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인심이 살아있고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생태의 보고 순천이 에코투어(녹색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순천을 찾은 관광객들은 흑두루미가 날고 짱뚱어가 뛰는 생태수도 순천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겨울의 진객 흑두루미
순천만 중앙에 있는 들녘 대대들에는 큰 새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순천만의 귀한 손님(진객·珍客)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다. 흑두루미는 학이라고 불리는 두루미 5개종 가운데 하나다. 흑두루미는 몸짓이 크고 화려하며 우아하다. 러시아 시베리아와 우수리강, 아무르강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에서 겨울을 난다.
흑두루미는 순천만 철새 도래지를 찾는 철새 가운데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키는 1m, 양 날개를 편 길이가 2m 정도로 순천만 철새들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 흑두루미는 논에 흩어진 낟알을 쪼아 먹거나 갯벌에서 조개, 짱뚱어를 잡아먹는다. 간혹 순천만에 독수리가 나타나지만 의외로 철새들은 평온하다. 덩치 큰 흑두루미 무리 아래서 평화가 지켜진다. 또 순천만 독수리나 큰말똥가리, 쇠황조롱이는 동물 사체를 먹고, 노랑부리저어새는 물고기를, 개리는 갈대 뿌리를 먹고 산다. 각자의 먹이사슬이 다르다.
김인철 순천시 철새담당은 “흑두루미가 순천만 철새들의 공존 공간의 꼭대기에 있다”며 “간혹 나타나는 독수리조차 흑두루미가 만들어놓은 평화를 깨지 못한다”고 말했다. 흑두루미는 또 철새들의 쉼터이자 식량창고인 순천만의 논이나 갯벌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생태 다양성의 기준이 되고 있다.
철새 낙원 된 순천만
흑두루미 가족이 순천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96년 11월16일. 당시 순천만에서 겨울을 지낸 흑두루미는 모두 59마리였다. 올해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모두 440마리로 14년 만에 7.4배가량 늘어났다. 특히 올해에는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11마리와 천연기념물 405호인 검은목두루미 5마리도 함께 왔다. 이로써 순천만을 찾은 두루미는 3개종 456마리에 달하고 있다.
순천만은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이즈미(出水)시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흑두루미 서식처다. 김진한 국립생물자원관 조류연구담당은 “순천에서 편안하게 겨울을 보낸 흑두루미들이 친구들을 계속 데려오고 있다”며 “흑두루미 북방한계선인 순천만은 5년 안에 흑두루미 1000마리가 겨울을 나는 철새 낙원이 될 것”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관은 “일본 이즈미시에는 너무 많은 흑두루미가 몰리고 있다”며 “순천만이 적정한 흑두루미 개체수를 유지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서식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흑두루미 이외에 희귀 철새들까지 순천만을 찾아오면서 이제 순천만은 명실상부한 철새 낙원이 되고 있다. 노랑부리저어새, 개리 등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는 희귀철새는 2007년 6종 400마리에서 올해에는 16종 900마리로 증가했다. 올해 순천만은 철새 85종 1만800여 마리가 월동을 할 정도로 새들의 천국이 됐다.
전봇대 뽑기 프로젝트
세계 5대 연안습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순천만은 2006년 1월 국내 연안(갯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습지보호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순천시와 시민들은 이를 계기로 순천만의 자연을 더욱 풍요롭게 살리기 위한 친환경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친환경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으면서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 수가 부쩍 늘었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전봇대 283개 제거작전을 벌였다. 순천만 친환경 프로젝트의 백미(白眉)인 전봇대 뽑기의 첫 난관은 농민들의 반발이었다. 순천시 공무원은 전봇대 뽑기 설명회를 진행하다 흥분한 농민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전봇대를 뽑아 농사도 못 짓게 하려 한다”며 격앙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차츰 “전봇대를 뽑고 친환경 쌀을 재배해 흑두루미가 살 수 있는 순천만을 만들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진심 어린 설득을 받아들였다.
최덕림 순천시 경제환경국장은 “한전에서 순천만 전봇대를 뽑는 것을 반대하자 농민들이 스스로 전기사용 철회 신고서를 냈다”며 “농민들이 순천만을 살찌우는 일등공신이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흑두루 영농단을 결성해 흑두루미 안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흑두루 영농단은 지난해 봄 순천만 들녘 60㏊(약 18만평)에 일반 쌀과 검정쌀을 함께 심었다. 가을이 되자 순천만에 거대한 흑두루미 그림이 그려져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했다.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쌀 250t을 수확해 50t은 철새먹이로, 남는 200t은 관광객에게 판매했다. 들녘에는 볏짚을 썰어 그대로 나둬 철새 둥지로 제공했고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갈대로 만든 350m 길이 불빛 차단막도 설치했다.
친환경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6년 당시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은 32만명이었다. 친환경 프로젝트가 열매를 맺으면서 관광객 수는 부쩍 늘었다. 2007년 180만명, 2008년에는 262만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33만명이 순천만을 다녀갔다. 지난해 신종 플루 여파로 순천만 갈대축제가 진행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방문객 수가 증가한 것이다.
순천만 탐방객이 늘면서 인근 식당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순천만 입구에서 장어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서구원(56) 대대선창집 사장은 “흑두루미 개체수가 늘면서 외지 손님이 서너 배 늘었다”며 “생태보고 순천만이 지역 경제를 살찌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순천시는 흑두루미 경제파급효과가 연간 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생태수도 매력에 관광객 대폭 늘어
순천만에서 북쪽으로 30㎞를 가면 조계산(884m) 품에 천년고찰 송광사와 선암사가 안겨 있다. 송광사는 고려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곳으로 국가나 임금의 스승이 되는 국사(國師) 16명을 배출한 삼보(三寶) 사찰 중 하나다. 조계산 동쪽 기슭에는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중창한 태고종 본산 선암사가 있다. 순천시는 이밖에도 향림사를 비롯해 정혜사, 동화사 등 많은 사찰과 국가지정 문화재 62점을 보유한 문화의 도시다. 또한 고인돌 공원에서는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선사시대 순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순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22㎞ 가면 22만㎡(약 6만8000평) 넓이의 옛 성이 나온다. 조선시대인 태조 6년(서기 1397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은 낙안읍성이다. 인조 때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흙성 위에 다시 돌을 쌓았다. 3m 높이 1395m 길이의 성곽 위를 둘러싸는 고추줄 엮기에 성공해 세계기록도 세웠다. 낙안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낙풍루 등 조선시대 관아 92채가 있고 초가집 등 옛날 가옥 216채가 남아있다.
낙안읍성을 찾은 관광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즐거워한다. 저녁이 되면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 오른 연기가 낙안읍성을 뒤덮는 데, 마치 시간이 멈춰선 기분마저 들게 한다. 순천시 왕조동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도 관광객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SBS ‘사랑과 야망’이나 MBC ‘에덴의 동쪽’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곳이다.
공용자전거 온누리
순천시는 지형이 평평한데다 시내를 따라 남북으로 흐르는 동천이 순천 도심에서 순천만까지 연결돼 둑이나 둔치에 자전거도로가 발달해 있다. 관광객들은 순천 시내 5개 보관대에 비치된 공용자전거 온누리를 타고 순천만을 둘러볼 수 있다. 관광객은 1000원만 내면 하루 동안 자전거를 타고 순천 관광을 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순천만, 낙안읍성, 송광사·선암사, 드라마 촬영장을 돌아보는 시티투어도 매일 진행되고 있다.
에코투어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2층 버스를 타고 1박2일간 순천’을 도는 것이다. 순천만에서 펼쳐지는 갈대소리 포크페스티벌이나 낙안읍성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등 느긋함을 만끽할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순천에는 남도의 맛을 자랑하는 전통 한정식집이 즐비하다. 한상 가득 차려지는 한정식은 게장, 홍어삼합, 주꾸미, 꼬막, 젓갈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나물, 구이, 고기요리가 함께 나온다. 특히 순천만 인근에서는 짱뚱어탕과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국제정원박람회
순천만과 도심 중간지역 152만7000㎡(약 46만평)에는 다양한 국제정원이 꾸며진다. 생태보고 순천만과 도심 사이에 거대한 생태정원이 조성되는 것이다. 순천시는 이달부터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 부지에 대한 토지보상 업무를 시작했다. 박람회장에는 꽃과 화초류 1000만본이 심어져 상습 침수 저지대가 거대한 숲과 꽃동산으로 변한다. 순천시는 박람회가 열리는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관광객 468만명이 순천을 찾아 466억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람회가 끝나면 순천은 세계 최고의 생태정원을 보유하는 명품도시가 돼 명실상부한 생태수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