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바타’가 전세계를 홀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 영화의 내용보다는 얼마나 입체적인지, 얼마나 실감나고 환상적인지를 이야기한다. 미래에 펼쳐질 3차원 가상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지 미리 들여다봤다.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연일 ‘아바타’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교황이 ‘아바타’는 자연 숭배와 정령 숭배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의 보수진영은 미국의 군대와 군사 정책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제 평면으로 보는 기존의 영화는 한물가는 거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대로 된다면 영화의 역사는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3D 영화를 보는 필수 도구인 안경이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대신 전통적인 색안경을 끼고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한다. ‘아바타’에서 세밀하고 환상적인 영상을 제거하면 곳곳에서 표절과 짜깁기의 흔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캐머런이 자랑하는 3D 기술과 모션 캡처 기술이란 이미 알려진 것을 개선한 것일 뿐이라는 말도 따라붙는다. 낯선 세계로 간 문명인이 원주민에게 동화되어 그들을 위해 싸운다는 줄거리만 빼면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것의 조합과 개선 역시 창조의 일부다. 그러한 창조적인 실험이 인류에게 즐거움을 주고 세상을 바꾸어나갈 수도 있다. 사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을 자랑하는 최근의 SF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SF소설의 애독자라면 오래전에 접한 것들이다. 다만 소설의 독자는 한정되어 있지만 영화의 관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영화는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편히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진정한 대중매체다. 이제는 ‘세상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는 말 대신에 ‘세상을 바꾼 한 편의 영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다.
“‘아바타’나 ‘매트릭스’에 나온 내용이 오래전에 책에 실린 것”이라고 말한들 의미가 없다. 스토리가 첨단의 촬영 기법, 컴퓨터 그래픽, 3D 기술이라는 옷을 입고 수천만명의 눈앞에 등장하면 그것은 이미 기존의 스토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강력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가상의 현실이 치료를 한다
3차원 입체영상을 구현해내는 기술은 다가오는 미래에 고도로 발달할 것이고 대중화할 것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10’에서 단연 최대의 화두는 ‘고화질 3D TV’였다. 이미 세계 가전업계에서는 3차원 TV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삼성전자, LG전자는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주요 방송사가 3D 화면을 전국에 송출하고 수많은 가정의 거실과 안방에서 3D TV로 이를 시청하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가상의 현실을 진짜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은 여러 방향에서 개발되고 있다. 시각적으로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은 ‘아바타’로 충분히 보여주었다. 더욱 더 현실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시각 외에 촉각, 청각, 후각도 동원된다. 가상의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은 건축, 군사, 예술,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락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가상의 현실이 컴퓨터 게임 중독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가상의 현실이 올바른 현실 감각을 키워준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예컨대 가상의 현실은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간혹 겪는 만성 통증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통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심해지는 경향인데 이러다보면 환자는 실제로는 미약하거나 있지도 않은 통증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가상의 현실은 환자의 뇌가 다른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그런 몰입을 방해한다.
또한 가상의 현실은 비행기, 거미, 엘리베이터 같은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준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을 가상의 현실을 통해 조금씩 접하게 하면 공포가 줄어든다. 심지어 화를 억제하지 못하는 아이는 가상의 현실 속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게 되어 문제점을 깨닫게 된다. 정상적인 아이도 가상의 현실을 구현하는 컴퓨터 게임에서 다른 아바타들과 함께 놀고 배우면서 사회성을 익힐 수 있다. 가상의 현실이 실제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부모는 만화에 대해 자녀의 공부를 방해하는 주적(主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만화는 가장 유용한 학습 도구 중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지금 많은 부모의 공분을 사고 있는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3차원 영상을 장착한 훌륭한 교육·치료 수단으로 지위가 상승할 수 있다.
3D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TV 수상기라는 고정된 프레임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가상현실의 극단적인 구현은 사람이 ‘화면 속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처럼 실제 세계와 유사한 가상 세계(일종의 거대한 세트장)를 만들어놓고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는 엄청난 물리적 공간과 비용을 발생시킨다.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는 의식’인 것이다.
‘화면 속 세계’로 들어가기?
따라서 ‘가상 세계로의 초대’는 사람의 의식을 실제 세계에서 분리해내어 전기적 자극 등을 제공함으로써 가상의 세계에 들어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오감(五感)으로 실제의 세계와 거의 똑같은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된다. 시각적 3차원 세계의 구현은 기본이고 여기에선 스테이크 요리를 먹을 때 고기의 질감과 맛을 느낄 수도 있고, 살아서 움직이는 매력적인 이성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거대한 가상 세계 프로그램인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것과 같은 이러한 일은 과학의 발달에 의해 가능한 일일까.
‘아바타’에서 관객은 사실상 이중으로 가상 세계로 들어간다. 입체 안경을 통해 평면 스크린이 3차원 화면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설리의 의식은 몸에서 분리되어 아바타로 들어가는데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관객도 설리의 아바타를 통해 판도라 세계를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영화에선 사람의 의식이 옮겨가는 게 가능하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은 컴퓨터로 구현된 가상 세계를 인터페이스를 통해 접촉할 수 있는 정도다. 입체 안경보다 조금 더 진화했다고 보면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가상 세계 덕분에 우리의 기대 수준이 한껏 높아져 있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의 뇌와 가상 세계를 구현해내는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바타’에서는 뇌에 센서를 붙이는 것으로 접속했다. 이런 방식은 ‘가상공간’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가 나온 뒤부터 SF소설에 단골로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좀 덜 무서운 방식을 고안했다. 신경세포의 활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내보내는 미세한 전자 칩을 뇌에 삽입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뇌 속으로 무언가를 집어넣지 않고 뇌파와 혈액 흐름 등 겉으로 나타나는 신호를 포착해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신호로 의족이나 의수를 움직이거나, 텔레비전을 작동시키거나, 로봇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로봇 팔을 들어올리고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것 같은 초보적인 성과는 이미 나왔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자동차를 몰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이다.
뇌 연구와 영혼의 이동
문제는 현대 과학이 아직 뇌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뇌 분야 학문은 급격히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했다. 뇌는 매우 복잡한 신체기관이다. 로봇 팔을 들어올리는 간단한 일은 뇌파 신호로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을 세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하다가는 뇌가 지치고 말 것이다. 우리 몸은 뇌를 그렇게 혹사시키지 않고도 뇌의 명령을 잘 따른다. 뇌가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수월하게 다른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 그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아바타’에서 설리의 정신이 아바타로 옮겨가는 것은 옛날이야기로 치면 ‘빙의(憑依)’에 해당한다. 빙의는 샤먼들이 주로 시도하던 방식이었다. 이들은 죽은 영혼을 불러올 때 자기 몸을 빌려주기도 했고 혹은 동물의 몸에 빙의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혼이란 과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과학은 ‘의식’이나 ‘자기’라는 표현을 택할 것이다.
‘아바타’에서는 사람이 어떤 공간에 들어가 누워 있으면 의식이 옮겨간다. 거꾸로 누워 있는 사람을 깨우면 의식은 아바타에게서 사람으로 돌아온다. 아바타는 사람과 판도라 행성 주민인 나비족의 DNA를 조합해 만든다고 되어 있다. 설리의 아바타는 원래 형의 것이었지만, 형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대신 설리가 사용한다. 형과 DNA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사람이 설리밖에 없으니 설리가 불려온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의식은 뇌 활동의 산물이다. 뇌는 신경세포들이 그물처럼 얽힌 기관이다. 신경세포들의 활동은 전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신경세포가 활동 전위라는 전기를 보내면 이어져 있는 신경세포들에 전기가 통하면서 연쇄적으로 신경세포들이 활성을 띤다. 그것이 바로 뇌 활동이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는 시냅스라는 부위에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신경전달물질은 인접한 신경세포로 활동 전위를 전달하거나 차단하는 일을 한다. 으레 그렇듯이 신경세포들과 신경전달물질의 생성과 작용은 DNA와 환경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10’에서 3D TV는 큰 인기를 끌었다. 전시회 모델들이 LG전자 3D TV를 홍보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개인의 유전자는 공격성, 외향성, 우울증 등 인격의 여러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특성들은 뇌 속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의 종류, 양, 활성 정도, 분해속도 등을 매개로 하여 나타난다. 내 유전자를 지닌 존재는 뇌세포들의 배열, 뇌의 단백질 활동이 나와 비슷한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바타의 뇌 상태를 내 의식에 맞게 동조시키는 일이 더 수월할 수 있다. 유전자가 비슷해야 아바타를 조종할 수 있다는 설정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다른 몸으로 의식을 옮기는 것은 로저 젤라즈니가 쓴 SF소설인 ‘신들의 사회’(1967)에서 잘 다루어져 있다. 소설에서 파괴된 지구의 생존자들이 낯선 별로 간다. 그들은 원주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화학요법, 생명공학, 전자공학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힌두교에 나오는 칼리, 야마 등으로 신격화한다. 다른 몸으로 의식을 옮기면서 영원히 사는데 그것을 환생이라고 부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오사이 마모루는 컴퓨터와 로봇 기술의 발전에 자극받아 의식이 옮겨가는 대상을 인간에서 전자두뇌로 바꾸었다. 의식을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로 옮기거나 전자 칩 안에 저장한다는 이야기도 소설과 영화에서 나왔다.
그러나 ‘스타트렉의 물리학’(1995)이라는 책을 쓴 이론물리학자 로렌스 클라우스는 의식의 저장이나 이동 같은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다. 사람의 의식이나 자아를 인터넷이나 칩 같은 전자 매체로 옮기려면 그것을 스캔하여 0과 1의 서열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보의 양이 실로 엄청나 저장하려면 지구에서 은하수 중심까지의 거리의 3분의 1을 100기가짜리 하드드라이브로 채워야 한다고 한다.
더욱이 현재의 전송 속도로는 이만한 정보를 다 보내려면 우주의 나이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또한 의식은 뇌를 비롯한 몸과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몸의 정보 없이는 의식이 온전히 전송될 리 없다. 설리의 의식이 아바타로 옮겨갈 때 무선으로 전송되는 듯한데 전송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모양이다.
3차원 영상이 더 편하다
많은 관객은 ‘아바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래전에 본 입체 영화나 아이맥스 영화를 염두에 뒀다. 바위가 눈앞으로 굴러오거나 오토바이가 바로 앞에서 끼익 멈추면서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바타’는 그럴 의도를 갖고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대신 관객은 시간이 흘러 3차원 영상에 익숙해지자 3차원이라는 것 자체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됐다.
‘아바타’는 실제처럼 세밀한 3차원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보면 실제 현실이 3차원이므로 3차원 영상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2차원 평면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눈은 본래 3차원으로 시각정보를 처리하게 되어 있다. 두 눈이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2차원 영상은 과학기술이 지닌 한계 때문에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는 2차원 영상을 보면서도 뇌는 3차원으로 해석한다. 단지 종이에 12개의 직선으로 그린 정육면체를 볼 때도 우리는 이를 3차원 정육면체로 인식한다. 지금 우리는 2차원 TV에 친숙해져 있지만 3차원 TV가 보편화하면 오히려 3차원 영상이 보기에 더 편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과학은 안경 착용의 불편함 문제는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과학자들은 사람이 자면서 꾸는 꿈은 컬러가 아닌 흑백이라고 여겼다. 색깔은 눈에 빛이 닿았을 때 지각되는 것이므로 눈을 감고 자면서 꿈을 꿀 때에는 흑백일 수밖에 없다는 이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이론이 옳다면 꿈에는 흑백도 없어야 한다. 컬러는 눈의 망막에 있는 원뿔세포에서 지각하고 흑백은 같은 망막에 있는 막대세포에서 지각하는데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당신의 꿈은 흑백인가 컬러인가
2008년 영국 던디 대학교의 연구진은 ‘흑백 꿈’ 이론을 반박하면서 25세 이하의 사람들은 거의 다 컬러로 꿈을 꾼 반면 어릴 때 흑백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55세 이상의 사람들은 종종 흑백으로 꿈을 꿨다고 했다. 55세 이상이면서도 어릴 때 컬러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사람의 경우엔 약 7%만 흑백으로 꿈을 꿨다고 한다.
연구진은 3~10세에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감정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의식 속에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것이 일생을 통해 꾸는 꿈의 색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흑백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이가 컬러로 꿈을 꿨다는 증거가 있으며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어떤 사람은 꿈도 컴퓨터 화면을 보는 식으로 꾼다고 했다.
TV나 영화가 보여주는 가상의 현실은 우리의 의식과 이미 깊은 상호작용을 맺고 있으며 실제 현실에서 의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