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자 중에는 골프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경영자들은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다. 바쁜 비즈니스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은 경영자가 골프를 한다. 특히 한국 골프장은 종합소통의 장이다. 옛날 오일장이 만남과 교환의 문화공간이었듯이 우리나라 골프장은 주말마다 열리는 만남과 소통의 장날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골프 약속을 잡을 때도 누구와 함께할까가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오늘은 환상적인 라운드가 될 것 같네요. 멤버 좋고 날씨 좋고 골프장 좋고 캐디까지 좋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환상적 라운드의 우선순위는 동반자-날씨-골프장-캐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골프 칼럼니스트들끼리 모여 가끔 간담회를 갖고 있는데 얼마 전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사람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프로선수는?’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연예인은?’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정치인은?’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명사는?’ 같은 이야기였다.
이날 전반적으로 볼 때 인기가 높은 몇 사람이 있었다. 프로선수 중에는 단연 양용은 선수의 인기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PGA 메이저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극적인 우승을 한 영향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타이거 우즈와 라운드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여러 명 나왔다는 것이다. 여자 선수 중에는 미셸 위 선수가 가장 인기가 있었고 신지애, 최나연 그리고 서희경 선수 등이 자주 거명되었다.
연예인 중에는 남자로는 배용준, 이병헌, 송승헌, 홍요섭, 김영철씨 등이 인기가 있었고 최불암 선생과 라운드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 연예인으로는 김태희, 이영애, 전인화, 전지현씨 등이 인기가 높았다.
이들 중 나는 배용준씨와 수년 전 두 팀이 함께 라운드해본 적이 있는데 드라이브 비거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장타여서 감탄한 바 있다. 짧은 파 5홀에서는 종종 투 온을 시키는 비거리였다. 나는 그동안 방송 활동을 오래해온 덕분에 연예인들과도 친분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함께 라운드할 기회도 자주 있었다. 가수 조영남 조용필 최성수 현숙씨, 탤런트 박상원씨, 배우 고은아 문희 선생, 탤런트 선우은숙 이경진씨 등 여러 명인데 이분들과 함께 라운드하면 마치 이분들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또는 공연장에 나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연예인 중 가장 고수는 최성수씨
탤런트 홍요섭씨. 연예계의 소문난 실력파 골퍼다.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정치인은 누구인가? 정답은 ‘가급적 함께 하고 싶지 않다’ 였다. 정치인과 함께 라운드해봐야 돈 내는 사람도 없고 게다가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도 안 들을 수 없고 이래저래 기피 대상 제 1호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동창관계나 사교모임 등 여러 친분 때문에 여야 정치인들과 가끔 라운드를 하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한나라당 백성운 의원이 실력도 제일 좋고 매너도 좋은 편이 아닌가 싶다. 골프할 때는 진지하게 샷에 몰입하고 정치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드라이브 비거리는 평균 250야드가 넘는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과는 10여 년 전부터 함께 라운드해왔는데, 차분한 성격이지만 승부욕이 강하고 어프로치나 퍼팅 등 숏 게임에 매우 뛰어난 편이다. 별명은 영국신사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국 유학 가기 전부터 별명이 영국신사였다. 그밖에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 등과도 이따금씩 라운드를 즐기고 있다.
야당의원으로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대학동기여서 함께 라운드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야당대표가 된 이후는 골프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날 함께 라운드하면서 정 대표와 내기해서 내가 딴 돈을 모두 합치면 한 30만원쯤 된다. 정 대표는 요즘도 나를 만나면 “내 돈 잘 있지?”하고 조크를 건넨다. 이 소리를 들은 친구들은 정치인 돈을 따면 3년간 재수가 없다며, 나보고 눈치도 없고 겁도 없다고 또 다른 조크를 한다. 그러나 그냥 현찰을 돌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나라 정치문화가 더 부드러워져서 대통령도 골프를 하고 야당대표도 골프를 하는 날이 오면 반드시 필드를 통해 돌려줄 생각이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과도 가끔 골프를 하는데 성격이 활달해서 동반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공이 잘 맞든 안 맞든 퍼팅이 잘 되든 안 되든 허허 하고 웃는다. 정치인의 포용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단 골프장에 늦게 나타나서 끝나기가 무섭게 밥도 안 먹고 사라지기 때문에 권 의원의 별명은 ‘바람 같은 사나이’다.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명사는 그야말로 백인백색이었다. 명사와 함께 라운드하면 생생한 필드 인생레슨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라운드하면서는 역사적 사실을 배울 수 있고 이어령 선생님과 함께 하면 박학다식에서 뿜어 나오는 지성미를 배울 수 있다. 이길여 경원대 총장으로부터는 남녀를 뛰어넘는 통 큰 리더십을 배울 수 있고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부터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배울 수 있다.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과 함께 라운드하면 필드 저 건너편에 객주의 무대가 환상처럼 떠오른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사를을 만날 수 있었고 대체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보니 이분들과 라운드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인이 되고 우리나라에서 확고부동한 명사의 자리까지 오른 분들은 반드시 탁월성과 덕목을 겸비하고 있다. 이분들과 라운드하면서 성공 DNA의 단편이라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입춘이 지났다. 유난히 춥던 겨울이 지나고 있다. 어느새 나는 ‘나는 가야지’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저 멀리 나는 가야지….’ 배우 문정숙씨도 불렀고 최무룡씨도 불렀던 오래된 영화의 주제곡 ‘나는 가야지’는 내 대학시절 애창곡이었다. 그 시절에는 아련한 정감과 낭만이 느껴져 자주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처량한 느낌이 들어서 피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부르게 되었다. 대신 노랫말은 적절히 바꿔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라는 원래 가사를 ‘신나게 즐겁게, 필드로 나는 가야지…’로 고쳐 부르는 식이다.
내가 필드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단연 CEO들이다. 중·고등학교 동기나 대학 동기 모임에도 시간 때문에 자주 못 나가고 있고 여러 골프 동호회 모임도 거의 못 나가고 있다. 요즘은 주로 경영자나 다른 대학교수들과 함께 하고 있다. 어느새 업무골프가 되고 만 것이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대학원 대학교의 총장 일을 맡다보니 최고경영자과정과 관련된 모임이 많고 산학협동 차원에서도 협의할 일이 자주 생기는데, 주말에 몇 시간 함께 운동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일이 잘 풀린다. 또한 한국기업사례연구학회 회장 입장에서 성공한 경영자 사례나 기업사례를 발굴하는 데도 필드는 유용한 장소의 하나다.
최근 한국 경제가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름대로 선전하는 이유는 결국 기업경쟁력이 좋아졌고 이를 이끌고 있는 경영자들의 역량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나는 작지만 강한 기업, 그리고 지속경영을 하는 기업 그러니까 장수기업에 대한 사례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는 몇몇 기업이 있는데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사람은?’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먼저 두 분의 CEO가 떠올랐다. 결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차게 내실경영을 하면서 자신만의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다이소아성의 박정부 회장 그리고 전문분야를 개척해 30여 년간 지속가능경영을 해오고 있는 클리포드 김두식 회장 이 두 분을 입춘 이후 올해 첫 번째 라운드에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 두 분 CEO의 경영역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경영철학, 꿈과 비전, 차별화된 경영전략 그리고 열정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아 매출 3000억원을 올린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를 실천해서 성공한 경영자가 다이소아성 박정부(66) 회장이다.
건전지, 면봉, 고무장갑, 종이컵, 화장품, 필통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2만개 이상 다루면서 가격은 1000원 전후로 유지하는 ‘천원 숍’의 최강자가 바로 박 회장이다.
전국 520개 매장에서 연간 1억5000만개 이상을 판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양재동, 대치동 같은 서울 강남 상권에까지 대형매장을 열었다. 강남부자라고 해서 백화점에서 명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알뜰한 생필품 쇼핑족이 많다는 것을 간파한 마케팅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와 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1988년에 창업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생활용품을 사다가 일본 100엔 숍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다이소아성은 IMF 금융위기 시절에도 꿋꿋하게 잘 버텼고 지난해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위력적인 성장을 해왔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알뜰 고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고품질, 다품종, 저가격’이라는 강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박 회장은 그야말로 전세계를 뛰어다닌다. 지금까지 400회 넘는 해외출장에 지구를 60바퀴 이상 돌았고 항공사 누적 마일리지만 150만마일이 넘는다. 전세계 어느 곳이든 싸고 좋은 물건이 있으면 달려가서 1000원 숍에 적합한 물건인지를 검토하고 신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본 100엔 숍의 해외수출품 중 33%를 박 회장이 공급하고 있음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일본 소비자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이런 공로로 무역공로상과 산업훈장을 여러 번 수상하기도 하였다.
박 회장과 골프를 함께 하는 건 행운이다. 한 해의 반 정도는 해외를 돌고 있고 상당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와도 늘 시간에 쫓긴다. 본사 회의 주재뿐만 아니라 물류센터나 각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품 또한 소탈하고 검소하다.
골프의 매력은 바로 ‘망중한’
늘 시간에 쫓기는데다가 직원들이 1000원짜리 팔려고 밤낮으로 고생하는데 골프 치는 게 미안해서 필드 나오는 것을 꺼린다는 박 회장을 설득해서 가끔 필드로 불러내고 있다. 골프의 매력은 바로 ‘망중한’이라는 게 내 설득의 핵심이다. 시간이 남는 사람들이 골프하는 것은 재미가 없고 박 회장처럼 바쁜 분이 필드에 나오면 다섯 시간 동안 스트레스 풀고 재충전되니까 오히려 사업에도 좋다고 계속 설득해서 필드로 끌어낸 것이다.
골프 스코어는 80대 초·중반 정도인데 집중하면 70대 후반도 종종 기록한다. 드라이버 샷도 안정되어 있고 특히 퍼팅을 잘한다.
박 회장의 골프관은 ‘정석대로’다.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골프를 즐긴다’ ‘동반자들과 담소하면서 귀한 시간을 즐긴다’ ‘룰을 잘 지키고 동반자를 배려한다’ 같은 원칙을 꼼꼼히 지킨다.
흔히 경영스타일과 골프스타일은 닮는다는 말이 있는데 박 회장을 보면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반자들은 박 회장과 내기를 하다 밀리면 화끈하게 한방을 날려보라고 유혹하지만 박 회장은 잘 말려들지도 않는다.
“사업이나 골프나 인생이나 너무 화끈한 거 좋아하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그동안 화려하게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 많이 봤습니다.”
이런 박 회장도 지난해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 골프행사에는 거금을 기부하였고 종종 적지 않은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사회봉사나 자선활동을 할 때는 큰손이 되곤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 정도의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는 대기업들의 공헌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 회장같이 조용히 경제의 실핏줄을 잘 돌아가게 해주는 사업가의 공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에게는 품질 좋은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도록 고용창출을 위해 한 해의 반을 해외로 뛰어다니는 박 회장에게 골프는 사치일까? 필수 비타민일까? 날이 좀 풀리면 내가 제일 먼저 필드로 불러내고 싶은 경영자가 바로 박정부 회장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옷과 사람이 잘 어우러졌을 때를 말한다. 명품을 둘러야만 옷을 잘 입는다고 말하지 않듯이 옷에서 그 사람의 취향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아우라가 연출될 때 옷을 잘 입는다고 할 수 있다.”
클리포드 김두식(60) 회장이 말하는 패션철학이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이 불모지이던 시절 고급 넥타이 전문업체로 출발해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남성 토털 패션업체로 성장한 클리포드는 벌써 30여 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김 회장의 성품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은근과 끈기’다. 자기주장이 강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가 나타나면 주변이 환해지고 그가 떠나면 주변이 허전해지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CEO다.
지난해 마지막 라운드는 서원밸리에서 김 회장과 함께 간간이 눈을 맞으며 겨울골프를 즐긴 일이었다. 김 회장은 보통 80타 전후를 치는 탄탄한 실력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베스트 스코어는 73타인데 스윙이 안정적이라 늘 점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골프는 지면서 이기는 것
김 회장에게 골프관을 들어보았다. “나는 골프나 경영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져주면서 이기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지면서 이기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라는 것이다. 30여 년간 사업을 하면서도 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국내든 해외든 한번 거래관계를 맺으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골프장에서도 굳이 악착같이 이기려 하지도 않고 내기에서 돈을 따려고 연연하지도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내가 양보하면 당장은 지는 것 같고 잃는 것 같지만 좋은 관계가 남기 때문에 결국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김 회장과 교류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얼굴 모습도 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김 회장과는 몇 년 전부터 젠트회 회원으로 더 자주 만나고 있다. 젠트회는 글자 그대로 젠틀맨들의 모임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신흥국의 수준을 넘어 품격이 있는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는 신사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생활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만든 친목 모임이다.
젠트회 회원이 되려면 우선 옷을 잘 입어야 한다. 이는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옷의 역사나 패션문화를 제대로 알고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끔씩 전문가를 초청해서 패션 강의를 듣기도 하고 와인 강의를 듣기도 한다. 글로벌 매너와 에티켓에 관한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새해에는 G20 정상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만큼 품위 있고 매력 있는 사회를 가꾸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김 회장을 보면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지면서 이기고’ ‘양보하면서 얻는’ 지혜로운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핸들만 잡으면 전사가 되고 필드에만 나가면 검투사처럼 전투모드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모두 개발도상국을 거치면서 형성된 문화일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늘 웃으면서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있는 김 회장이야말로 진짜 현명한 CEO가 아닐까. 모두들 그가 필드로 초청하면 곧바로 OK라고 말하고 함께 라운드하고 싶어하니 경영뿐만 아니라 골프에서도 그는 승리자임에 틀림없다.
경영자 중에는 골프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골프를 하고는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다. 비즈니스(business)의 어원이 바쁘다(busy)인 것만 보아도 비즈니스맨이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쁜 비즈니스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은 경영자가 골프를 한다. 골프는 시간이 남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골프장은 종합소통의 장이다. 옛날 오일장이 만남과 교환의 문화공간이었듯이 우리나라 골프장은 주말마다 열리는 만남과 소통의 장날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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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도 수많은 경영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을 필드에서 만날 것이다. 웅진의 윤석금 회장, 대신증권 이어룡 회장, 시공테크 박기성 회장, ABC상사 손병문 회장, SK 김신배 부회장, 작가 김주영 선생, 전광영 화백…. 순식간에 수백명이 눈앞에 섬광처럼 떠오른다.
골프는 18홀 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느새 나에게 골프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대하 드라마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올 한 해도 나는 필드에서 역사의 발전을 위해 좋은 분들과 함께할 것이다. 골프의 진정한 매력은 장소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분들과 함께 어떤 역사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