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녹화장치 제조업체 아이디스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이 바뀌던 시점에 시장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우수한 기술력으로 승부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벤처기업으로 창업한 지 10년 만에 일궈낸 성과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아이디스는 DVR 분야 세계 1위에 머물지 않고 종합 보안 솔루션 업체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아이디스 ‘쇼룸’에서는 건물 내외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언의 목격자, DVR
“부산 사격장 화재 원인 오리무중”(노컷뉴스 11월16일), “부산 사격장, 화재 원인 `담뱃불` 급부상”(매일경제 11월16일), “부산사격장 화재 원인’분진폭발’?”(연합뉴스 11월19일) 등 화재 원인을 둘러싼 언론 보도도 엇갈렸다. 이 사건에 대한 전말은 ‘무언의 목격자’를 통해 세상에 그 진상이 알려졌다. 사격장에 비치돼 있던 8대의 CCTV를 통해 촬영된 화재 당시 영상이 녹화장치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
부산 사격장에 있던 디지털녹화장치는 아이디스가 10년 전인 1999년 납품한 PC 기반의 초기 제품이었다. 고장 없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쉬지 않고 영상기록을 녹화해왔기에 화재 당시 장면을 복원해낼 수 있었던 것. DVR(Digital Video Recorder·CCTV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하여 저장하는 디지털 영상 저장장치)에 녹화된 CCTV 영상을 복원해 화재 원인 분석에 활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사건 수사를 종결한 뒤 공로를 인정해 아이디스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DVR의 내구연한은 보통 4년에서 5년 정도 됩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이상 없이 작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품질 면에서 확실하게 검증을 받은 셈이라 뿌듯하기도 했습니다만, 가급적 내구연한을 지켜 사용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아이디스 김영달 사장)
부산 사격장 화재 원인 규명 외에도 아이디스 제품 덕에 범죄 용의자를 검거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2007년 울산 주유소 ‘폭주족 습격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의 용의자 10대 폭주족들은 주유소에 설치된 아이디스 DVR에 기록된 영상 분석을 통해 검거됐다. 2006년 10월 국민은행 PB센터 VIP룸 권총강도 사건 역시 아이디스의 고화질 영상기록 덕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사건, 사고 현장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 곳곳 어디에서든 아이디스 DVR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시중 은행의 약 80%가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은행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디스 DVR에 그 모습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은 아이디스 건물 3층에는 ‘쇼룸’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아이디스 건물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모니터를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보안장비가 단순히 화면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물체의 이동을 감지해서 알려주거나, 새로운 물체가 카메라에 잡힌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경고음을 울리는 등 훨씬 ‘스마트’해졌다고 한다. 신홍인 품질보증팀 부장은 “모니터를 오랫동안 주시하고 있으면,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같은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상을 비춰주는 화면의 테두리 색깔이 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디스 건물 외곽 도로변을 비추는 화면에서 택시나 자동차 등 물체가 이동할 때에는 빨간색으로 테두리가 변하고,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을 때에는 녹색으로 변했다. 아이디스 DVR은 한꺼번에 여러 곳의 상황을 점검해야 하는 공공건물 등에 주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인천공항과 강원랜드, 코엑스, 공항터미널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 아이디스 DVR은 더 유명하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뉴욕 지하철, 중국의 푸둥 공항, 호주의 오페라하우스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해외 유명 시설에 아이디스 제품이 설치돼 있다.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 80% 이상
아이디스 직원들이 최첨단 디지털녹화장치를 생산하고 있다.
아이디스가 해외에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시드니올림픽을 1년여 앞둔 1999년, 호주 DVR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파콤(PACOM)사는 아이디스와 협상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미국 파트너사 하이트론시스템즈도 참여했다.
100여 개의 요구 조건을 하나씩 검토해 나가는 협상 과정은 쉽지 않았다. 13시간이 넘도록 협상은 계속됐다. 그럼에도 아이디스는 파콤의 요구 조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NO’라고 거절하지 않았다. 당장 수용하기 힘든 부분은 중요도와 개발 기간 등을 고려해 당장 적용할지, 3개월 혹은 6개월 후 다음 버전에서 적용할지를 협의했다. 구현 가능성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도 ‘꼭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실한 협상 끝에 적은 물량이지만 호주 시장에 첫 수출의 물꼬를 트게 됐다. 파콤은 시드니올림픽 주경기장에 아이디스 제품을 사용해 안정적인 올림픽 운영의 일등공신이 됐고, 이를 계기로 아이디스 제품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게 됐다.
해외 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뗀 아이디스는 이후 허니웰(Honeywell)사의 ADEMCO VIDEO, 티코(TYCO) 사의 ADT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1999년 삼성전자와 DVR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국내 굴지의 보안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2003년 이후에는 자체 브랜드로 국내 대리점망을 구축했다.
국내 CCTV 주요 업체들을 방문하며 영업을 시작했을 때 초기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고 한다. 게다가 신용거래가 관행이던 시기에 대기업 계약조건과 같은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 어이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안정적인 가격정책과 현장 중심의 고객지원, 품질에 대한 신뢰라는 아이디스만의 장점을 앞세워 서서히 시장을 장악해나갔고, 2006년부터는 국내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했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DVR 분야 세계 1등 기업에 올라선 아이디스는 창업 과정도 남달랐다. 김영달 사장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1995년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창업을 본격적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사업 아이템 ‘원칙’ 만으로 창업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기업의 주 무대는 세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술기반의 글로벌 기업이 거의 없었는데, 한국이 더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그런 기업이 많이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연구 외에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차별화된 기술로 세계무대에 진출한 이들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창업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김 사장은 1997년 KAIST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우리도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최악의 침체기로 접어들 때였지만 이들의 창업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특기할 것은 사업 아이템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을 먼저 했다는 점이다. 다만 사업 아이템의 원칙만은 확고하게 세워뒀다.
아이디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은바로 기술력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달 사장은 KAIST 경비실 한쪽 구석에 CCTV용 녹화 비디오테이프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비디오테이프로는 최대 녹화 시간이 12시간밖에 안 될 텐데…. 게다가 녹화 자료를 검색하려면 일일이 화면을 찾아야 될 테고….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 녹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녹화된 화면을 검색도 하고 재생도 할 수 있다면?”
순간 그는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다!”
세상은 바야흐로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도기였다. 감시 시스템도 머지않아 디지털로 전환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이 섰다. 곧바로 회사 이름을 아이디스(Intelligent Digital Integrated Security)로 정하고, 법인 설립 신고를 했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똑똑한 디지털 통합 보안회사’가 지향점이다.
최악의 경제 상황, 거기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사업 아이템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그들을 막진 못했다. 오직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수요에 걸맞은 첨단 제품만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믿음으로 도전에 나섰다. 17평(약 56㎡)짜리 아파트에서 대덕대학교 내 대전소프트지원센터로 옮기기까지 법인 설립 신고 후 한 달 새에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밤을 새워 일하기가 일쑤였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1년 여 만에 IDR1016을 필두로 아이디스의 DVR 제품이 탄생했고, 국내외 시장을 선점해나가기 시작했다.
코스닥에 등록해 기업을 공개하는 과정 역시 창업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창업한 지 3년이 지난 2000년, 매출액 80억원을 돌파한 아이디스는 본격적으로 기업 공개 준비에 돌입했다. 1년여 준비 끝에 2001년 9월말을 상장 예정일로 잡았다. 그런데 상장을 2주일여 앞두고 9·11테러가 발생했고, 불안에 휩싸인 전세계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공모주 시장 역시 꽁꽁 얼어붙었고 누구도 감히 상장을 강행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디스와 비슷한 시기에 상장을 준비하던 회사들이 상장을 미뤘다. 그러나 아이디스는 ‘세계 금융시장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회사의 본질가치에 대한 평가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상장을 강행했다. 당시 아이디스와 비슷한 시점에 상장을 강행한 회사는 안철수연구소밖에 없다. 2001년 9월27일, 회사가 설립된 지 만 4년 만에 코스닥 시장에 등록됨으로써 공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아이디스는 2002년과 2004년, 2년 연속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베스트 중견기업에 들었고, 2008년에는 코스닥 대상 최우수 경영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작지만 강한 기업, 즉 ‘강소(强小)기업’이 된 것이다.
매출액 10% 이상 R·D 투자
아이디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은 바로 기술력이다. 아이디스는 창업 초기부터 ‘R·D(연구개발)중심회사’를 표방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2008년말을 기준으로 직원의 업무별 분포를 보면 연구 인력이 전체 직원의 4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생산직으로 30%를 차지한다. 영업직은 전체의 12%, 관리직은 12%로 영업직과 관리직을 합쳐도 연구 인력보다 적다. R·D 인력의 43%는 석·박사급이다. 매년 평균 매출액의 약 10%를 R·D 비용으로 투입하고 있고, 2008년까지 평균 14.4% 증가율을 보였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아이디스 사옥.
2002년 여름, ‘ADR100’ 600여 대를 긴급하게 재작업할 일이 생겼다. 당시 작업 공간이 부족해 큰 강당을 빌려 작업에 들어갔는데 일주일 일정을 2.5일 정도 앞당겨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한창 마무리 정리 작업 중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메인 보드에 들어 있어야 할 배터리 하나가 발견된 것이다.
어떻게 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론은 “아이디스 제품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다시 뜯어서 그 하나를 찾아내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결국 박스를 뜯고 포장재를 벗겨내고, 복잡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6번째 박스에서 배터리가 빠진 제품을 발견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술력이 바탕이 된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곧 마케팅으로도 이어졌다. 기술 개발 중심의 아이디스가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제품을 파는 것은 인적, 시간적 낭비였다. 그렇다고 제품만 개발하고 마케팅이나 관리, 생산을 모두 대기업에 맡기는 종속 형태의 회사 경영으로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이디스는 마케팅 전문회사들과 긴 협상을 통해 마케팅의 일정 부분을 제휴 형태로 아웃소싱하는 협정을 맺었다. 즉 아이디스는 대기업 파트너의 요구를 반영하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파트너는 영업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윈-윈 방식의 사업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해외 마케팅 역시 철저히 현지 유통업체와 협력한다는 전략으로 마케팅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아이디스의 세계 시장 진출은 제조업자 개발 생산, 또는 제조업자 설계생산이라고 번역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ODM 방식은 제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해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생산 형태를 말한다. 유통업체는 자사에 맞는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유통에 핵심역량을 집중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문자상표부착 생산방식 OEM과 구별된다.
ODM은 주문자가 건네준 설계도에 따라 단순히 생산만 하는 OEM 방식과는 달리 판매업자가 요구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서 납품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다.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자체 개발한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판매할 경우 개발 로열티를 받을 수 있고, 부품을 구매할 때도 제조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원가를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되는 고부가가치형 생산체제로 평가받는 생산방식이다.
1998년 3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1999년에 23억원으로 늘었다.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고 개발인력 중심의 가벼운 조직을 운영한 덕분에 영업이익률도 40%대를 유지했다. 국내시장은 대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해외에서는 하이트론시스템즈와 헤이그를 통해 벤처기업에 가장 큰 걸림돌인 마케팅 문제를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했다.
종합 보안전문 그룹 포부
보안시장 조사기관들은 보안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춰볼 때 향후 시장의 성장 여력이 지금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후발업체들이 저가로 시장을 공략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격보다는 고객을 위한 기능이나 편의 제공에 중점을 두고 영업을 해온 아이디스는 확대되는 저가 DVR 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한 DVR 단품만 찾는 고객은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대신 DVR을 중심으로 한 솔루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아이디스가 DVR 분야에 머물지 않고 영상 보안, 출입 통제, 홈시큐리티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종합 보안 전문 그룹 체제로 전환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도 변화하는 시장의 수요를 반영한 결과다.
무모해 보이는 창업 과정이나 해외시장 판로 개척에 처음 나섰을 때에 비하면, 지금 아이디스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지위는 확고한 편이다. 그러나 더 높은 목표, 더 큰 꿈을 성취하기 위해 아이디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만들어가는 자의 몫이다’는 얘기는 아이디스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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