있는 돈 가운데 상당부분을 아예 사라지도록 만들고, 그만큼을 국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박정희 정부가 화폐개혁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재벌기업의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는 돈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겠다는 게 당시 화폐개혁의 목적 아니었나. 원리는 똑같다. 돈을 쌓아놓기만 하는 화교와 무역상, 귀국자, 장사치 등 돈주들의 현찰을 중앙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돈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 그런 돈이 어느 정도 규모였을지 가늠할 수 있을까.
“최소한 총유통량의 10%, 많게는 30% 가까이도 될 수 있다. 돈이 얼마나 풀려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면 경제개혁을 할 수 없다. 이 정보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어야 어떤 정책을 어떤 시점에 펼쳐야 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경제개혁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결심했다고 봐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외화정책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북한은 외화를 관리하는 방식이 남한과 다르다. 달러가 들어오면 돈이 있다고 계정을 잡아놓은 뒤 환율을 계산해 그만큼 원화를 찍어낸다. 은행에 쌓아놓은 달러는 국가에서 무역하는 데 쓰고, 그만큼의 돈을 새로 만들어 월급을 주는 등 예산으로 쓴다. 마치 원화가 들어온 것처럼 가정하고 쓰는 것이다. 혹은 굳이 돈을 찍어내는 대신 무현금행표(남한의 자기앞수표에 해당)를 발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오래 누적되면 시중의 통화량은 꾸준히 늘어난다. 예금에 근거해 무현금행표를 발행한다면 이런 문제가 벌어질 리 없지만, 인민들은 예금을 불신해 집에 현찰을 모아놓는다.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니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에 시중에서 달러를 직접 쓰지 못하게 했다. 무조건 환전해서 쓰라는 것이다. 이 역시 통화량을 컨트롤하겠다는 의도다. 모든 상점에서 달러를 그대로 받는 상황에서 개방을 하면 국가가 그걸 감당할 수가 없다. 개인들이 마구 쓰던 것을 정상적인 외화유통체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
▼ 북한 당국이 시장을 폐쇄했다가 후유증이 심각해 다시 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애초부터 시장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쇄라기보다는 화폐개혁 때문에 타격을 입은 돈주들이 장사를 하러 나오지 않아 폐쇄된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또 당국이 30~40대는 시장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 경제에서 장사는 원칙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장사가 더 이익이 많으니까 많은 사람이 근무시간에 시장에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옛날 돈을 묶어버리면 새 돈이 나오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효과가 하루아침에 100%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감기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감기가 나아가는 것은 맞다. 분명 통화경제의 건전성은 나아지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6월9일 단행한 화폐개혁 당시 신권 교환을 위해 은행 앞에 줄지어 있는 인파.
“잘 알다시피 최근에 북한 소식을 주로 전하는 인터넷 매체나 단체와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은 주로 중국 휴대전화를 가진 국경지역 거주자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장사나 무역에 관여한다. 다시 말해 화폐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상황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따지면 1970~80년대 남한에는 얼마나 많은 소요가 있었나.
북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한국 독자들이 원하는 소식만 전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의 왜곡이 심화되는 원인이다.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다. 강연회나 언론에 듣고 싶은 말만 해주면 자꾸 다시 불러주는데 굳이 진실을 얘기할 이유가 있겠나. 해당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은행에서 결제를 올리고 방침을 만들고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몇이나 서울에 와 있겠는가.”
누가 북한 채권을 살 것인가
▼ 앞서 화폐개혁이 개혁 개방을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는가.
“화폐개혁과 함께 최근에 나온 정책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국가개발은행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역시 박정희 모델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화폐개혁이 국내통화를 건전화하겠다는 것이라면, 개발은행은 경제개발을 위한 펀드를 해외에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1월27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국방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대풍국제투자그룹과 국가개발은행(한국의 산업은행에 해당)을 설립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그룹 이사장으로, 국방위원회와 내각, 재정성 등의 주요 각료들이 이사회에 참여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풍 국제투자그룹은 북한의 대외경제협력기구의 역할을 할 것이며 주로 북한 국가개발은행에 자금과 융자를 제공하게 될 계획이다. 대풍그룹의 총재에는 조선족 출신의 사업가 박철수씨가 임명됐다.
“그렇지만 사실 이 부분에서는 북한 당국도 뭘 잘 모르는 게 있다. 해외에서 돈을 모은다고 끝이 아니다. 그걸 종자돈 삼아 회사채든 은행채든 CD를 발행해서 다시 팔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금을 불릴 수 있다. 은행이 예금만 받아서 대출을 해주는 게 아니다. 채권 장사다.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모아서 그걸 지렛대 삼아 예금보다 조금 높은 이자를 주는 채권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다.
개발은행 자체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본금 20억달러 정도면 충분하다. 북한이 지분을 100% 보유하는 대신 컨소시엄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북한이 만드는 채권을 누가 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종자돈은 어떻게든 만든다 해도 그 다음이 어렵다. 남한이나 외국의 은행이 보증인이 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북한의 이름만으로는 개발은행이 성공할 리 없다. 종자돈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굴러가겠지만 그건 금세 바닥이 난다.
북한은 이미 채권을 발행했다가 망한 경험이 있다. 1988년 평양에서 통일채권을 발행해 1억달러어치를 팔았다. 10% 금리로 주로 재일교포들에게 판매했는데, 이렇게 모인 돈을 다시 투자하는 데 쓰는 대신 그대로 써버렸다. 국가가 책임지는 채권이다 보니 지금도 유효하고, 연 복리 10% 이자가 꼬박꼬박 붙는다. 결국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당겨쓴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 됐다.”
▼ 결국 이번에 발표한 국가개발은행 계획도 마찬가지로 진행되리라고 보는 것인가.
“자금유치를 담당하게 될 박철수 총재는 금융 분야 경력이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게 제대로 되겠나. 채권을 발행해 해외에 판매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다. 미국과 우리의 격차만큼 우리와 중국이 차이가 난다. 채권의 해외 판매 같은 프로젝트를 기안하고 진행할 사람이 북한에도 재중교포 가운데도 많지 않다.”
“섣부른 시장화는 개방과 상극”
▼ 다시 정리해보자. 경제를 개혁하겠다는 것은 맞는데, 그게 시장화는 아니라는 뜻인가.
“아주 장기적으로는 시장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본다. 다만 지금은 그 시작이다. 한국도 처음부터 시장경제를 제대로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자본이 축적돼 있어야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가능하다. 그러한 초기 세팅에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 주도가 불가피하다. 이른바 국가주도형 경제다.
북한은 지금 경제를 다시 세팅하려는 것이다. 이전 상황에서는 국가가 특정한 방향으로 경제를 컨트롤하며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개방을 하려 해도 일단은 계획경제적 컨트롤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이번 화폐개혁의 정의다.
한국 사람들은 개혁 개방을 말하면 시장경제 도입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조치가 그와는 반대된다고 보고 개혁 개방이 후퇴한다고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뒤집어 놓고 생각해보자. 마구잡이 상황을 놔두면 개방은 더욱 어려워진다. 개방을 하려면 먼저 고삐를 틀어쥐어야 한다. 30~40대 젊은 인력들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국가주도의 개혁 개방이란 불가능하다. 시장 활성화만 불을 켜고 보는 남한에서는 후퇴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당연한 수순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 처음 개혁 개방을 결정하고 나서 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웠고, 성공했다. 계획경제의 강력한 주도권하에서 성사된 일이었다. 큰 걸 팔아서 돈이 들어오면 그걸 자본 삼아 작은 걸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국가가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개방의 길로 나간다.”
▼ 계획경제가 무너져가는 것을 추스르는 것은 맞는데, 개방화된 계획경제, 개발주도형 계획경제를 위한 출발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건가.
“북한의 화폐개혁이나 개발은행에는 더 큰 목적이 있다. 국가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 이걸 앞으로 어떻게 불릴지 구상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다. 그 구상이 바로 개방이다. 더 크게는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후계자를 세우려면 뭔가 상황을 크게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6자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이뤄지면 미국에서 돈이 들어올 것이다.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400억달러 규모라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2009년 7월 ‘블룸버그’와 ‘파이낸셜타임스’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밝힌 대북 포괄적 패키지 구상과 관련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그 대가로 40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주는 방안’이라고 보도했다). 그 돈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를 재건하는 종자돈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걸 레버리지 삼아 경제개발을 위한 밑바닥을 다지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를 미국이 보장한다면, 특히 김정은 체제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평양으로서도 충분히 결심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커트 캠벨의 400억달러
평양의 권력 핵심이 경제 문제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취해진 일련의 조치 뒤에 일종의 ‘중대 결심’이 있다는 관측의 근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1월9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으로 요약되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최단기간 안에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지금 우리 당은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을 안아오기 위한 웅대한 구상과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그런 큰 그림을 그려놓고 화폐개혁과 개발은행 설립을 단행한 것이라면, 그건 누구의 작품이라고 보는가.
“어느 한 조직이 단일하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화폐개혁이나 개발은행 같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내각 재정상, 중앙은행 총재가 책임지고 진행했을 것이다. 내각 경제참사들이 입안해 올린 것을 당에서 함께 검토해 결정했을 것으로 본다. 그보다 상위의 개념, ‘후계체제와 맞물린 공화국의 개혁과 개방’이라는 큰 그림은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의 서기실에서 그렸을 것이다. 그걸 김 위원장이 승낙했고, 다시 내각 참사들에게 내려서 화폐개혁의 실행방안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봐야 옳다.”
▼ 그런 그림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3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6자회담 통해 핵문제 타결짓고 후계체제 마무리하는 시점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계자를 정식으로 임명하자면 인민들을 잘살게 해줘야 한다. 2012년 강성대국에 관한 담론이나, 김 위원장이 말한 쌀밥에 고깃국 이야기도 그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돈이 들어와 돌기 시작하면 경기는 금방 좋아진다. 갖가지 개발 프로젝트가 모두 진척돼야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착수해서 투자협정을 맺고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우선 돈부터 들어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기업이 우선 상징적으로 투자했다고 생각해보자. 북한에는 금광이나 철광, 석탄 같은 자원이 있다. 흑연은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2위고, 그나마 생산국가가 극히 적다. 이걸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너도나도 뛰어드는 국면이 올 수 있다. 몽골만 해도 북한에 비해 자원이 더 풍부한 것도 아니지만 외국자본들이 경쟁적으로 투자에 나선다. 한국이 지금 북한은 망해간다고 생각하며 팔짱만 끼고 있으면 기회는 오지 않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다면 그게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한다. 북한이 개발프로세스를 제대로 굴리자면 금융 분야의 전문성 있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각종 금융상품과 파생상품이 모두 도입돼야 한다. 그렇듯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을 한국에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본다. 오히려 식량지원보다 더 솔깃한 제안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